덧글쓰는 사람도 없고 나 역시 답글을 잘 달지 않는 귀차니스트라서 이 블로그가 딱히... 그리 소통의 장이 되지는 않지만, 어찌된 일인지 가끔 덧글이나 메일로 고민을 나누시거나 조언을 구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그러고보니, 이 블로그에는 내가 남자친구에 대해 쓴 글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게 벌써 3년전에 쓴 글이었다. 롱디를 하시는 분들께 응원을 보내고자! 그리고 이민을 계획하시는 분들께 솔직한 조언을 드리고자 글을 쓰기로 했다.
장거리연애를 거의 5년 했다. 그리고 같이 살기 시작한 지는 곧 1년이 된다. 장거리연애를 하면서 1년에 두세번 만났다. 내가 스웨덴에 가거나 남친이 한국에 오거나. 다행히 남친이 북경이랑 타이페이에서 교환학생을 반년씩 했어서 중간에 만나기 더 수월한 적도 있었다. 다니던 회사가 망하고 잠시 백수였을 때는, 내가 스웨덴에 가서 3개월 머문 적도 있었다. 3년 전에 썼던 글들이, 그때 심심해서 잔뜩 썼던 글이다. 3개월 체류 후 다행히도 바로 일을 구해서 한국에서 2년 더 일하면서 돈을 모았다. 남친이 한국에 올지 내가 스웨덴으로 가서 같이 살지 아직 정하지 않은 날들이었지만, 그래도 나중에 같이 살게 되면 돈이 필요하니까, 걱정할 시간에 한푼이라도 더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한국어교원과정도 들었다. 시험공부할 시간이 없어 자격증은 못따고 이수증만 받았지만... 그래도 좋은 투자였다고 생각한다. 출근길에 틈틈이 스웨덴어 공부도 했다. 어플 다운받아서 간단한 단어를 외워보려고 했었다. 좋은 시도였다. 나만 노력한 건 아니었다. 남자친구도 틈틈이 한국에 올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고 이것저것 알아보고 지원해봤지만 되는 게 없었다>_< 무엇보다도, 아직 학생이었어서 모은 돈도 없고 당장 한국에 온다 해도 내가 먹여살릴 정도로 풍족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남친의 학비를 댈 수는 더더욱 없었다. 그래서 내가 스웨덴에 오게 되었다.
제 얘기는 이걸로 마치고, 여기서부터는 자주 하시는 질문 위주로 써보겠습니당.
1. 결혼을 하고 싶은데 남자친구 또는 여자친구가 동거를 하자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제가 아는 분들 중에도 동거를 하지 않고 바로 결혼해서 스웨덴에 오신 분들이 있긴 하지만, 사실 스웨덴에서는 동거가 흔합니다. 같이 살아보지 않고 바로 결혼을 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남자친구 또는 여자친구가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스웨덴사람으로서는 참 당연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동거하는 것을 쉬쉬하는 분위기이고, 많은 분들이 무엇보다도, 부모님께 어떻게 말씀드려야할지 고민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스웨덴에서 동거하다가 혹시라도 헤어져서 다시 오면 어떡하나 걱정하시는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1) 그렇다면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부모님이 반대하지만 않으신다면 동거도 괜찮다고 생각하시나요?
만약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요'라면, 그러니까 오로지 본인의 가치관에 따라서 동거를 반대하시는 거라면 남친/여친을 좀더 설득시켜보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애인의 가치관도 존중해주어야하지만 본인의 가치관도 당연히 존중받아야하니까요. 두 분이 말씀을 더 나누셔서 타협점을 찾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만, 동거를 주저하시는 이유가 오로지 '부모님이 반대하실까봐'라면, 그건 본인이 직접 본인 부모님을 설득해야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을 설득할 자신이 없어서 남친에게 결혼하자고 푸쉬하는 상황은 좀 아닌 것 같아요. 두 분이 같이 행복해져야 의미가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부모님께 "낯선 나라 가서 사는 건데, 무조건 결혼하고 가는 건 나 자신에게 부담이 된다, 일단 살아보면서 환경에도 적응을 하고 천천히 결혼을 하고 싶다, 한국인끼리 결혼하는 거랑은 약간 다른 상황임을 이해해달라"고 말씀드렸고 부모님도 이해해주셨어요. 대화!를 너무 겁내지 마세요.
2) 그런데...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는 건데, 만약에 같이 살다가 헤어져서 다시 돌아오면 나만 손해잖아요. 다 내려놓고 가는 건데 남친/여친도 나를 위해 결혼이라는 약속 하나쯤은 해줄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나는 엄청 많이 희생하는데 내 애인은 왜 결혼 하나 양보 안하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저만 다 양보하고 손해보는 것 같고 이러다가 혹시라도 헤어져서 다시 한국에 오면, 나는 다시 처음부터 일자리 찾고 그래야하지만 남친/여친은 걍 자기 나라에서 하던일 계속 하면 되고... 이렇게 생각하면 끝이 없습니다. 국제커플 장거리연애는 어차피 한 쪽이 희생해야 끝이 난다는 걸 우리는 인정해야합니다.
