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11일은 스웨덴 선거가 있었다. 스웨덴은 4년에 한번씩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를 한꺼번에 하는데, 3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은 지방선거를 할 수 있다. 지난 2018년에는 아직 2년밖에 살지 않았어서 투표를 못했고, 올해는 선거권이 있어서 지방선거를 할 수 있었다. 8월 하순부터 사전투표기간이라서 한국오기 전에 집 근처 사전투표소에 가서 투표를 하고 왔다. 우리나라는 사전투표기간이 짧게 정해져있지만, 이 나라는 사전투표기간이 굉장히 길어서 벌써 2-3주전부터 투표를 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투표소에 가면 신원 체크하고 투표지를 주는데, 여기는 투표지를 그냥 내가 아예 집에서부터 들고 갈 수가 있고(정당에서 엄청나게 우편물이 날아온다... 자기네 정당 투표지를 넣어주는데 그걸 들고 가도 된다), 예전에 2018년에 구경하러 갔을 때는 저 종이들이 꽤나 오픈된 곳에 있어서 누가 무슨 정당 종이를 가져가는지 누구나 볼 수 있었다. 이번엔 그나마 칸막이를 만들어놓았던데, 그래도... 마음먹으면 내가 무슨 정당 투표용지를 가져가는지 남들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종류별로 하나씩 다 가져가서 기표소 안에서 정리하고 나머지는 버렸다.
우리나라는 인물에 투표하고 비례의원만 정당을 고르지만, 스웨덴은 국회의원도 지방선거도 정당을 고른다. 정당별로 저렇게 용지가 있는데, 위에 작게 '국회의원' '광역선거구' '시 선거구' 이런 식으로 써있어서 종이를 최소 세 장을 가져가야한다. (외국인은 광역선거랑 시 선거만 가능하니까 최소 두장) 정당 이름만 적혀진 종이만 가져가도 되고, 의원후보 이름이 적힌 종이를 가져가서 표시해서 내도 된다. 한마디로... 스웨덴 국회의원은 다 비례대표고, 도지사나 시장을 뽑지 않고 도의회/시의회 비례대표를 뽑는 선거다. 그리고 그 비례대표가 될 인물을 정당이 당내에서 정하기도 하지만 내가 투표지에 원하는 인물을 어필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인물이 목록에 있으면 마크해서 내면 되고, 없으면 빈 종이에 내가 원하는 인물 이름 적는 것도 가능해서 해마다 도날드덕이 그렇게 득표를 많이 한다고... (작작해라 이놈들) 나는 어떤 정당을 뽑을 건지는 대충 생각해갔는데 종이 종류도 많고 뭐가 뭔지 하도 작게 써있어서 원하는 종이를 찾느라 조금 고생했다.
종이를 뽑아서 방에 들어가니 나에게 봉투를 세 개 줬다. 이때까지도 신분증확인을 안해서 내가 국회의원 선거 못하는 외국인인 줄 몰랐던 모양이다. 기표소에 들어가서 봉투 하나에 광역의회선거, 봉투 하나에 시의회 선거 투표용지를 넣고 나왔다. 그랬더니 그제야 선거위원이 내 röstkort(집으로 우편으로 날아오는 투표권)과 신분증을 확인하고 그 봉투들을 상자 안에 넣었다. 그렇게 투표를 마쳤다.
인물 중심의 선거가 아니라서 좋았던 거는, 내가 봐야할 선전물의 숫자가 현저히 적었다는 점이다. 지난 6월초에 한국에 있었어서 얼떨결에 지방선거까지 오랜만에 하고 갔었는데, 그때 집으로 날아온 선전물의 숫자에 압도되어 다 제대로 볼 엄두가 안났다. 뭐였더라, 시장, 도지사, 도의원, 교육감 ㄷㄷㄷㄷ 도지사와 시장은 한번 꼼꼼하게 볼까 싶기도 했는데 공보물에 그렇게 알찬 정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환심을 사기위한 공약에, 길거리에는 상대방 후보를 공격하는 현수막이 붙어있고... 제대로 투표하고 싶어도 뭘 어떻게 해야 제대로 투표하는 것일지 알 수가 없었다. 뭐... 대통령선거도 마찬가지였지만서도.
스웨덴 정치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오히려 스웨덴 선거에서 투표하는 게 한국 선거에서 투표하는 것보다 훨씬 쉬웠다. 선거 한참전부터 언론사 사이트에서 valkompass라는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주어진 질문에 대답을 하면 내 대답과 각 정당들의 대답을 비교해주는 거였다. 마지막에 나오는 결과는 조금 이상했지만.. 여튼 질문에 대한 부연 설명과 어떤 당이 이 사안에 대해 찬성하고 반대하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공식입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놔서 이 나라에서 어떤 것들이 이슈인지 알 수 있었다. 국회의원 선거뿐만 아니라 지방선거 역시 valkompass에 들어가서 내가 살고 있는 광역선거구나 도시의 주요 쟁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고, 어떤 당이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런 것들을 읽고 생각을 정리해서 투표할 당을 고르면 그만이었다. 선거일이 다가오자 길에 선거 포스터 같은 게 붙여지기도 하고, 집으로 뭔가 날아오기도 하고, 광장에서 사람들이 부스 설치해놓고 홍보하기도 했지만, 특정 인물들의 이름을 연호하며 율동하는 그런 선거운동이 아닌 게 정말 좋았다. (지난 5월에 한국에서 시내 나갈 때마다 내 귀 터지는 줄...)
