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이 높다해도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다는 말만 믿고 꾸역꾸역 올라가고 있는데 이제 중턱 쯤 올라온 느낌이다. 어제 기말고사를 치르고 드디어 여름방학이 되었다. 시작할 때는 그저 여느 학기와 같을 줄 알았던 이번 봄학기가 코로나로 인해 참으로 어수선하기도 했는데 어찌어찌하여 끝나긴 했다. 다음 학기에는 학교에 갈 수 있으려나.
코로나로 인해 대학생활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까먹기전에) 조금 적어보려 한다.
한국도 온라인 개강을 하고 온라인으로 시험을 쳤다고 하는데 스웨덴도 3월 중순쯤 대학과 고등학교 등교를 금지해서 온라인으로 수업이 이루어졌다. 스웨덴 대학은 보통 한 학기를 또 둘로 쪼개어서, 첫 페리오드(1-3월)에 수업 두세개를 듣고 3월에 기말고사를 본 후, 4-6월에 또 새 페리오드가 시작해서 새로운 과목을 공부한다. 그래서 갑자기 학교문을 닫은게 하필이면 3월 기말고사 기간이었고, 3월부터 새로 시작한 과목들은 완전히 온라인으로 공부하게 되었다. 학생도 당황스럽지만 제일 당황했던 건 선생님들 아니었을까. 지금은 모두가 알지만 그때는 정말 생소했던 zoom을 처음 켰는데 선생님이 학생들을 어떻게 입장시키는지를 몰라서 모두가 대기실에 있으면서 선생님 혼자 빈 채팅방에서 강의하신 적이 있었지... >_<
원래 학교에서 직접 실험해야하는 회로이론 과목은 선생님이 만드신 시뮬레이터를 각자 집에서 다운받아 몇 번 클릭해보고 결과를 분석하는 정도로 바뀌었고, 매주 실기수업에 가서 조교한테 코드를 설명해야하는 프로그래밍 과목들도 모두 메신저를 통해 하거나, 글로 구구절절 '왜 내가 이런 식으로 코드를 썼는지' 설명해야했다. 그래서 더 귀찮았다... 차라리 학교 가서 잠깐 조교를 만나 말로 설명하는 게 낫지...
제일 귀찮았던 것은 시험. 시험도 집에서 온라인으로 봐야했는데 그대로 두면 온갖 부정행위가 난무할 게 뻔하므로 학교에서도 고심한 것 같았다. 그래서 lockdown 브라우저라는 것을 다운받게 되었고 그 브라우저로만 시험 문제를 열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시험 보는 동안 다른 프로그램은 열어볼 수 없었다. (프로그래밍 시험이었으니까 다들 컴퓨터에 쳐서 컴파일 해보고 싶었을거야...) 시험 시작하기 전에는 내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보여줘야했고 시험문제를 푸는 내내 웹캠으로 비디오 녹화가 되었다. 어떤 과목은 zoom 켜놓고 시험봐야했다고 >_< 다른 시험은 아예 선생님이 학생 개개인과 30분동안 비디오챗을 해서 구술시험으로 진행되었다. 그 선생님도 진짜 대단한게, 담당하고 있는 과목이 네 개니까 학생이 못해도 300명은 되었을 건데 이번 주 내내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구술시험 보고 있더라... 고생하신 만큼 행복한 여름 보내시길.
5월에는 눈 뜨고 일어나면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 과제를 하고, 중간중간에 간단히 부엌 가서 끼니를 때우고, 밤 늦게까지 과제를 하는 게 일상이었다. 시험공부는 뭐 미리 하는 건 어림도 없었고, 마지막 과제를 제출한 5월 29일부터 벼락치기를 시작해서 6월 1일이랑 4일에 시험을 봤다. 폭풍이 지나간 느낌. 확인할 과제가 없으니 뭔가 허전하다.
...허전하긴 개뿔.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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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수업 하던거는 4월 말에 다 끝났다. 그것도 두 번 수업하고 갑자기 온라인으로 바꾸게 되면서 어수선했지만 수강생분들이 잘 따라와줘서 감사했다. 덕분에 Teams라는 걸 처음 써보고, 화면 공유라는 걸 처음 해보고, 유튜브에 영상을 처음 올려보고, Forms로 퀴즈를 내보고... 온라인 툴을 아주 적극적으로 사용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역시 언어교육은 만나서 하는 게 최고고, 수강생끼리 서로 연습해보는 것도 도움이 되는데, 온라인으로 하니 서로 인터넷 속도차가 나고 소리가 잘 안들리고 해서 어려움이 좀 있었다. 다음 학기에는 상황이 좋아져서 다같이 만날 수 있기를.
초등학생 수업 도우미 알바도 오늘 끝났다! 그것도 초등학교 문을 닫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이 나라는 끝까지 초등학교 문을 닫지 않고 이렇게 슬슬 다 정상화시키려는 것 같다. 어쨌든... 초등학생들이 벌써 그렇게 고급진 어휘를 배우고 꽤 어려운 내용을 배우는구나,하고 알게 되었다. 시작하자마자 받은 수업자료가 '몸 속 기관과 소화과정' 이런 거였는데 저는 중학교 이후로 생물 비슷한 과목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스웨덴 콤북스에서도 생물 과목은 안들어서 관련 단어 하나도 모름..... 그 다음 받은 수업자료가 스웨덴 역사였는데 이건 더 모름..... 이번 일을 계기로 몸속 장기들의 스웨덴 이름과 스웨덴 역사를 조금 알게 되어서 나에게도 좋은 공부가 되었다. 아이들도 행복한 여름방학을 보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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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같아서는 아무 것도 안하고 여름 내내 놀고 싶지만, 아무 것도 안하고 노는 걸 정말 못하는 체질이므로 여름학기를 신청했다. 우리 학교 커리큘럼에 1,2,3학년 때는 웹디자인이나 앱개발 관련한 과목이 없어서 그걸 좀 따로 배우고 싶었다. 마침 웁살라대학에서 디스턴스로 과목이 개설된 걸 보고 바로 신청했다. 그리고... CSN을 받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그동안 받아놓은 걸로도 여름을 날 수는 있었지만... 올해가 가기 전에 운전면허를 따려고 생각중이라 학원비를 마련하려고 여름학기와 CSN을 신청했다. 운전면허 따는 건 과연 얼마가 들까. 3만크로나 이내로 무사히 잘 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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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가려고 하는데 비행기가 이미 세 번 취소 되고 네번째 예약이라 과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중간에 암스테르담에서 8시간 대기해야하는 것도 그렇고, 인천공항에서 집까지 가는 여정도 쉽지 않을 것 같고 집에 가서 2주동안 격리해야하는 것도 그렇고, 이래저래 험난한 귀성길이 될 것 같지만 그래도 꼭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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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ad somm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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