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드디어 한달에 걸친 nollning(신입생 놀이) 기간이 끝났다. 그래서인지 학교 분위기가 좀 차분해지고 사람들도 이제야 공부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과제가 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 어려워졌다. 하. 사실 나는 3주차부터 '아 이학교 빡세네...' 하고 생각했는데, 그때 그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을 정도로 지난주 과제는 헬이었다. 그... 고전게임 중에, 뱀의 방향을 이리 저리 틀어서 먹이를 먹게 만드는 그런 게임이 있지 않나. 그 비슷한 걸 만들어오는 게 과제였다. 수업내용은 이제 오브젝트와 클래스 개념을 배운 참이었는데, 갑자기 과제를 이런 고난이도를 내주시면 어떡하라고... 책을 읽어도 모르겠고 유튜브 강의를 봐도 모르겠고... 그래서 애들을 살짝 떠보기도 했다. "이번 주 과제 어떻게 생각해? 잘 되어가고 있어?"라고 물으면 대부분은 "응, 괜찮아" "응, 뭔가 되고는 있어" 따위의 대답을 했다. 그래서 나는 더 좌절하고 '다들 잘 하는데 나만 이해를 못한건가ㅠㅠ' 하고 우울해하고 있었다. 매주 금요일 랩 시간에 조교의 도움을 받아 과제를 더 보충해서 검사받는 식인데, 금요일 아침까지도 멍... 코드를 아무리 보고 에러를 고쳐봐도 그 게임창이 안 뜨고... 자포자기 심정으로 학교에 일단 갔다.
랩 시간보다 두시간 일찍 학교에 갔는데 다들 컴퓨터실에 와 있었다. 이미 프로그래밍을 잘하는 몇몇을 빼고는 다들 수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어라, 나뿐만이 아니었나본데' 하고 약간 위안이 되었다. 앉아서 코드를 조금 들여다보다가 옆자리 애한테 "혹시 이 부분, 내가 뭘 잘못썼는지 봐줄수 있어?"라고 물어봤는데 "아.. 나도 그 부분은 아직이라..." 뭐냐 너, 어제 내가 잘되고 있냐고 물어봤을 땐 잘 되고 있다며! 또 다른 애한테 물어봤는데 그 친구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국 몇몇을 제외하곤 다들 나처럼 쩔쩔매고 있었는데! 뭐냐 너네! 서로 마음을 터놓고 '아 이거 진짜 하나도 모르겠어'라고 솔직하게 말했으면 동지애를 느끼며 우리가 이미 서로 돕지 않았을까...?
랩 시간이 되어 조교가 왔고, 조교 혼자 10명이 넘는 학생들을 다 도와주다보니 되게 바빠보였다. 결국 내 차례가 되어서 질문폭탄을 퍼부었더니 조교가 조금 설명해주더니 "더 도와주고는 싶은데, 저 애도 봐줘야하고... 일단 이거 보고 에러 고치고 있어봐"하고 가버렸고, 그렇게 랩 시간이 끝나서 조교 퇴근-0- 과제 보충해서 수요일날 보자는 이야기를 남기고 퇴근...
금요일 오후다보니 프로그래밍 잘하는 애들은 벌써 집에 슝 가버렸고, 남아있던 이들도 하나둘씩 "아 나 걍 집에 갈래" 하고 가버렸고, 다섯명이 남았다. 그래도 뒤에 앉아있던 애가 뭔가 게임 비슷한 걸 화면에 띄워놨길래 "있지... 나 좀 도와주지 않을래? 나 진짜 오늘 집에 가고 싶은데 너처럼 창만 제대로 띄워도 소원이 없겠다" 하고 살짝 징징댔더니 나를 붙잡고 정말 차근차근 가르쳐줬다ㅠㅠㅠㅠ 그래서 드디어 게임창도 띄우고 플레이어 두 명이 할 수 있을정도로 키 컨트롤도 만드는데 성공ㅠㅠ 진짜 너무 기뻐서 고맙다는 말을 몇번을 했는지 모른다. 첫인상은 참 차가운 아이였는데 역시 사람은 인상만 보고 판단하면 안될 일이다.
구세주가 도와주었으나 어쨌든 완성한 게 아니므로 게임을 마저 완성하고 이제 이번주 과제도 시작해야하는데 (이번주 과제는 무려 카드게임이다) 주말에 집에서 하려니 갑자기 컴퓨터가 또 말썽이었다ㅠㅠ 파일 멀쩡하게 다 있는데 왜 경로를 찾지 못한다는 것이냐. 경로설정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왜 안된다는 것이냐... 학교 컴퓨터실 가서 하는 수밖에 없다. 다가오는 주도 역시 헬이 될 것 같다.
2.
그리고 수학시험도 다가오고 있다. 지지난주에는 수학 구술시험을 봤다. 하... 그것도 참 할 말이 많다. 언뜻 봤을 때는 정말 쉬워보였다. 증명 시험이었는데, 중점연결정리 하나로 다 증명이 될만한 문제였다. 하지만 그런데... 시험 전전날, 내가 '중점연결정리'를 사용하지 않고 증명해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증명해야하는 건 명제 세 개. 사실 명제1을 증명하면 나머지 두 개는 휘리릭 풀리는 것이었는데, 명제1을 증명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시험날 아침에 그나마 납득할만한 방법을 생각해냈고 대충 휘갈겨 써서 학교에 갔다.
교실 앞에서 줄을 서있는 동안 앞에 있던 애들이랑 각자 어떻게 풀었는지 얘기했는데, 다들 풀어온 방법이 조금씩 달라서 교실 앞에서 열심히 토론이 이어졌는데... 아니, 우리는 왜 이걸 진작에 하지 않았던가... 애초에 서로 그 전날쯤 '내가 증명한 방법 한번 들어볼래?'하고 서로 '음, 근데 그렇게 하면 이 부분이 증명이 안되잖아' 하면서 보충했으면 서로 윈윈이었을 것을, 왜 각자 깍쟁이들처럼 따로 놀다가 시험 직전 복도에서 이러고 있는 것인데...?? 그래도 다행히 선생님 앞에서 떨지 않고 잘 설명해서 패스는 했다. 이제 월말에 있는 필기시험만 잘 보면 일단 8학점은 따는 것인데...
3.
그렇다. CSN때문에 학점의 노예가 되었다. 그래 뭐... 사실 공부하는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이니 학점 이수는 중요한 것이긴 한데... 첫 1년동안 60학점 중에 37학점 이상 패스를 못하면 다음 CSN을 못받는다. 한국대학과는 달리 스웨덴 대학은 재시험들도 많이 보고 '이번에 시험 패스 못하면 담에 보면 되지 뭐' 하는 분위기인 것 같은데, 제대로 배울 수만 있다면 재시험을 몇번씩 보는 건 전혀 개의치 않지만 돈이 걸려있으므로 제때 패스하는 것도 중요한 것이다. 이번 학기는 수학에 15학점, 프로그래밍에 7.5학점, 그리고 다른 과목에 3학점과 4.5학점이 걸려있는데, 마음같아서는 제발 수학은 먹고 들어가고 싶다는... 그런데 프로그래밍 때문에 수학공부할 시간이 없으니 이것도 미칠 노릇이다.
4.
일할 때에는 '아... 공부하고 싶다, 새로운 거 배우고 싶다' 생각했는데, 막상 공부하니 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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