그리고 또 생각했던 거는... 아니 왜 우리나라는 이런 valkompass같은 홈페이지를 공식적으로 안 만들어요?? 지난 대통령선거 때나 지방선거 때 그래도 내가 어떻게서든 공약 비교 좀 해보려고 선관위 홈피 들어가서 공보물 다운을 시도했는데 pdf가 온전히 받아지는 게 아니고 또 무슨 뷰어프로그램을 통해서 보게 되어 굉장히 분노했던 기억이 있다. 어차피 뿌리려고 만든 건데 걍 pdf 다운받아지게 해놓으면 되지 왜 뷰어는 또!!! 그리고, 저렇게 도시별로, 도나 광역시별로, 후보별로 정당별로, 주요 이슈와 공약과 입장이 잘 정리되어있는 사이트를 왜 선관위가 못만들어요???? 선관위가 못만들면 언론사들이라도 충분히 할 수 있을거 같은데, 스웨덴도 언론사마다 valkompass 다 만들어서 정치 모르던 사람들도 공부하고 가게 만드는데 왜 이런 걸 안해요? 그렇다고 대선후보 토론을 자주 한 것도 아니면서? 지방선거는 후보토론 어디서 하는지도 모르는데 뭘 어떻게 보고 뽑아요?
총선도 그렇고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한국 정당들의 입장을 알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라 (정당만의 고유한 가치관이 있긴 한가..? 정치인마다 다른 거 아닌가) 스웨덴 친구들이 한국 정치에 대해 물어볼 때마다 조금 난감했다. 특히 올해는 한국도 스웨덴도 둘다 선거가 있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정치 얘기를 할 일이 많았는데, 스웨덴 선거 얘기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이 한국 정치는 어떤지 알고 싶어했다. '음 일단 두 개의 큰 정당이 있어. 빨간 당과 파란당이라고 해두자... 전에는 파란당이 여당이었고 지금은 빨간당이 여당이야. 나는 다당제를 염원하면서 그나마 가능성 있어보이는 노란당을 지지하곤 했는데 요즘엔 잘 모르겠어' 라고 하면 '그들의 주요 아젠다는 무엇이냐'는 역질문이 어김없이 날아온다. ㅎㅎㅎㅎㅎ 주요 아젠다 그런 거 뭔지 나도 알고 싶다. '두 정당은 사실 별 차이 없는데 그냥 누가 더 잘했고 잘못했는지 다투는게 그들의 선거운동이야'라고 말하면서 한숨 한번 쉬어줌. ''빨강이랑 파랑이랑 어느 쪽이 진보야?' ...그나마 노란당이 진보인데 지지율 3프로야...라고 말하면서 한숨 한번 더 쉬어줌. 지방선거에서의 각 정당의 아젠다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걍 그 시에서 제일 인지도 있는 사람이 되는 거 아님...? 또는, 정당에 따라 그 해 분위기에 따라 되는 거 아님...?
여담이지만 내가 지지하던 그 노란 당은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다 말아먹고 쇄신을 하겠다 하지만, 어떻게 쇄신을 하느냐를 두고 옥신각신하다가 얼마전에 비례대표 전원사퇴건을 두고 당내투표를 했는데... 투표하면서도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진짜 이번에야말로 탈당할까'하는 생각을 했다. 다당제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우리나라도 제대로 목소리 내는 진보정당 하나쯤 있음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동안 열심히 당비를 냈건만... 제발 좀 잘해줬으면 좋겠다. 아니면, 내가 지지하고 싶은 정당이 뿅 하고 나와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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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만 썼다면 한국 정치를 까는 글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스웨덴 선거 결과를 보고 놀라서 쓰는 글이다. (개인적인 의견이다. 정치적 견해가 달라 읽기 불편하실 수 있음을 미리 알린다.) 아직 재외선거 표가 집계되지 않았으므로 바뀔 수도 있지만 일단은 사회민주당에 이어 SD(스웨덴민주당: 극우정당)이 두번째로 많은 표를 얻었다. 사민당이 제일 많은 표를 얻었다고 해서 사민당 정부가 꾸려지는 게 아니고... 국회의원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총리 후보를 낸 다음 국회 안에서 투표를 한다. 그리고 정당 여러개가 연립해서 움직이거나 하는데 지금 스웨덴 정치는 좌파연합이랑 우파연합 수가 거의 반반이고... 과연 어떤 정부가 꾸려지게 되는걸까. SD는 내가 스웨덴 처음왔을 때만 해도 '너 SD 지지하냐'라는 말이 '너 일베냐'하는 말과 다름 없었고 SD 지지한다는 이유로 공립학교 교사가 짤리기도 하는, 정당들이 '우린 SD랑은 안놀아'라고 하던 그런 언터쳐블한 정당이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커져서 20퍼센트의 지지율을 받는 제2당이 되고 정말 이렇게 SD와 기타 보수 당들의 연립정부가 꾸려지는 것인가. '이민자에게 가는 돈 막고 복지사회를 지키겠다, 이민자 범죄를 방지해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그들의 말이 사람들의 마음을 바꾼 것 같다. SD의 공약들이 무조건 나쁘다거나 한건 아니지만 스웨덴마저 역시 우경화되고 있는 것이 씁쓸했고 제일 걱정하는 부분은 스웨덴의 이민자 정책이다. 이미 요 몇년 사이에 이민 정책이 꽤 많이 바뀐 것 같은데 앞으로 이민자에 대한 정책이 어떻게 더 바뀔지 걱정이 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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