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한달을 한국에서 보내고, 9월 1일에 또 한국에 왔다. 지난 봄에는 아버지가 편찮으시대서 갑자기 온 거였지만(그리고 아주 다행히도 치료가 잘 되었다) 이번 가을여행이야말로 우리가 1년에 걸쳐 준비한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내가 그의 모국어를 배웠듯이, 그도 내 모국어를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그도 정말 한국어를 잘 하고 싶어했지만 독학체질은 아닌 것 같았고, 학원에 보내기에는 간호사 3교대 근무에 맞지 않았다. 과외는 싫고 꾸준히 학교에 가서 숙제도 하고 시험도 보고 다른 사람들이랑 으쌰으쌰하면서 배우고 싶어했다. 그러면 한국가서 어학당 가는 게 최고인데, 대학부설 어학원은 한 코스에 10주로 수업을 해서 아무리 스웨덴 휴가가 길더라도 부담이 되었다.
그러다 내 남은 학점을 계산하다가 (정확히는... 어떻게 하면 전공과목을 최대한 안듣고 꼼수를 부려 졸업할 수 있을지 잔머리를 굴리다가) 여름코스로 딴 학점을 인정받게된다면 최소 두 달, 잘하면 한 학기까지도 조기졸업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조기졸업은 관심이 없고, 수업 안듣고 쉬는 타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흠? 그러면 집사람을 데려가서 한국어도 가르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 기대 안하고 말해봤는데 의외로 흔쾌히 그러자 했다. 그도 일을 좀 쉬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그는 보스에게 '한국어 좀 공부해오겠다' 말하며 3개월 무급휴직을 했고, 한국 부모님댁 근처에 있는 대학부설 한국어과정을 신청해 다음주부터 다닌다. 그가 결정한 일이긴 하지만 사실 이거 말고 올해 그가 하려던 계획이 다른 게 있었는데, 그걸 미루고 선뜻 휴직하고 한국에 같이 와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한국어과정 신청하는 게 좀 빡셌다. 대학 가는 것도 아닌데 필요한 서류가 굉장히 많았다. 특히 대학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 아포스티유 공증받는 거라던가... (스웨덴 대학 성적증명서에는 직인을 안찍어주기 때문에 아포스티유 공증을 안해준다고 변호사가 그랬는데, 그걸 못받아서 어학원에 못가게 될까봐 쫄았다...) 어학원에서 처음에 잘못알고 '어학비자나 기타 비자가 있어야 어학연수가 가능하다' 그래서 또 걱정을 했고 (다행히 출입국사무소에서는 90일 무비자 체류하면서 어학당 다녀도 상관없다고 답변해주었다) 혹시라도 코로나 때문에 외국인 입국 제한 같은 게 다시 생길까봐 그런 제약이 생겨도 같이 갈 수 있도록 혼인신고도 했다. (ㅇㅇ... 혼인신고는 진짜 이런 이유로 한거...) 그리고 혹시라도 코로나 때문에 학생이 안모여서 강좌가 취소되거나 할까봐 걱정했고... 하지만 서류들도 다 보내고 수업료도 입금하고 안내메일도 받고 집사람은 신나서 한국에 오자마자 가방도 사고 학용품도 사고 자전거도 샀다.
*
핀에어를 타고 입국했다. 헬싱키에서 인천은 원래 8-9시간 걸린다고 들었는데 아직도 러시아 땜에 돌아가서 11시간 반이 걸렸다. 핀에어는 처음이라 원래 그런건지 아니면 경제사정이 안좋아서 바뀐건지 모르겠지만 내 기준에 기내식이 정말 작았다ㅠㅠ 간에 기별도 안감... 게다가 나는 채식 기내식을 시켜서 따로 받았는데 더 작아서, 그냥 일반 기내식 먹을걸 후회할 정도로 작았다...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김치찌개를 사먹어야겠다고 다짐하며 버티다가 내렸는데, 입국하고 짐 찾고 나오니 12시였고 점심먹기에는 시간이 애매해서 바로 집사람 코로나검사를 시키려 인천공항 바깥에 있는 코로나검사소에 갔다. 한국인은 보건소 가면 무료지만 단기체류 외국인은 어딜가든 돈내고 검사를 해야하니 그냥 일찌감치 여기서 시키는 게 낫겠다싶었다. 아니 근데 미리 예약을 했는데도 30분을 기다렸다. 대한민국 관광업의 미래는 밝구나... 외국인들이 이렇게 많이 오네...
이틀 정도는 시차적응하느라 좀 힘들었고... 집에서 말을 많이 해야하니까 조금 힘들다. 나는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밖에서는 말을 많이 하지만, 그만큼 집에서는 말안하고 쉬는 시간이 무조건 필요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무조건 필요한데... 한국엘 3년만에 와서 신이 난 집사람은 한국어를 배우겠다는 의욕까지 더해져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밖에 나가고 싶어하고 열심히 말을 하고 있다. 근데 그가 엄마랑 이야기할 때도 내가 중간에 껴줘야하니 내가 쉴 틈이 없다... 빨리 학교 시작해서 저 친구가 학교가는 시간에 내가 좀 혼자 쉬었으면 좋겠네... 사실 혼자 좀 있고싶어서 그저께 수영장 가서 월수금 수영강습을 등록했다. 그리고 오늘 첫 강습이었는데 누군가 자꾸 나에게 말을 걸었고 평소였으면 나도 친구사귄다 생각하고 잘 받아줬겠지만 정말... 혼자... 수영에 집중하고 싶었다. 오늘 말걸어주신분 죄송해요... 제가 여유가 생기면 같이 얘기해요.
오늘 밤은 그도 엄마도 일찍 자러 들어가서 내가 아주 편안하고 한가하다. 학업보조금 받으려고 온라인으로 하는 수업 두개를 신청해놨는데, 지난 주에 개강이었는데 오늘 드디어 사이트에 접속해 첫 강의를 시청했다. 널널할 줄 알았는데 과제도 꽤 있고 공부할 게 꽤 있어보여서 조금 걱정이긴 한데... 추석 지나면 이제 루틴이 생기고 안정이 좀 되겠지.
'일상 > 2022'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살이 한 달, 그리고 졸업준비 (0) | 2022.10.12 |
---|---|
2022 스웨덴 선거 (0) | 2022.09.12 |
6월 (0) | 2022.06.14 |
스웨덴 6년, 그리고 귀국 (0) | 2022.04.26 |
4월의 거짓말 (0) | 2022.04.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