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생활의 큰 적은 날씨라고들 하는데, 이제 점점 낮이 짧아지는 게 확 느껴지면서 겨울이 오는 게 좀 무서워지려고 한다. 그런데 사실 더 무서운 거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씨인 것 같다. 다른 지방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룬드는 정말 비가 자주 온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든, 쏴아 쏴아 내리는 비든, 어쨌든 비가 자주 오는데 지난 주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왔다. 그것도 매일 장대비가 쏟아졌다. 버스를 탈까 싶어도, 일하는 곳들 동선이 애매해서 버스도 못타고 1주일 내내 비맞으면서 자전거를 타고 다녔더니 요즘 몸이 으슬으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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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대학교 스웨덴어 코스는 그만두기로 했다. 요즘 하고 있는 것 중 가장 재밌었고, 가장 유익했고, 재밌는 친구들도 만났지만은... 사실 이 코스가 시간을 다 잡아먹어서, 다른 걸 할 시간이 없었다. 매일 아침 학교에 가고, 끝나자마자 도시락 데워먹고 일하러 가고, 어떤 날은 일이 늦게 끝나서 밤 9시 넘어서 집에 오면, 그때부터 숙제를 해야했는데 이 숙제의 양이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매일 매일 엄청난 숙제와 매주 꼬박꼬박 조모임이 있는 이 빡센 코스.... 그래서 이번 주 발표랑 시험만 보고, 7.5학점만 따고 유유히 퇴장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이건, 일을 하지 않고 그냥 풀타임으로 이 코스만 들으면 굉장히 좋을 것 같다. 그래서 선생님께 다음 주부터 안올거라고 말하고 나서도 되게 아쉬웠다. 다음 학기에 들을까 어쩔까...
(혹시 이 글을 보고 계신 분 중에, 룬드대학에서 하는 Svenska som främmande språk 5-8 과정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정말 추천합니다. 코스 시작하기 전에 "이 코스는 인텐시브이니 다른 일과 병행이 힘들다"라는 협박 비슷한 메일이 오는데 그건 진짜예요... 코스가 쉽고 어려운 건 문제가 아니고, 숙제의 양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저는 한번에 여러 개를 하는 게 익숙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데도 이 코스는 좀 빡세요. 하지만 빡센 만큼, 얻어가는 것도 굉장히 많은 것 같습니다. 여기서 한달동안 수업들었던 게, SAS 1,2,3 디스턴스로 했던 그 시간들보다 나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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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저 코스를 등록한 데에는 다른 속셈이 있었다. 룬드는 대학도시라서 곳곳에 학생조합nationer이 있다. 그리고 각 nation에서 요일에 따라 펍도 열고 클럽도 열고... 동아리처럼 각종 활동을 하는 모양인데, 룬드대학 학생이어야 조합 가입이 가능하다. 그래서 저 스웨덴어 코스를 굳이 등록해서 드디어 학생조합에 가입을 했다! >_< 가입을 했던 그 주 금요일에, 코스 같이 듣던 친구들과 다같이 칼마르 펍에 가서 술을 마시고 할란드 클럽에 가서 놀았는데, 그것은 정말 내가 그동안 6년동안 알지 못했던 룬드였다. 룬드의 펍이라곤 아리만과 라우라켈 정도인 줄 알았는데... 룬드에는 클럽 없는 줄 알았는데... '학생들만 갈 수 있는' 맥주 한잔에 30크로나 하는 펍이 있었고, '학생들만 갈 수 있는' 클럽이 숨어있었다. Nation 회원비 뽕을 뽑아야 한다며 사실 지난 주 금요일밤에도 가서 한잔했고, 이번 주 금요일에도 갈 예정이다. 이 정도면 저 코스를 등록했던 보람이 있지 않은가. 비록 다 못끝내고 중간에 드롭하는 상황이긴 하지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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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북스에서 디스턴스로 듣는 화학수업은 그만두려다가 다시 붙잡고 있다. 이걸 드롭할까 스웨덴어를 드롭할까 하다가, 사실 화학 성적이 지금 나한테는 더 중요하므로 이걸 붙잡기로 했다. 월요일에는 하루 일을 쉬고 필수참석이라던 실험을 하러 갔는데, 실험이란 것을 해본 게... 중학교 때 이후로 해본 적이 없으니... 너무 걱정돼서 전날 잠을 제대로 못잤다.
둘씩 짝을 지어서 실험 세 개를 해야했는데, 같이 짝이 된 애도 다행히 나처럼 잘 모르고 어리버리한 거 같아서 왠지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둘다 실험기구 명칭을 몰라서 헤매고... 엉뚱한 거 집어오고... 따로 버리라는 화학약품 그냥 싱크대에 막 버리고... 막장이었다. 하지만 나는 계산은 할 수 있는데 문제를 못읽고 걔는 문제는 읽을 수 있는데 계산을 못해서, 그런 의미로 괜찮은 조합이었다. 하지만 실험보고서라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쓰는 걸까. 나는 정말 이 코스를 패스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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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말고는 일하는 건 다 괜찮다. 모국어 수업을 들으러 오는 아이들이 재잘재잘하는 것도 귀엽고, 한국어 수업을 들으러 오시는 수강생들도 눈이 초롱초롱해서, 학교에서 수업듣고 파김치가 되어서 일하러 갔다가도 이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다. 뭐랄까, 내 고물 아이폰이 샤오미 보조배터리의 수혈을 받으면 다시 금세 살아나는 것 같은 뭐 그런 느낌... 내가 고물아이폰인 뭐 그런 느낌..(!) 어쨌든, 가르치는 직업은 이런 보람인걸까,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게 적성에 맞는 걸까 아니면 다른 전공을 찔러볼까 하는 고민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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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을 그만뒀다. 잡다한 것들로 향하는 신경을 한 곳으로 모아서 이번 학기 성공해보자며 그만둔건데... 페이스북을 사실 제일 지우고 싶다. 하지만 페이스북메시지 때문에 지울 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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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날씨'. 흐려도 좋고 어두워도 좋으니 제발 비만 오지 말아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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