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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2022

11월 첫날, 한국 살이 두 달

by Bani B 2022. 11. 1.

...이 되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번 토요일에 비행기를 타고 스웨덴에 돌아가야했지만 결국 비행기표를 바꿔 11월 하순까지 한국에 머물게 되었다. 막상 남편과 함께 부모님집에 얹혀서 살아보니 여기가 나에게도 내집같지 않은데 나 없이 남편이 여기서 얼마나 불편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엄마도 의사소통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므로 11-12월을 어떻게 보낼까 하며 생각해본 옵션 중에 '학교 가서 오프라인을 수업을 듣겠다'는 옵션은 지워버렸고, 11월 중순에 학교에서 있을 취업박람회도 계획에서 지워버렸다. 그리고 다행히도 비행기표를 바꾸고 난 며칠 후, 졸업논문 프로젝트를 구했다. 제때 못구할까봐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이력서를 보낸 여섯 회사 중 네 군데에서 연락이 와서 지난 주에는 부지런히 온라인으로 면접을 봤다.

   그냥 논문 쓰는 건데 뭐 면접을 그렇게 여러 번 보겠어,하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회사들이 다들 면접 두번 이상을 예정하고 있었고, 첫번째 면접은 그냥 캐주얼한 대화를 나누면서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회사소개를 하는 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그리고 두번째 면접에서야 프로젝트에 대해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그것도 딱히 기술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건 아니고, 내가 정말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싶어했다. 아, 한 회사는 인적성도 보고 코딩테스트도 하고 기술면접도 보게될 거라고 했다... 논문 쓸 학생 뽑는건데 그정도까지..? 2012년에 한창 한국에서 취업준비할 때 이후로 생각도 안해본 인적성을 10년 후 스웨덴에서 보게 될 줄이야. 다행히 인적성평가 페이지는 언어를 선택할 수 있어서 한국어로 보긴 했는데, 아이큐테스트 비슷한 항목은 다 말아먹은 거 같다. 바쁜데 코딩테스트 언제 벼락치기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마침 가장 원했던 다른 회사에서 연락이 와서 이 회사는 바이바이했다. 똘똘한 학생 잘 뽑으세요... 인적성평가가 정말 믿을 만한건지는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네여...
11월에 이제 뭐할까... 학교에서 지금 일단 발만 걸쳐놓은 온라인 코스를 계속해서 들을 것인가, (앞으로 과제 두 개+1월에 시험을 봐야한다는 단점이 있다) 12월에 한달만에 끝나는 온라인 교양수업을 들을 것인가 (과제 하나만 내면 되지만 사회과학적 글쓰기를 해야한다는 단점이 있다) 아니면 그냥 놀고 나중에 생각할 것인가...

 

*

   10월에 건강검진을 하러 갔었다. 대전에 있는 한국건강관리협회라는 곳이었는데, 외국사람들도 많이 오는지 남편을 보고도 다들 그리 당황하지 않는 점이 가장 좋았다! :) 이미 전화상으로 가격 물어보고 예약을 했는데, 검진 하기 전에 다시 한번 어떤 항목을 검사하게 될건지 알려주고 물어봐준 것도 좋았다. 그래서 남편은 약 40만원, 나는 자궁초음파 때문에 47만원 정도에 종합검진을 했다.

   검사할 때 내가 일일이 다 따라다녀야하나 했는데, 그의 직업은 간호사...라고 알려드리자 병원 간호사님들이 영어로 신체 명칭이나 의학용어를 섞어가며 간단한 한국어로 이야기해주셔서 나 없이도 의사소통을 알아서 하고 있었다. 그래서 상복부 초음파도 나 없이 들어가서 설명 잘 듣고 나왔고 수면내시경 전에 동의서 쓰는 거는 오히려 내가 의학용어를 몰라 통역을 못하고 그들끼리 적절히 영어 명칭으로 소통을 하셨... 그렇게 의사소통을 잘 하던 남편이 가장 못알아들었던 말은, 폐 엑스레이 찍을 때 '숨을 들이마시세요'... 숨이라는 단어는 모르지만 대신 숫자는 알았던 그는 그걸 '스물 셋이요'로 알아들었고 그렇게 그는 '아니요 저는 서른 세살...'이라 대답해야하는 건지, 아니면 스물까지 숫자를 세야하는건지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엑스레이 다 찍고도 나올 생각을 안해서 간호사님이 나를 급히 부르심... 다음 건강검진 때는 미리 '숨 쉬세요' '들이마셔요' '돌아누으세요' 같은 단어를 학습시켜야겠다.  

