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게 많아서 이렇게 블로그를 쓸 때가 아닌데 지금 거의 두시간동안 저 가족관계증명서 하나 뽑겠다고 난리를 쳤으니, 이 난리를 기념하며 글을 써보겠다.
*
스웨덴에서 혼인신고를 한 후 한국에서도 혼인신고를 하려고 대사관 홈페이지를 보니, 기본증명서, 혼인관계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같은 게 필요하다고 써있었다. 몇 달 전에 주민등록초본을 뗄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공인인증서 같은 거 없이 쉽게 휴대폰 인증을 해서 출력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저 서류들도 간단히 뗄 수 있을 줄 알았다.
*
공인인증서가 없이 몇 년을 살았다. 물론, 처음 이사왔을 때는 공인인증서가 있었지만, 그게 만료된 후에는 따로 재발급을 하지 않았다. 한국 계좌는 다 정리하고 국민은행 하나만 남아있는데, 그마저도 미리 토스 인증을 해놨어서 계좌이체할 일이 있으면 토스로 했고, 카카오뱅크가 생긴 후에는 카카오뱅크로 간편하게 송금을 했다.
아 그런데... 기본증명서, 혼인관계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는 민원24가 아니라 법원 전자가족관계등록시스템에서 발급을 받는 서류들이었고, 법원은 아직도 공인인증서만 된다! 그걸 몰랐던 나는 저번에 주민등록초본 뽑던 생각만 하고, '5분이면 될거니까 지금 받아놓자'며 컴퓨터를 켠 것이었다. 그리고 '공동인증서'라는 말에 머리가 하얘졌다.
공동인증서라니. 나는 분명히 옛날에 한국에서 공인인증서가 사라졌다는 말을 봤던 것 같은데? 이건 그냥 또다른 이름의 공동인증서가 아닌가? 어쨌든 법원이 이렇게 요구를 하니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국민은행 앱을 정말 몇년만에 열어 로그인을 했다. 하, 그런데 공동인증서를 받으려면 국민은행 모바일인증서를 또 받아야한다고? 그래, 까짓것 받아주마. 한국 휴대폰 심카드를 꺼내 바꿔끼우고 열심히 휴대폰인증을 해가며 국민은행 모바일인증서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신분증 사진도 찍어야 하는데 여권도 가능하다.)
그리고 대망의 공동인증서 발급을 눌러서 시키는 대로 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스마트폰으로 하고 있었다. 아니 그런데, 마지막 단계인 '비밀번호 설정' 이후 오류가 난 것이었다! 처음에는 비번을 이상하게 쳤나, 해서 다시 해봤는데 같은 에러만 났다. 확실하진 않은데, 휴대폰 저장이 안되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참고로 아이폰SE2를 쓰고 있다.) 어쨌든... 도대체 왜 안되는건지 영문은 모르지만 왠지 컴퓨터로 하면 될 것 같아서 데스크탑으로 다시 시도했다.
데스크탑. 우리집 데스크탑은 스웨덴어로 된 윈도우10이다. 국민은행 공동인증서 발급 페이지에 들어가니, 역시나... 그놈의 안랩 뭐시기와 또 다른 보안프로그램을 설치하라고 나왔다. 전체설치를 눌렀는데 설치페이지도 글자가 다 깨져나오더니, 설치 후에도 뭔가 에러메시지로 보이는 것이 떴다. 글자가 다 깨지니 알 수가 있나... 한참을 실랑이하다가 결국 노트북으로 해보기로 했다.
내 노트북...은 영어로 되어있긴 하지만 리눅스 민트다. 다행히 보안프로그램들이 리눅스 버전이 있어서 설치는 했는데... 문제는 설치는 분명 다 했는데 이놈의 국민은행 홈페이지가 그걸 인식을 못해서 진행이 되질 않았다. 설치를 한 다섯번은 한 거 같은데? 자주묻는 질문에 들어가서 봤는데 뭐 죄다 설명이 익스플로러 기준이야? 언제적 IE6 얘기를 하고 있어 이사람들이...
