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연습을 틈틈이 하고 있다. 다음 주에 멀리 사는 친구가 놀러와서 며칠 자고 가는데, 누가 이렇게 멀리서 오는 게 오랜만이라 설레기도 하고 뭘 보여줄까 자꾸 생각하게 된다. 날씨가 좋으면 차를 빌려서 Ales stenar 같은 관광지에 갈까 했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두 명이 더 같이 가게 될 것 같다. 세 명을 책임지고 운전을 하게 되다니 >_< 게다가 그 중 한명은 임산부인데... 책임감이 커져서 운전연습을 안할 수가 없다.
저번에 조금 썼지만, 룬드에서 이용할 수 있는 '앱 기반' 렌트카 서비스는 두 개다. 그린모빌리티 아니면 M. 가격은 M이 더 싼데, 가입하려고 했더니 연 수입 150,000크로나 이하는 가입 안된다더라ㅠㅠ 학생은 여기서 차도 못빌리는구나. 그린모빌리티는 면허딴지 1년 지나면 된다던가, 하여튼 그래서 무사히 가입이 되었다. 일반요금은 1분당 6크로나지만 미리 충전을 하면 할인이 되고 뭐 그런게 있다. 그래서 보통 분당 2-3크로나로 탈 수 있다. 그거를 보기만 하고 '나중에 시간되면 해봐야지' 생각했는데... 며칠전에 누워서 이것저것 눌러보다가 더 자세한 정보를 보고 싶어서 '구매'를 눌렀고 (아니 보통 그러면 구입/환불 조건 보여주고 확인 후 결제되지 않나???) 그게 바로 결제가 되어.... 나는 얼떨결에 200분을 구매했다. (...그리고 600크로나가 바로 카드에서 빠져나갔다.) 다행히 그 200분은 나눠서 써도 되지만 아니 그래도...!!! >_<
(*조금 다른 얘기지만, Lunds bilpool이라는 조합이 있는데 1년 조합비를 내면 차를 정말 저렴하게 빌릴 수 있다고 한다. 음 이건 내년에 생각해봐야지)
그렇게 해서 오늘 한시간 정도를 탔다. 혼자 타기엔 너무 떨리고... 차가 있는 주차장은 처음 가보는 5층짜리라서 더 떨리고... 오토는 2007년 도로주행 시험 이후로 운전해본 적이 없고... 그래서 집사람의 아버지를 섭외해서 함께 갔다. 오랜 운전경력 중 오토 운전은 딱 한번 해보셨다는 시아버지 역시 이 처음보는 전기차가 굉장히 낯선 것 같았다. 앱으로 차 문을 열 수 있는 것도 나에겐 꽤 충격이었고 (...한국엔 이미 오래전부터 쏘카가 있었지만>_<) 운전석에 앉아서 이것저것 확인하는데 와 정말 기어 D에 넣으면 이제 내 오른손은 아무것도 안해도 되는건가? 왼발을 무의식적으로 클러치 자리에 갖다댔는데 아무것도 없어서 허전했는데... 10분만에 완전 적응하여 '오토 만세'를 외쳤다. 변속을 수동으로 안하니까 교통흐름에 더 집중할 수 있구나. 나같은 초보운전에겐 너무 좋은 기술이다. 남편 아버지는 전기차가 정말 조용해서 좋다고 하셨다. 일요일에 또 수동차량을 타기로 했는데 나 다시 수동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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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말부터 시작했던 섬머잡 찾기가 드디어 오늘 끝났다. 열군데 정도 지원했고, 그 중 두 군데에서 면접을 보자고 했지만 한 군데는 그냥 지원자 모두를 초대해서 무인 면접(...스스로 대답 녹화해서 보내는 면접)을 본 느낌이었고 나도 그 회사가 하는 일에 대해 아는 게 없었기 때문에 별 기대를 안했다. 그리고 나머지 한 곳은 이미 2월에 지원했는데 3월 내내 아무 연락이 없길래 포기하고 있다가 갑자기 지난 주에 연락이 와서 어제 면접보고 오늘 합격전화를 받았다.
