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말에 한국에 가니 철쭉과 영산홍이 활짝 피어있었고, 정말 오랜만에 그 달콤한 꽃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봄밤에 맡는 꽃냄새가 가끔 그립곤 했는데 어쩌다보니 내가 이렇게 봄에 한국에 오기도 하는구나… 그렇게 철쭉이 진 후 라일락이 피고, 라일락이 지고 장미가 피자 스웨덴에 가야할 날이 되었다. 그리고 스웨덴에 오니 이제 여기도 집집마다 장미가 활짝 피기 시작했다.
한 달동안 운전을 정말 많이 했다. 한국에서 뭐했냐고 누가 물으면 운전밖에 기억이 안난다… 주 2-3회를 서울로 왕복해서 다녀오고 천안,아산에서도 운전을 했다. 스웨덴에서 운전을 익힌 자에게 한국 고속도로는 마치 아우토반처럼 느껴졌고, 갑자기 오토바이가 번쩍 나타나고 앞에서 깜박이도 안켜고 당당히 끼어들어오는 시내는 마치 강한자만이 살아남는 야생같았으나, 금세 적응하고 옆차 속도에 맞춰 가속페달을 밟는 나는 역시 한국인인가…?
그리고 한달동안 정말 많이 먹었다. 서울 왔다갔다하고 집에 오면 새벽까지 과제를 하다 자고는 아침에 또 일찍 일어났으니, 나는 보통 그런 상황에서 살이 팍팍 빠지는 스타일인데 얼마나 먹었으면 오히려 3킬로가 늘어서 왔다. (그리고 스웨덴에 온지 일주일만에 2킬로가 다시 줄었다.) 하긴… 스웨덴에 있으면 아침은 오트밀, 점심은 대충 샌드위치, 저녁만 거하게 먹는데 한국은 삼시세끼를 그렇게 먹어버리니… 그 와중에 병천순대를 못먹고 온 게 아쉽지만 가을에 또 가니까 괜찮다.
다시 스웨덴으로 오는 발걸음이 무거울 법도 했지만, 9월에 다시 올 테니까 세 달동안 잘들 있으라는 말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가을에 만나!”라는 말이 참 좋았다. 한국이 스웨덴이랑 좀 더 가까이 있어서 이렇게 세달에 한번씩 왔다갔다할 만한 거리면 좋을텐데…
2년만에 간 한국은 하나도 낯설지 않았는데, 오히려 한달있다가 돌아온 스웨덴이 새삼스럽게 낯설었다. 그동안은 한국 갔다가 스웨덴에 오면 좀 마음이 헛헛하긴 해도, ‘아 역시 이젠 여기가 내 집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문을 여는 순간 냄새부터 너무 낮설었다. 내가 정말 여기 살았었나? 아 물론 그랬지. 그랬는데 왜이렇게 낯설어? 뭐 그런 느낌이 이삼일은 갔다. 한국에서 너무 바쁘게 살다 와서 다시 몸이 한국에 적응을 했던 걸까, 마치 스웨덴에 놀러온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돌아오자마자 며칠 후에 바로 섬머잡을 시작했다. 작년에 일했던 회사 바로 옆건물이라 언젠가 작년 멘토를 마주치게 되지 않을까 만나면 무슨말을 할까 두근두근하며 다니고 있다. 날 기억이나 할까 싶지만… 집은 룬드 남서쪽인데 회사는 북동쪽이라 아침마다 오르막길 5km를 자전거로 가는데, 집을 나설 때는 살짝 춥지만 중간쯤 가면 더워지고 도착하면 땀이 막 난다.
이제 겨우 일주일 지났지만 일이 꽤 재밌다. 작년에는 재택이기도 했고 5주라서 짧기도 했고 ‘인턴’이라는 명칭답게 나에게 아주 처음부터 찬찬히 가르쳐가며 혼자서도 해볼만한 작은 프로젝트를 쥐어줬었다. 그때도 나름 재밌었고 멘토와 1대1로 대화하면서 많이 배웠다. 지금 일하는 곳에서는 네 명이서 섬머잡을 하고 있는데 한 명은 디자인을 하고 다른 두명이랑 셋이서 개발을 하고 있다. 10주동안 하는 프로젝트인데 처음 써보는 프레임워크라서 첫 이틀은 초심으로 돌아가 헬로우월드 만들면서 공부만 했다. 여튼 나 말고 다른 섬머워커들이 있으니 시니어들한테 바로 물어보기보다는 얘네들이랑 같이 얘기해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데, 정말 실전에서 동료들이랑 커뮤니케이션하고 일하는 방법을 배우는 거니까 좋다. 그리고 애들이 말을 참 재밌게 해서 말 몇 번 주고받고 코딩 좀 하고 나면 시간이 금방 간다.
…하지만 아무리 그들과 하하호호 즐겁게 일하더라도, 그들에겐 모국어지만 나는 일+하루 8시간 스웨덴어청취하고 집에 오면 방전… 물론 학교다닐 때도 그랬지만. 외국어는 역시 외국어다. 집에 오면 한국음악을 찾고 한국어 책을 읽게 된다. 그리고 열시취침… 와 내 인생에서 열시 취침이라니, 옛날에 한국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할 때도 열시 취침은 안했던 것 같은데… 그땐 젊었으니까 그러고도 밤에 사람만나 놀 수 있었던 건가 싶다.
그리고 이게 이번 여름 최고의 실수가 아닐까? 이번 봄, 과연 섬머잡을 구할수 있을것인가 말것인가 불안해하면서 만일을 대비해 여름코스를 신청해놨었다. CSN이라도 받으려고… >_< 1지망은 프로그래밍코스였는데 실수로 등록을 안했던건지 날아가고, 2지망이었던 덴마크어 코스를 듣게 되었다. 그래도 나름 코펜하겐 많이 놀러갔었고, 덴마크 사람이랑 최근에 꽤 오래 대화도 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 덴마크 친구가 외국인을 배려해 정말 또박또박하게 말해준거구나…하고 깨닫게 되었다.
강의자료랑 공지가 다 덴마크어로 올라오는데 솔직히 귀찮아서 공지 그냥 번역기로 돌린당… 선생님은 아마도 스웨덴어로 강의를 촬영하고 계시는 거 같은데 듣다보면 이게 정말 스웨덴어로 설명하고 있는건가 싶기도 하다. 이번 주는 모음을 어떻게 발음하는지를 배웠는데, 어제 그걸 들으면서 따라하다보니 목이 아팠다. 목 쓰는 발음이 많네… 그리고 적힌 거랑 발음이 너무 다르네… 변화도 많네… 혹시 덴마크 워홀을 갈까 스웨덴 워홀을 갈까 고민하는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면 나는 언어때문에라도 스웨덴 워홀을 추천하겠다. 덴마크어는 그렇게 단기간에 배울 수 있을 언어가 아닌 것 같다.
야심차게 넷플릭스에서 덴마크어 자막 켜고 덴마크 드라마도 보기 시작했는데, 자막을 보면 스웨덴어랑 비슷하니 내용은 대충 이해가 되는데 들리는 거랑 써있는 거랑 매칭이 전!혀! 안된다. 그들은 도대체 어떻게 언어를 배웠던 것일까…
이미 CSN을 받아버렸고 뱉어내기는 싫으니 어쨌든 통과는 해야한다. 기말시험은 심지어 구술시험이라 발음 연습을 안할 수가 없다. 따뜻한 차 한잔 마시고 조금 해보다가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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