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kräftskiva했을 때 매달았던 장식. 다시 봐도 무섭구먼...]
한창 영어공부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땐 '영어와 나', 수학공부를 할 때는 '수학과 나' 라는 제목으로 포스팅을 했으니, 오늘은 '과학과 나'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보려고 한다.
때는 2002년, 중학교 2학년 때였다. 학교에서 아이큐검사를 했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 30명 정도를 따로 불러서 '과학반'을 만들건데 하겠냐고 물었다. 사실 그 어린 나이에 훌륭한 과학자가 되겠다는 등의 큰 포부 따윈 없었지만, 일단 과학선생님이 참 좋은 분이었고 초등학교 때 우주소년단을 했어서(단복이 은근히 멋있었다) 그 비슷한 걸 하겠지, 라고 생각해서 손을 들었다. 그렇게 과학반이 시작되었는데, 우주소년단처럼 물로켓만들고 비행기 만들고 그런 활동은 전.혀.없.는 주입식 선행학습이었다.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과학경시대회가 다가오니 방과후 저녁 9시까지 남아서 과학공부를 해야한다고 했다. 사실 그때 한창 농구공을 던지고 자전거를 타고 놀러다니던 때였지만, 어쨌든 과학선생님이 좋아서 그냥 계속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짝사랑의 힘(!)으로 과학경시대회에서 입상을 했다.
입상을 하자 고등학교 원서를 넣을 때쯤에 지역 과학고등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찾아오셨다. 지원자격이 되니 입학시험을 보고 과학고에 오라고 하셨다. 그러고 싶긴 했는데, 학교가 다른 지역에 있어서 기숙사생활을 하는 게 마음에 안 들기도 했고, 막상 그 과학선생님이 "너는 말을 잘하니 변호사가 되거라"하는 말에 '나는 역시 과학자 감은 아닌 것인가'하는 생각도 들어서 집 근처 학교로 원서를 넣었다.
그 후에 고2 올라갈 때 당연히 이과로 진학하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아버지가 크게 반대를 하셨다. 지금은 전혀 그런 분이 아닌데, 그때는 '여자애가 무슨 과학이야, 문과로 가서 더 좋은 대학에 가야지'라는 말로 한 달을 싸웠다. 그렇게 문과로 가서 한학기가 지나니, '아 이거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2 1학기 지나고 이과로 전과하겠다고 했는데, 하필이면 그때 내가 공부 한창 안하고 수학점수가 바닥을 찍던 때라 담임선생님도 내 편을 들어주진 않으셨다. (그러자마자 담임선생님은 퇴직하시고ㅠㅠ 기왕 퇴직하시는 거 제 편 좀 들어주시고 퇴직하지 그러셨어요ㅠㅠㅠㅠ)
사실 고1 때랑 고2때는 집에 와서 혼자 과학 참고서를 풀고 과학동아도 읽으면서 공부를 조금씩 했었는데, 고2 2학기가 되어서 할 게 많아지자 그럴 시간도 없었다. 그렇게 과학이랑은 영영 안녕...하게 되었다. 처음 대학에 갔을 때 복수전공이라도 물리를 해볼까 싶어서 교양과목으로 물리를 듣다가 두달만에 학교 자체를 그만뒀다. 두번째 간 대학은 문과와 이과 캠퍼스가 아예 다른 곳에 있어서 엄두를 못냈다. 지금 생각하면 캠퍼스간 통학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복수전공 해볼걸 그랬다.
그렇게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졸업을 했다. 스웨덴에 오기 전까지는 그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 딱히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먹고 사는 게 바쁘기도 했지만, 지난 날의 선택을 후회한다고 해서 다시 돌이킬 방법도 없었다. 다시 수능을 볼 기력도 없고 다시 대학에 갈 돈도 없으니까. 그냥 이게 나의 길이겠거니,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작년에 스웨덴에 와서, 앞으로 뭘 하면 좋을까하고 생각하다가, 어차피 대학은 다시 가야할 것 같으니 지금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 선택하라는 말을 들었다. 옛날에 과학공부가 하고 싶었어, 라고 했더니 친구들이 "그럼 하면 되잖아! 고등학교 과학부터 시작해" 하고 응원을 해줬다. 그래서 이번 학기에 디스턴스로 화학1과 물리1을 하고 있다.
그런데 말입니다 ( ..)
이제 내 머리는 굳은 것일까. 한국어로 봐도 단어가 생소한데 스웨덴어로 보니 더욱 생소하구나... 개념에 대한 설명은 스웨덴어로 보면 당연히 모르겠지만 한국어로 봐도 딱히 이해가 되진 않는구나... 게다가, 시험만 보면 됐던 수학과목과는 달리 과학과목은 실험수업에 두 번 꼭 참석하고 보고서를 써야하는데, 실험시간이 내가 일하는 시간과 겹친다. (디스턴스 수업이라면서 왜 실험시간을 대낮에 잡은 것인가!) 어찌어찌 선생님한테 양해는 구했는데, 그만큼 시험을 더 잘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전공이 입학컷이 꽤 높은 편이라서, 이 과목들 점수는 무조건 높게 받아야 하는데...하면서 스트레스가 생긴다. 말 그대로 수험생의 스트레스다. 2007년 겨울, 수능이 끝났을 때에는 이제 다 끝인 줄 알았지... 내가 10년 후인 2017년에도 수험생일 줄은 몰랐지...
그래도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우울해하고 침울해하다가, 어떻게 하면 내가 다시 긍정적일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그러다가 저 옛날 일이 생각이 나고, '아 그래, 나 언젠가 과학이 좋았던 적이 있었지' 하던 생각이 났다. 어떻게 보면, 다시 기회가 온 거니까. 그때 '가지 않았던 길'로 다시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온거니까 열심히 해봐야겠다.
열심히 해야겠다면서 지금 블로그나 하고 있다.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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