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밤에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금요일 아침에 스웨덴에 왔다. 밤비행기라서 낮에 가족들과 점심을 먹을 여유도 있었고, 짐을 싸다가 갑자기 슈퍼에 가서 뭔가 더 사와서 채울 여유도 있었고, 그동안 미루고 미뤘던 구두 수선도 가서 할 수 있었고, 집앞 미용실에 들러서 삼천원 내고 앞머리를 자를 여유도 있었다. 우리가 있었던 삼개월동안 비가 온 날은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날씨가 늘 포근하고 좋았는데, 마지막 날 역시 햇살이 눈부실 정도로 쏟아져서 공항에 가기 전에 산책을 했다. "이런 햇빛은 앞으로 반년은 기다려야하니까 지금 많이 햇빛을 쬐야해."
조금 이른 저녁식사까지 하고 공항에 가는 버스를 탔다. 지방출도착 공항버스가 다시 재개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안그랬으면 전날 서울 올라가서 잤겠지. 공항에 도착하니 여덟시반쯤 되었고, 체크인과 가방 검사를 한 후 탑승 구역으로 들어가니 아홉시반쯤 되었다. 저녁을 안 먹고 올라온 남편은, 배가 고프니 비행기를 타기 전에 뭔가 먹어야 한다고, 비행시간이 기니까 간식도 사둬야한다고 성화였는데 문제는 먹을 걸 살 곳이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체크인 하기 전에 있었던 편의점에서 뭔가 사왔을 것을. 한밤중도 아니고 아홉시반밖에 안되었는데, 이 큰 공항에서 밥먹을 곳이 한 군데도 없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안내데스크에 가서 물어도 답은 똑같았다. 지금 연 곳은 스타벅스,던킨도너츠, 그리고 또다른 카페 한 곳인데, 끼니를 때우고 싶다면 스타벅스 가서 샌드위치를 사라는 것. 편의점 같은 것은 없다고 했다. 스타벅스에 갔더니 샌드위치는 이미 다 팔려있었고, 다른 카페에 갔는데 병으로 된 음료만 팔고 있었다. 던킨은 파리바게트 사고 때문에 가고 싶지 않았다. 하... 인천공항의 규모라던가 청결 등을 언급하며 세계에서 제일가는 공항 중 하나라고 말하지만, 이 부분은 꼭 보완을 해야하지 않나 싶다. 만약 비행기가 지연되거나 해서 공항에 밤새 갇혀있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먹을 것으로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 같다. 아, 몇년 전 하와이 갔을 때도 비행기 출발이 지연되어서 밤에 공항에 있었는데, 항공사에서 밀쿠폰을 줬지만 써먹을 곳이 없어서 쫄쫄 굶었던 기억이 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스타벅스로 갔더니, 다행히 샌드위치를 가득 담은 박스가 도착해서 진열대에 정리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곧 스타벅스 앞에 엄청난 줄이 생겼다. 다들 같은 마음이었겠지... 그렇게 한국에서의 마지막 식사로 스타벅스 샌드위치와 그린티 프라푸치노를 먹었고, 마침 중계하던 한국-우루과이 전을 조금 보다가 비행기에 탔다.
한국으로 들어올 때 핀에어 기내식이 너무 작아서 배가 고팠는데, 한국에서 출발하는 이번에는 기내식 양이 좀더 많아서 잘 먹었다. 북극을 통해 비행했는데, 비행기가 일본쪽으로 방향을 틀어 캄차카반도 옆을 아슬아슬하게 지나더니 알래스카 옆을 지나 스발바르 제도 위를 날아 핀란드로 왔다. 북극 위를 나는 것은 처음이고 신기한 경험이긴 한데, 빨리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다... 열세시간이 넘는 비행 정말 힘들었다. 게다가 한국-헬싱키 구간은 아직도 기내에서 마스크를 착용해야하니 장시간 마스크착용 역시 힘들었다.
헬싱키에 내리자마자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코펜하겐행 비행기를 탔다. 코펜하겐 공항까지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비행기 연착도 없었고, 비행기 안에 시끄러운 사람들도 없었고, 푸욱 자고 왔다. 코펜하겐 공항에서 짐도 금방 나와서 바로 기차를 탔고, 얼른 집에 가서 짐풀고 쉴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스웨덴 땅에 들어서자마자 기차가 멈췄다. 말뫼-룬드 사이 어딘가에서 누가 철도에 뛰어들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그 앞에 있던 기차가 줄줄이 다 섰고... 말뫼 중앙역에 일단 내렸는데 다음 기차가 언제 어디서 갈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시간 정도를 말뫼에서 보내고 결국 남편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해 차를 타고 집에 왔다. 기진맥진하여 짐을 대충 풀고, 3개월 전에 얼려놓았던 김치찌개를 냉장고에서 찾아 돌려먹고 한숨 잔 후 지인의 학위수여 축하파티에 갔다(!) 이 스케줄을 소화한 걸 보니 나 아직 체력 괜찮구나. 건강하구나.
주말에는 남편의 가족들과 함께, 스코네 전통식사인 거위 요리Mårten Gås를 먹으며 보냈다. 대림 시기advent가 시작되어서 크리스마스 장식도 꺼내놓았다. 그러고 나니 한 주가 시작되었는데, 학교에 가서 앉아 공부를 하고 집앞 공설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니 이제 정말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다. 3개월이나 한국에 있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벌써 꿈처럼 느껴진다. 해가 늦게 뜨고 빨리 지는 것은 아직 적응이 좀 안되고, 계속 우중충한 날씨는 우울하기까지 하다. 한국도 이제 춥다지만, 쨍한 햇빛이 벌써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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