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참 느리게 가면서도 빠르게 간다. 벌써 4학년이 되었다. 이제 누가 학사냐 석사냐 물으면 당당하게 석사한다고 말하는 그런 4학년이 되었다. (학석사통합이라 학부졸업도 안한주제에 석사한다......)
그동안 책을 거의 안 팔다가 한꺼번에 1-3학년 책을 팔겠다고 페이스북 학과 그룹에다가 올렸더니 연락이 많이 왔다. 내가 시세 파악을 못하고 다른 애들보다 싸게 올렸던 걸까...? 책을 한꺼번에 여러권 사겠다는 애들 우선으로 팔아서 세 명을 만났다. 과활동을 전혀 안하니, 동기와 선배를 제외하고 후배...라는 애들을 만나서 얘기한 게 처음이다. 한 명은 그냥 새내기 >_< nollning(신입생환영행사) 기대된다고, 놀닝 때 뭐하냐고 묻는 그런 새내기...(코로나라서 대학수업은 온라인으로 하는데 놀닝은 학교에서 한다! 도대체 이게 뭔 일인가...) 그나저나 놀닝이 왜 놀닝이냐면, 0학년(nolla)이 5주간의 nollning(학교마다 다름... LTH는 무려 이걸 5주나 함)을 거쳐서 비로소 1학년(etta)이 된다는 그런 거창한 스토리가 숨겨져있는데, 사실 놀닝만 하고 그만두는 애들 많음..... 속으로 '훌륭한 1학년이 되어서 이 책 다 공부하고 나서 팔으렴'하고 생각했다. 나머지 두 명은 2학년이었는데, 4학년이라고 했더니 붙잡고 한참 말을 시켰다... 세부전공은 뭐냐, 왜 그렇게 생각하냐, 3학년 때 배우는 과목들 어땠냐, 수학 더 어려워지냐 어쩌고저쩌고.
웬만하면 당당하고 멋있게 이것저것 말해주는 좋은 선배이고 싶었으나, 나는 아직도 석사 세부전공을 안 정했다! (...라고 대답했더니 그 2학년 둘다 당황...) 왜 나는 진로를 정해야하는 순간만 되면 이렇게 사람이 우유부단해지나 모르겠다. 앞으로 4학기, 유럽식으로 120학점이 남았는데, 그 중 마지막 30학점은 논문이니 90학점(3학기)가 사실상 남은 셈이다. 학과에서 정해놓은 세부전공 중 하나를 골라서 거기에 있는 전공과목을 최소한 60학점(...8과목 정도 되나 그러면?) 들어야하는데 아직도 안정했어! >_<.... 일단 두 달동안은 AI 전공과목인 '자연언어 처리'와, 그래픽 전공과목인 '이미지 처리'를 듣는다. 이미지처리는 왠지 포토샵을 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런 거 없고 걍 수학....... 어쨌든, 11월부터 들을 과목을 신청하려면 진짜 이번달에는 전공을 정해야할텐데 도저히 고를 수가 없다.
사실 정말 관심있는 건 소프트웨어 개발이다. 특히 여름에 인턴십을 하면서 더 관심이 생겼고, 이 분야도 발전가능성이 많고 내가 배울 수 있는 것, 배우고 싶은 게 정말 많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전공은 조모임이 정말 많고 그룹 규모가 큰 것 같다. 아무래도 회사 가면 많은 사람들과 협업을 해야하니 그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은데, 문제는 내가 2-3월에 들었던 수업 조모임에서 받았던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았던 것 같다. 조모임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다. 인턴십을 하면서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했었는데, 거의 멘토하고만 얘기하고 나 혼자 있었으니 조모임 트라우마를 극복하기엔 좀 부족했던 것 같다. 학교 상담사님이랑 꾸준히 이야기를 해볼 생각인데 과연 내가 그 소프트웨어 그룹 프로젝트 수업을 신청할 용기가 날까...
반면 AI과목은 다 혼자 또는 두 명이서 하는 그룹워크이고, 학교 절친이 이걸 공부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내가 이걸 고른다면 거의 모든 과목을 얘랑 들을 수 있으니까 윈윈이 되겠지만... 그리고 조모임보다는 차라리 수학이 낫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AI전문가를 그렇게 많이 채용할까? 물론 스웨덴 전국, 또는 전세계로 눈을 돌린다면 수요가 어마어마하겠지만 나는 룬드에서 이사갈 생각이 없는데 여기에서 이걸로 취업이 될만큼 일자리가 많이 있을까? 안그래도 애들이 다 AI로 몰린 것 같은데 내가 비집고 취업할만큼 일자리가 여기에 있을까, 이게 가장 걱정이다.
그래서 전공...을 고르지 말고, 전공상관없이 내가 듣고 싶은 과목들을 다 적은 다음에 골라보기로 했는데, 공교롭게도 다 적고나니 소프트웨어 전공과목이 절반, 인공지능 전공과목이 절반이었다. -_- 어떻게 고르라고오오오......
그렇게 어수선하게 4학년이 시작되었고, 개강 3일째인 오늘 벌써 과제 하나를 냈다. 첫 과제라 어려운 건 아니었는데, 이때까지와는 달리 선생님이 인스트럭션을 거의 안줬다. 프로그램을 테스트해보고 간단하게 레포트를 쓰는 거였는데, 어떤 부분을 테스트할지도 안알려주고 레포트 양식이나 뭘 포함해야하는지도 안알려줌... 물어보니, '응 그건 너네가 정하고 알아서 해봐'... 그래서 정말 내 맘대로 써서 냈는데 아무래도 고쳐서 내라고 한번은 되돌아오지 않을까 싶다. 이제 랩에서는 선생님이 하나하나 알려주지 않는 것인가..? (그렇다고 해서 이때까지 랩에서 늘 친절하게 다 알려줬던 것도 아니면서)
LTH다녔던 애들이 입을 모아 하던 소리가, '4-5학년은 널널해' 였는데 나도 그 널널한 2년이 너무 궁금하고 꼭 남은 2년이 널널했으면 좋겠다. 그 2년이 정말 널널한지 두고보자며 3년을 버틴건데, 그게 정말 그렇게 될까?
일상/2021
4학년, 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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