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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2019

한국에서의 7주, 이제 '집'에 가야할 때.

by Bani B 2019. 7. 22.

   예전에 다른 포스팅에서도 썼던 것 같지만, 지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학교에서 누군가 "너는 크리스마스 때 집에 안가?"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 단어가 '집hem'이었으므로, 너무나 당연하게 "나는 룬드 살아서 아무데도 안가"라고 대답했고 그 친구는 당황하며 "음... 근데 내 말은 너 '한국'에 안가냐는 거였는데..."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나서 내가 오히려 스스로에게 충격을 받았는데, 이제는 내가 '룬드의 집'을 나의 홈이라고 생각한다는 데 놀랐다. 그 전까지는 한국에 가는 게 내가 '집'에 가는 거라고 생각했고, '집에 가서 좀 쉬다 와야지'하는 마음이었는데 이제는 여기가 내 집이구나, 나는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하고 새삼스레 깨달았다.

 

   이번에 한국에 와서 약 7주동안 머물렀다. 비행기표를 예약했던 게 1-2월 정도였던 것 같은데, 새학기가 시작하자마자 매일매일 과제하느라 바쁘고 힘들고 날은 어둡고 남친이 취업을 했는데 간호사 3교대라 서로 얼굴보기도 힘들고... 여튼 그런 날들이었어서 여름에야말로 한국에 가서 신나게 놀고 오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한국에 와서 남자친구와 2주동안 관광객모드로 이곳저곳 쏘다니며 맛있는 걸 잔뜩 먹었고, 그가 돌아간 후 5주동안 혼자 부모님댁에 머물며 일상을 보냈다. 아니, 그 '일상'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했다. 스무살 이후로 엄마랑 이렇게 오래 지낸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하고 나서 이민가기 전까지 한달 조금 넘게 집에 있긴 했지만, 그 시간동안 여행을 다니고 친구 친척들 만나고 그래서 정신이 없었다. 그러니 이렇게 진득하게 집에 앉아 엄마와 지낸 게 정말 대학시절 이후로 처음인 것이다.

 

   아빠는 일 때문에 거의 다른 곳에 계시고, 동생도 독립한지 오래고, 엄마와 둘이서 5주를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이걸 계획했을 때 나의 계획은, '그동안 멀리 있어서 못한 효도를 한꺼번에 하겠다'는 것이었는데 말처럼 쉽지 않았다. 오히려 잔소리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냉장고에 유통기한 지난 거는 좀 제때 버리라던가, 이 음식을 이런식으로 관리하면 금방 상한다거나, 방안의 가구배치를 잘못해서 엄마가 비효율적으로 공간을 쓰고 있다며 잔소리를 하거나, 컴퓨터에 자꾸 이상한 거 깔고 똑같은 파일을 대여섯개씩 저장해놓으니까 이렇게 느리고 공간도 많이 차지하는게 아니냐, 등등 잔소리의 주제가 너무 다양해서 나 자신도 놀랐다. 가끔 오는 아빠한테도 건강관리좀 해라, 술을 줄여라 등등 잔소리가 더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 깨달은 점이 있다면, 내가 삼십대가 되어 부모님을 이제 '보살펴드려야할 대상'으로 보기 시작한 반면, 부모님은 나를 이제 '출가외인'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출가외인이라니, 이 무슨 조선시대 같은 말인가. 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신여성이니 집에서 나와 살더라도 마음만은 언제나 가족과 함께 하리라, 집안의 기쁨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리라 했지만 그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일단 물리적 거리가 멀다보니 당장 명절 때 가족여행을 계획하는 것부터가 모두 동생의 몫이 되어있었고, 부모님이 힘들 때 제일 먼저 연락하는 사람도 동생이 되어 있었다. 이걸 예상을 못한 건 아니었어서 그동안 틈틈이 '동생에게 부담을 주지 말고 오히려 멀리 있는 나한테 얘기하라'고 말했건만, 부모님과 동생은 아마도 속시끄러운 일들을 저 멀리 있는 애한테 얘기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었나보다. 이번에 와서도 다들 나에게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즐거운 모습만 보다 가기를' 바라는 게 느껴졌다. 그 마음 모르는 게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가족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 같아서 슬펐고 오히려 더 가족들에게 잔소리를 퍼부어댔다. 

   특히 7주동안 가족들과 이렇게 가까이 있으니 엄마의 고민, 아빠의 고민, 동생의 고민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걸 모른 척하고 싶지 않았다. 1년만에 와서 그런가 오히려 그런 고민들과 문제들이 더 크게, 분명하게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여기에 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더 좋은 해결책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고, 뭐든 좋으니까 내가 뭔가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문제를 끄집어낼수록 가족들이 불편해하는 게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 그냥 이렇게 살고 있었는데 너는 왜 오랜만에 집에 와서 끄집어내냐'는 반응이었다. 그럼 나는, 내가 생각하는 가족의 정의를 떠올리며 "가족이란 서로 좋은 말만 하다가 헤어지는 게 아니라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는 게 아니겠냐"는 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가족은 정말 뭘까. 새 가족을 만들어 떠난 자식에게 원가족은 뭘까. 원가족에게 그런 자식은 어떤 의미일까. 

 

   그래서 '출가외인'이라는 말이 옛날과는 다른 의미로 이럴 때 쓰이나보다. 옛날의 출가외인은, '결혼한 여자는 시댁의 사람이니 친정에서 나간 출가외인이다'라는 뜻이었겠지만... 요즘에는 그런 고리타분한 생각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추세이지만 새 가족을 만들어 떠나간 자식이 원가족을 찾아오면 뭔가 손님 취급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 '출가외인'이라는 말이 쓰일 수 있을 것 같다. 새 가족을 이룬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부모님은 이미 본인들이 해봐서 알고 계시고, 요즘 세상에 제 밥벌이 해먹고 사는 게 힘든 일임을 역시 잘 알고 계시고, 그러므로 더더욱 본인들 힘든 소리가 짐이 될까봐 말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전화를 하면 서로 뭐 먹었냐, 날씨는 어떠냐 같은 얘기를 하다가 끊게 되는 걸지도.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 멀리서도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질문과 잔소리가 한가득인데. 가족들도 물론 마찬가지겠지만 조심스레 전화를 끊듯이 나도 역시 그래야하나. 스웨덴으로 떠나온 날부터 이미 그런 의미의 '출가외인'이 되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하나. 

 

   이제 수요일에 떠나면 최소 1년은 또 기다려야겠지. 다른 잔소리는 다 집어넣고 뭐든 좋으니까 부디 건강하게만 잘 지내달라고, 다들 건강히 자기 생활에 바빠서 나를 못챙겨줘도 괜찮고 오히려 그것도 고마운 일이니 꼭 다들 건강은 챙기자는 잔소리만 마지막으로 한번 더 하고 출국하려 한다. 이제 '집'에 간다,라고 생각하니 원가족에게 미안해지고 '집'에서 혼자 잘 기다려준 새가족에게 고마운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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