*
국민은행 공동인증서를 포기하고, 혹시 카카오뱅크로도 공동인증서를 받을 수 있는지를 검색했다. 그리고 그대로 따라해서 카카오뱅크 (정확히는 카카오페이) 인증서를 받는 데 성공하긴 했다. 아니 그런데... 이건 그 공동인증서가 아니잖아? 법원이 요구하는 그 공동인증서가 아니고 그냥 카카오의 인증서인 것 같은데 수많은 블로그한테 낚여서 나는 이게 그 공동인증서인 줄 알고 받았던 것이다!
*
그래서 다시 국민은행으로 돌아왔다. 사실 이 과정에서 수십번 '정말 혼인신고를 해야할까? 때려칠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미 대사관 방문약속도 잡았고 기차표도 끊었으므로 한번만 더 해보기로 했다. 다시 데스크탑으로 돌아와 보안프로그램을 설치하기로 했다. 전체설치를 했을 때는 이상한 외계어가 나오더니, 따로따로 설치를 하니 다행히 제대로 된 영어로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무사히 설치를 하고 나니... 드디어 발급 관련 페이지가 나왔고, 마지막 단계까지 가자 인증서 저장위치를 묻는 창이 나왔다. 이건 정말 옛날 그 공인인증서 발급이랑 전혀 다를 게 없는 것 같은데 도대체 뭘 바꾼 거지? 뭘 없앴다는 거지? 공인인증서 없이도 은행업무를 할 수 있다는 그런 차이인가?
여튼 무사히 데스크탑에 공인...아니 공동인증서를 저장하고 다시 법원 전자가족관계등록시스템으로 돌아갔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 공동인증서로 로그인이 바로 되었고, 필요한 서류를 받아 PDF로 저장하는 것도 성공했다. 아... 옛날 생각을 갑자기 또 떠올리자면, 한 8년전에 스웨덴에서 몇달 있었을 때 갑자기 등본이 필요한 적이 있었다. 그때 공인인증서로 발급신청하는 것까진 성공했는데 인쇄...를 못했던 기억이 난다. PDF 저장이 아예 안되는 시스템이었고, 무조건 유선으로 프린터 연결이 되어있어야 화면을 띄워주는 아주 그지같은 시스템이었다!!! -_- 그때에 비하면 오늘은 무사히, 인쇄버튼 눌러 PDF 저장하는 것까지 가능했으니 다행이지만, 제발 이 공인인증서 발급은 좀더 쉬워졌으면 좋겠다. 정말 그 보안프로그램들이 효과가 있는 것인지...? 그냥 크롬 확장프로그램 같은 걸로 만들어서 추가하게 하면 안되는 것인지...? (보안 관련과목은 거의 안들어서 잘 모름....)
*
그렇게... 5분이면 될 줄 알았던 증명서 발급에 약 2시간을 썼다. 하.
*
이번에도 느낀 건, 해외 나간다고 해서 휴대폰 해지하면 이럴 때 아주 힘들다는 거... 기본적으로 모든 것이 휴대폰 인증이기 때문에, 한국 휴대폰 유심이 없었다면 공동인증서인지 뭔지 하는 것도 못받았을 거고 아무것도 못했을 것이다. 알뜰폰 유심 싼 거 많으니까, 아이핀 이런 거 받아오지 말고 꼭 한국 핸드폰 심카드를 들고 오시길. 아 그런데 아이핀은 아직도 있나? 아.... 없구나 이제... 2021년 아이핀 퇴출이 정부 목표였구나. 다행이다. 아이핀 써먹어보려고 몇번 해봤는데 제대로 작동한 적 한번도 없었음.
'일상 > 202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웨덴에서 시청 결혼식 (0) | 2021.12.16 |
---|---|
규동 - 소고기보다는 그 밑에 깔린 밥이 좋아 (0) | 2021.10.07 |
9월말 (0) | 2021.09.30 |
심심한 일상 (0) | 2021.09.19 |
4학년, 개강 (0) | 2021.09.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