그런데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가는 이유는 어쨌든 이 장거리 연애를 끝내고 같이 살아보겠다고, 같이 행복해지겠다고 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거는 딱히 동거의 문제도 아니고 결혼의 문제도 아닙니다. 결혼하고 가면은 좀더 행복할 것 같나요? 결혼해서 같이 살다가 헤어져서 돌아오는 거랑, 그냥 동거해서 살다가 헤어져서 돌아오는 거랑, 차이가 클까요? 저는 오히려 결혼해서 같이 살다가 헤어져서 돌아오는 게 손해가 더 클 것 같은데... 여튼, 이걸 걱정할 거면 스웨덴으로 이민가는 그 자체를 다시 고민하셔야합니다. '결혼이냐 동거냐'를 고민할 게 아니라, 내가 가진 걸 포기하고서라도 저 사람과 같이 살고 싶은지, 스웨덴에 가서 0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더라도 남친 탓 안하고 혼자 잘 일어설 수 있을지를 고민하셔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파트너와 다시 상의하시는 걸 권합니다.
2. 여차저차해서 애인을 따라 스웨덴에 가려고 합니다. 뭘 준비해야할까요?
1) 비자신청이요. - 너무 당연한 애기라 생략합니다.
2) 스웨덴어공부하세요.
워홀로 가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영어로 어떻게든 되겠지...하지 마시고 스웨덴어 공부하세요. 과외에 돈쓰기보다는 그냥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스웨덴어 기초 강의나, 간단한 단어나 표현 알려주는 영상 같은 거 보시면서 익히시면 좋을 거 같아요. 여기서 살면서 직업도 구하고 그러려면 정말 무조건 스웨덴어 해야된다는 것만 알아두세요... 남친/여친이 혹시나 "스웨덴 사람들 다 영어 잘해서, 너 그냥 와도 돼"라고 한다? 스웨덴 오라고, 꼬시려고 하는 소리니까 귀담아 듣지 마시고 스웨덴어 공부하세요. 스웨덴어 관련해서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이 포스팅도 한 번 봐주세요.
3) 스웨덴에서 당분간 생활비 분담은 어떻게 할지 이야기 나누세요.
집값이 진짜 비쌉니다. 스톡홀름, 룬드 같은 곳은 주택난이 심해서 월세도 장난이 아니고 구하기도 힘듭니다. 두 분이 같이 살 집은 어떻게 할지, 파트너에게 당당하게 물어보세요. 내가 그 멀리까지 가는데 집문제는 저쪽에서 해결해놔야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부모님이랑 같이 살면 돼."라고 하면 "ㅎㅎㅎㅎㅎ 둘이 살 집 구하기 전엔 안가"라고 하세요. 스웨덴 사람들은 워낙 쿨하고 남생활 신경안써서 상관없다? 다 환상입니다. 이 나라만큼 가족애가 끈끈한 나라가 또 있나 싶어요. 타국까지 멀리 오시는데 괜히 더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둘이 살 집 구하라고 푸쉬하세요. 그리고 렌트는 얼마인지, 각종 관리비 얼마인지 물어보셔서 어떻게 충당하실지 의논하시구요. 미리 서로의 경제사정을 꼭 확인하세요.
저희는 식비는 반반씩 부담합니다. 오기 전에 남친에게 한달에 보통 얼마쯤 쓰는지 물어보기도 했고, 3년전에 몇개월 지내면서 물가를 파악해보기도 했어요. 반반씩 부담할지, 아니면 돈을 한데 모아서 공동으로 쓸지 꼭 합의를 하시는 걸 권해드려요.
4) 스웨덴에서 뭐해먹고 살지 조사해보세요.
한국에서 경력이 길고 취업이 잘 되는 분야라면 모르지만... 사실 그런 분들마저도 처음에는 불안해하시고 서류탈락하시고 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한국에서는 여행사에서 일했었는데, 어떤 스웨덴 여행사에서 저를 쓰겠어요...ㅎㅎㅎ 그래서 그 경력은 애초에 포기하고 왔습니다. 대학원을 간다? 저는 학부전공이 역사였는데... 음... 제가 특출나게 잘했던 것도 아니고 그리 관심과 열정이 있는 것도 아니라... 대학원도 생각을 안하고 있습니다. 저는 학부입학을 다시 생각하고 있고, 스웨덴에서 부족한 직업군이랑 저의 적성을 생각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일단... 스웨덴어 공부하고 있네요.