어제 면접보면서 분위기도 화기애애했고, 면접관 중 한명이 '네가 토이프로젝트로 만든 거 테스트해봤는데 좋더라'라고 해서 기분도 꽤 좋았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난 후 '근데 버그를 하나 발견했어! 이거 몰랐어?'라고 해서 좀 당황...) 여름에 하게 될 프로젝트 설명을 들었는데 그것도 참 재밌어보였고 다 좋았는데, 나는 인공지능을 공부한다고 이력서에 써놨는데 거기서 나한테 시킬 일은 웹어플리케이션 개발이라 내가 정말로 그걸 하고싶은지 아닌지, 졸업후에 그쪽 진로도 생각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계속 확인하고 싶어했다. "제가 인공지능을 1년 공부하긴 했지만 무조건 그것만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졸업 전에 두루두루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해보고 결정하고 싶다. 그래서 섬머잡을 하고 싶은 거다"라고 대답은 했는데 '아 왠지 안될것 같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리고 오늘 전화가 와서 "오늘 우리가 또 다른 사람 면접을 봤거든? 근데 걔가 좀 스펙이 좋고 어쩌고...." 이러길래 정말 '아 진짜 안됐구나'하고 마음정리를 시작했는데 갑자기 "그래도 너 뽑기로 했어! 네가 하고 싶다고 했으니까. 웰컴"해서 한... 1-2초 대답을 못하다가 간신히 "탁쏘뮈케"를 입밖으로 냈....ㅠㅠㅠㅠ 도서관에 있다가 잠깐 나와서 전화받은 거였는데 진짜 좋아서 소리지르고 싶었다.
기분이 좋긴 좋은데... 혼자 어찌어찌 뭘 만들긴 했어도 그게 그렇게 잘만든 것도 아니었고ㅠㅠ(코드가 굉장히 지저분한데 그건 보셨나...? 봤으면 날 뽑을 리가 없는데) 그 프레임워크는 제대로 배운게 아니고 인터넷 강의 이것저것 보고 배운 거라 내가 제대로 뭘 알고있는건가 싶고, 프로젝트에 사용한다는 프레임워크는 다뤄본적도 없고 (물론 면접때 솔직하게 얘기함) 와... 이제부터 섬머잡 시작하기 전까지 벼락치기 공부해야하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다른 디자인 인턴이랑 합심해서 뭘 만들어내야한다는데 난 항상 부트스트랩 같은 거나 써서 대충 만들었고 디자이너랑 뭘 해본적은 정말 없는데 뭘 어떻게 하는거지? 오늘 면접본 그 스펙좋은 사람도 같이 뽑을까말까 고민중이라는데 제발 그 사람도 뽑아줬으면 좋겠다. 스펙 좋은 애가 날 좀 끌어줬음 좋겠... 작년에도 느낀거지만 올해 역시 그 생각이 든다. '왜 절 뽑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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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거의 4년동안 다니면서 진짜 별 똑똑한 사람들을 보다보니, 항상 '내가 이 학교에서 공부하게 된 거는 다 운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고, 시험과 과제를 패스한 것도 다 똑똑한 친구와 같이 공부한 덕분이고, 섬머잡을 구한 것 역시 그냥 다 운이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 얘기를 했더니 한 친구는 그걸 바로 '임포스터 신드롬'이라고 한다고 알려주었다. 어 맞아, 나 항상 내가 임포스터인거 같아. 근데 지금은 특히 더 그래. 내가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 다른 사람들이 날 제대로 본 건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어, 뭐 그런 생각들이 든다.
나는 면접 때 거짓말은 안한다. 자소서는 쓸 내용을 고르고 고르고 골라 스토리를 만들긴 하지만 황당한 픽션을 쓰진 않는다. 얄팍한 거짓말이 얼마나 금방 들통나는지도 잘 알고, 그게 드러날 때의 당황스러움은 상상하기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럼에도 면접을 보고 나면 항상 기분이 안좋다. 내가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나를 조금 '세일즈맨'처럼 소개했을 뿐인데, 그냥 내가 아닌 나를 소개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하고 싶었던 말은 '그냥 저는 운이 좋았어요. 전 그냥 쭈구리예요!!! 제가 바로 임포스터입니다!'인데 면접자리에서 그럴 수는 없으니... 그래서 면접 후에 '솔직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모양이다.
근데 그러지 말자. 다른 사람들이 날 제대로 본 게 아니더라도 그게 내 책임은 아니잖아? 내가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은 더 괜찮은 사람인 걸지도 모르잖아? ...라고 생각하려 계속 계속 노력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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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쓰고 나니 '4월은 너의 거짓말'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생각나네. (내용이 너무 진부하고 스스로도 왜 봤는지 모르겠지만 서른 넘어 그렇게 열심히 본 애니는 몇 없...) 그래도 오프닝이 참 좋은 만화였다. 노래 들으면서 힘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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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4월의 거짓말 중 가장 큰 거짓말은 스웨덴 날씨 아닌가. 한동안 따뜻해서 벚꽃 피우고 개나리 피우면서 봄인 척 하더니 갑자기 춥고 눈오고 겨울이다. 이거야말로 매년 겪는 4월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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