   결과도 빨리 나와서 약 2주 후에 받았다. 나는 약 6년전에도 여기서 검진을 했었어서 그때 수치도 함께 볼 수 있었다. 병원 분들이 모두 친절하시기도 했고 다음에도 여기서 검진을 하려 한다. 

*


매 주말마다 어쩌다보니 서울로 대전으로 친구들과 친척들을 만나러 다녀서, 정작 우리 가족끼리 어딜 가거나 심지어 우리 둘이서 오붓하게 뭘 한 적이 없었다. 단풍이 한창이고 날씨도 좋은데 우리끼리 어디 좀 가자고 해서 지난 주말엔 포항으로 남편과 1박2일 여행을 다녀왔다. 아 근데... 전국이 맑음인데 왜 동해안만 비... ㅠㅠ KTX를 타고 가면서 계속 맑은 날씨를 보다가 산 넘어 포항에 다다르자 바로 비가 쏟아져서 좀 슬펐다.
   원래는 그냥 버스나 택시를 타며 뚜벅이 여행을 할 생각이었는데 비까지 오니까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부랴부랴 쏘카를 예약해 렌트해서 다녔는데 굉장히 좋은 결정이었다. 포항이 그렇게 큰 줄 몰랐으니까... 동백꽃필무렵 촬영지는 남쪽 구룡포이고 갯마을차차차 촬영지는 북쪽 월포해변 근처이고 숙소는 영일대 해수욕장 근처로 잡았는데 그 세 군데 거리가 알고보니 엄청나서 택시 탔으면 요금이 렌트값이랑 비슷하게 나왔을 것 같다. (물론... 그렇게 렌트해서 다닐 걸 알았으면 애초에 비싼 KTX도 예약하지 말고 천안에서 아빠 차 빌려서 갈걸 하는 아쉬움은 있다...) 쏘카에서 마침 포항역 출도착 차량 할인쿠폰을 뿌려서 K3 이틀 대여+주행요금까지 다 합쳐서 12만원이 들었다. 문제는... 쏘카는 국제면허증 등록이 안되는구나...!!! 한국면허증 소지 1년이 지난 사람만 운전자로 등록이 가능해서 국제면허증 들고온 남편은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길이 굉장히 쉽고 차도 별로 많지 않고 구룡포주차장과 영일대 공영주차장은 매우 넓고 무료였어서 나같은 초보운전자에게 딱이었지만 죽도시장 근처 주차는 조금 스트레스였... 여튼 차를 가지고 해안도로를 달리고 산길을 구불구불 달리는데, 비가 와서 조금 아쉽긴 했지만 오랜만에 그런 자연풍경을 봐서 참 좋았다. 그리고 영일대 조개구이는 정말 사랑......

*
여행 첫날, 그러니까 토요일에 운전을 하면서 정말 별별 미친 상황을 마주했고, 숙소에 와서 화재경보시스템이나 대피로 같은 걸 살펴보던 남편이 '여기는 불나면 그냥 끝이겠는데...'하며 안전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다. 사실 9-10월 두달동안 남편이 '한국은 안전에 대해 너무 무신경한 것 같다'는 말을 거의 매일 했고, 그런 대화를 통해 나도 많이 생각하게 되고 글로 한번 풀 생각이었다. 그런데 토요일 밤에 이태원에서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고, 일요일 아침에 먼저 뉴스기사를 읽은 그가 사고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도... 사실 지지난 주말에 내가 친구들이랑 놀 동안 그는 내 동생과 이태원에서 술을 마시고 와서는 "거기 사람 진짜 엄청 많았어. 우리 마음대로 갈 수가 없었고 사람물결에 쓸려가는 느낌이었다니까. 할로윈 되면 어떡해?"라는 말을 했었는데, 그 생각이 나면서 '정말 그렇게 사고가 난거야?' 하며 믿기지 않았다. 일요일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TV뉴스를 보는데 세월호 사고를 다시 마주한 것 같았다. 기차역에서 집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기사님이 '거기 간 사람들도 자기 안전을 잘 챙겼어야지'라고 이야기하는데 화가 났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않는 시스템, 예방보다는 처벌을 먼저 생각하는 공권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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