막연하게 한인회사 취업해야지?하시면 여기는 한인 잡이 정말정말 보기 힘들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네요. 호주나 캐나다 워홀가는 거랑은 매우 다릅니다. 심지어 그 몇 안되는 한인잡도 스웨덴어 좀 하셔야 기회가 찾아옵니다. 한국어교원자격증 따야지? 음... 최근에 한국어 티칭 알바구한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교원자격증 있으면 도움은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걸로 평생 먹고살 수는 없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스웨덴은 최저시급이 없어서 고용주가 정하기 나름인데(그게 너무 낮으면 노동조합에서 이의를 제기하긴 하겠지만요) 제가 어학원에서 버는 시급가지고는 교통비 빼고 나면 정말로 남는 게 없습니다. 나중에 이력서에다가 한 줄 더 적어보겠다고 시작하긴 했는데, 여튼 경제적으로는 남는 게 없습니다. 게다가 한국어 배우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서 어떤 학기는 새로운 강좌가 개설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구요. 그러면 수입이 제로...인건데. "할 거 없으면 한국어나 가르치지뭐~"하는 생각은 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차근차근 찾아보시고 계획을 세워보세요. 스웨덴에서도 모두가 스톡홀름에 사는 게 아니고, 지방도시로 가면 일자리 수가 확실히 차이가 나요. 가시게 되는 도시에 무엇이 있는지, 어떤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찾아보세요.
스웨덴에서 받을 수 있는 기초교육에 대한 포스팅 : http://banisblogg.tistory.com/232
스웨덴에서의 구직활동에 대한 포스팅 : http://banisblogg.tistory.com/231
5) 남친/여친 도움은 기대도 하지 마세요.
스웨덴 가면 그래도 파트너들이 도와주겠지. 어떤 학교가 좋고 어떤 진로가 있는지 찾아서 추천해주겠지.... 따위는 기대도 하지 마세요. 남친/여친들이 물론 도와주고 싶어하겠죠. 도와주려 하겠죠. 근데 몰라요. 몰라서 못 도와줘요. 왜냐면 그 사람들은 처음부터 스웨덴에서 쭈욱 살았기 때문에, 스웨덴이 이민자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있고 그걸 어떻게 신청하고 그걸 언제 신청하고... 하나도 몰라요. 본인이 직접 알아보신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용감해지셔야돼요. 영어로 말하기 무서워도, 스웨덴어가 잘 안되어도, 관련 부서 문 두드려서 담당자 만나고 직접 물어보기도 해야돼요. 언제나 남친/여친이 함께 가서 대신 말해줄 수 없어요. 저는 첫날 주민등록하는 것부터 다 혼자 했고, 수업 신청하는 거, 일자리 찾아보고 이력서 쓰는 거는 여기서 오래 산 한국친구들 조언듣고 했어요. 애인한테 의존할 생각은 멀리멀리 버리고 오세요. 그럴 수록 힘들어져요. 의존하게 되면 오히려 서운함만 커지고, "너는 왜 나 안도와줘? 내가 너때문에 멀리서 왔는데 왜 너는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야"하면서 싸움만 나요.
독립적으로 사셔야 해요. 물론 새 가족을 만들러 스웨덴에 가시는 거긴 하지만, 새로운 가족한테 자신의 미래까지 책임져달라고 하시면 안돼요. 마음같아서는 책임져주고 싶지만 그들도 사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거든요.
6) 그리고 무엇보다... 스웨덴에 와보신 적이 없다면은.. 겨울에 꼭 한 번 와보세요.
날씨... 으으 날씨... 하루이틀 지내서는 모르지만 한달 정도 겪으면 사람을 정말 우울하게 만드는 그런 날씨... 한번 와서 지내보세요.
3. 다 읽었는데도 아직 스웨덴에 가야할지 어떨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면 롱디를 좀 더 하시는 건 어떠세요< 저는 5년도 했는데요 뭐. 남친/여친이 롱디를 못 견뎌한다구요? 사람마다 롱디를 견디는 체질이 있고 아닌 체질이 있다구요?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해요. 결혼한 사람들 중에서도 사정이 생기면 주말부부도 하게 되고 좀 멀리 떨어져 살게 되는 경우도 생기는데, 그럼에도 결혼생활을 유지하시는 이유는 '이제 우리는 같은 팀이다'하는 생각이 있어서가 아닐까요. 롱디도 그래요. 연애가 결혼보다 얄팍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인연을 유지하고 싶으면 어떻게해서든 1년에 한두번이라도 만나는 거고, 그게 싫으면 그냥 싫은 거죠. 롱디를 못견뎌하니까 하루라도 무리해서 빨리 합친다? 동거든 결혼이든, 시간을 들여서 충분히 얘기하고 준비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상대가 못견뎌한다, 이러다가는 헤어질 것 같다, 그러니까 빨리 동거든 결혼이든 해서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혹시 하신다면, 나중에 힘들어지실 것 같아요.
여튼...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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