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이렇게 또 가나보다. 내일 모레 한국에 가서 3주동안 있다 올 예정이다. 여름에 갔으니 겨울에는 가지 말까 싶기도 했는데 내년 여름에 내가 또 뭘 하고 있을지 모르니까, 시간이 있고 돈도 조금 있으니 한국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항공권을 끊었던 그때 즈음에는, 이곳 생활이 굉장히 힘들게 느껴지던 때라서 돈이 없더라도 짜내어서 한국에 가고싶은 마음뿐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은 늘 나 자신이었다. 무리하게 스케줄을 짰기 때문에 체력도 바닥나고 번아웃 되어버린 것이었는데, 내가 그렇게 계획한 것이기 때문에 남탓을 할 수도 없었다.
'안빈낙도'. 이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요즘 생각한다.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즐기면 산다고 생각은 하는데 그게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다. 몇 달 전에 스스로 '나는 이 곳에서 행복한가' 하고 돌이키며 블로그에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넉넉하게 버는 건 아니지만 어찌되었든 굶지않고 살아가고 있으니 된거라고 썼던 것 같기도 하다. 그게 맞는 말인데, 자꾸 "알바를 하나 더 하면 여름에 어디 놀러갈 수도 있을텐데" 따위의 생각이 들기도 하니, 안빈낙도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하고 매일 새로 깨닫게 된다.
건강도 문제였고 어쨌든 내년부터 공부에 집중해야할 것 같아서, 매일 오후에 일했던 룬드 모국어교사 일을 그만하게 되었다. 사실 노동시간이 그렇게 긴 것도 아니었고 재미도 있었다. 계속하려면 어떻게든 할 수야 있었겠지만, 한편으로는 학교간 이동하는 게 많아서 아침에 공부하고 나서 오후에 자전거로 도시를 누비며 일하고, 저녁에 또 다른 일을 가야하는 게 조금 힘들었다. 차라리 저녁에 하는 일을 그만두고 주경야독을 할까 생각도 했지만, 아무래도 낮에 학교에 가서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도 만나야 스웨덴어도 좀 늘지 않을까 싶어서 다음 학기에는 낮에 공부하고 밤에 일하는, 주독야경(!)을 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주부터 오늘까지 매일, 가르치던 아이들이랑 작별인사를 했는데, 고작 10개월 만났는데다가 아이들이 어리니까 그냥 '선생님 잘가요 빠이'하고 말겠지, 했었다. 아니 근데... 색지를 오려서 카드를 만들어주고, 열심히 그림을 그려 주고, 가지고 놀고 있던 걸 선물로 아낌없이 내밀고, 집에 놀러가겠다며 주소를 묻고 '선생님 다음에는 언제 또 와요?' 묻고... 그저 아이들한테 고마운 마음이 들고 지난 학기 이래저래 힘들었던 게 싹 풀리는 그런 기분이었다. '한학기 더 일한다고 할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욕심부리지 말자. 이제 아이들은 동네친구(!)로서 만나는 걸로!
엄청나게 걱정했던 화학과 물리 과목도 무사히, 원하던 점수를 받았다. 공부하고 있을 때에는 정말이지, 도대체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불안하고 힘들어서 동거인에게 오만 짜증을 다 냈는데... 지금 생각하니 너무 미안하구만. 2018년에는 짜증내지 말자.
작년 연말에는 뭘 하고 있었더라. 하긴, 작년은 스웨덴에서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였다. 그래서 설레기도 했고 조금 우울하기도 했었다. SFI 끝나면 뭔가 보일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어서 슬슬 우울해지려던 참이었구나. 2017년 목표로, '조급해하지 말자'고도 했었다. 빨리 뭔가 이루고 싶고, 다 잘해내고 싶고, 멋진 사람이 되고 싶은 그런 욕심을 접어두고 천천히 해나가자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어쩌다보니 2017년에 이것저것 한 게 많았다.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기는 한데, 2018년을 앞둔 나에게 다시 한번 '조바심내지 말고 천천히 가자'고 말하고 싶다. 2018년에는 미리 걱정하는 짓, 하지 말자. 2018년에는 조금 더 마음 편하게 살자. 경제적으로 좀더 쪼들리겠지만, 안빈낙도를 몸소 실천하는 2018년을 한번 보내보자.
'일상 > 2017' 카테고리의 다른 글
9월 20일 (5) | 2017.09.21 |
---|---|
요즘 좋아하는 것 (0) | 2017.09.06 |
과학과 나 (2) | 2017.09.03 |
최근에 발견한 페이버릿 드라마. (0) | 2017.08.13 |
스웨덴에서 나는 행복..한가? (4) | 2017.08.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