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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생활 팁/임신,육아 관련

스웨덴에서, 임신

by Bani B 2023. 3. 11.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동네방네 떠벌리는 느낌이라 망설였지만, 어쨌든 내 인생에 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걸 말하지 않고서는 올해 근황을 기록할 수 없어서 적어보기로 했다. 

 

지난 12월

그동안 피임약을 잘 먹고 있었는데 하필 12월에 거의 안먹었다. 남편도 아프고 나도 컨디션이 별로여서 뭐 임신이 될 일도 없는 것 같은데 이참에 피임약 휴약기를 가져볼까, 대신 1월부터는 다시 잘 챙겨먹어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피임약 끊는다고 바로 임신이 되겠어, 하는 안일한 생각도 있었고, 사실 그동안도 피임약을 들쭉날쭉 다른 시간이 먹은 날도 많고 빼먹은 날도 많은데 아무일도 없었으니 이번에도 그렇겠지 하고 안심했던 것 같다... 하지만 틀렸어! 틀렸다고! 이걸 굳이 구구절절 쓰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은 이런 실수를 하지 마시라고...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짐작도 못했던 나는 크리스마스부터 연말까지 술을 신나게 마셨고, 새해가 되어 스톡홀름으로 놀러가서도 칵테일과 맥주를 마셨다. 사우나도 가고 아주 신나게 놀았다. 물론 약간의 증상은 있었다... 정말 너무 어마어마하게 피곤해서, 친구집에 가서도 친구와 이야기하다말고 잠이 들어 낮잠을 잤고, 사우나 가는 차 안에서도 계속 졸음이 밀려와서 힘들었다. 밥 잘먹고 나서 소화가 안되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허리통증... 갑자기 좌골신경통 같은 통증이 생겨서 '뭐야 나 디스크야?'할 정도였다.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또 이상하게 체한 느낌과 엄청난 허리통증이 있었고, '맞네 오늘 생리하는 날인데... 생리통인가?'하고 생각하다가 그냥 정말 갑자기, '설마 임신은 아니겠지'하는 불안함이 밀려왔다.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자꾸 불안해서, 자기 전에 깔끔하게 테스트기 하나 하고 후련한 마음으로 자기로 결심했다.

   임신 테스트기를 했는데 바로 한 줄이 떠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손을 씻고 정리를 하는데 그 사이에 테스트기에 한 줄이 더 뜬 걸 발견했다. 그럴리가 없어... 말도 안돼... 손 씻을 때 수돗물이 튀어서 그런가? 물론 수돗물에 임신호르몬이 들어있을리 없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테스트기를 하나 더 뜯었는데 빼박 두 줄이었다. 임신이 아닌데 두 줄이 뜰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 걸까부터 시작해서 정말 별별 생각을 다 했던 그날 밤. 늦게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테스트기를 보여주자 역시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동안 남편은 아기를 갖고 싶다고 매일 노래를 부르긴 했지만, 나는 항상 임신출산육아에 부정적이고 회의적이었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을지 예상이 되니 무조건 내 결정에 따르겠다고 했다. 

   스웨덴에서는 18주까지는 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직 여성의 결정에 따라 임신중절이 가능하다. 당장 결정하기에는 내가 정말 임신이고 출산이고 생각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서, 어느 게 더 나은 결정일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를 기다리고 원하는 사람에게는 배부르고 쓸데없는 고민일지 몰라도, 그러지 않았던 사람에게 임신은 너무 충격적인 일이고 당연히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문제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낙태법 폐지된지가 오래인데, 정작 임신중절술에 대한 정보는 너무나 부족하고 병원마다 가격도 다 다르고 주수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는 글도 읽었다. (스웨덴은 임신중절이 무료다.) 낙태죄 폐지된 게 3년이 넘었는데 왜 아직도 건강보험 적용은커녕, 임신중절술을 안전하게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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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든 임신을 알자마자 엽산 정도는 챙겨 먹자며 당장 약국에 가서 영양제를 사왔고, 술은 당연히 못마시게 되었고, 햄이나 소시지에 아질산나트륨이 들어있다는 이유로 남편은 햄,소시지 금지령을 내렸다ㅠㅠ (한국에서는 다들 잘만 먹는 것 같은데!) 염색을 할 생각이었는데 염색약이 나쁠 수 있다고 해서 미루고, 알콜프리 맥주를 마시다가 거기에도 알콜이 0.5% 들어있는 걸 보고 끊었다. (정작 스웨덴 livsmedelsverket에서는 일주일에 1리터까진 괜찮다고 하지만...) 그래도 임신 4주차는 양호했다. 엄청 졸리고 피곤했지만 그래도 먹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진짜 헬은 6주차에 찾아왔다. 4주차에 '와 나 입덧 없나봐'했던 말은 주워담고 싶다. 입덧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서 토덧,양치덧,체덧,먹덧,침덧 등이 있다더니, 나에게는 체덧이 먼저 찾아왔다. 토덧만 아니면 된다 생각했는데 체덧도 만만치않게 괴로웠다. 아침에 일어나서 뭔가 한입 먹으면 그게 바로 얹히는 느낌. 그렇게 어질어질 메슥메슥한데 토하지는 않고 그냥 그렇게 있다가 두시간쯤 지나면 또 배가 고팠다. 그래서 또 뭔가 먹으면 바로 체한 느낌... 근데 그와중에 너무 졸려서 도저히 낮잠을 자지 않고는 못배겼는데 먹자마자 누우니까 역류성 식도염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렇게 있다가 저녁을 먹는데 그래도 식욕은 있어서 뭔가 열심히 요리해서 한입먹으면 또 체한 것 같고 식욕 뚝... 입맛도 너무 많이 변해서, 하루에 두세잔씩 마시던 커피는 아예 입도 댈 수가 없었다. 커피에서 자꾸 달고나 태운 냄새가 났고, 어느 날은 김치가 너무 먹고 싶다가 어느 날은 김치통만 봐도 토할 것 같았다. 어떤 날은 과일주스를 그렇게 마시다가 어떤 날은 또 보기도 싫고. 슈퍼에 장보러 가면 온갖 냄새가 괴롭혔다. 그리고 그 다음 주에는 토덧이 찾아왔다ㅠㅠ 다행히 엄청 심하지는 않았고 오전에만 울렁거리고 가끔 토했다. 오후에는 비교적 컨디션이 괜찮았지만 정말 어마어마어마하게 졸렸다. 멀미가 날 때 차라리 자게 되는 것과 같은 원리일까? 다행히 10주쯤 되니 완화되는 것 같았고 '오 이제 입덧 끝인가' 싶었지만 결국엔 11주에도 토함. 그냥 오락가락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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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은 8주에 처음 갔다. 한국에서는 테스트기 확인하자마자 병원가서 피검사도 하고 난황도 보고 하나본데 여긴 그런 거 없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지만 대부분 12주에 첫 초음파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래도 병원 등록은 8주쯤에 하라고 하길래,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후 예약을 잡고 가서 조산사를 만났다. *미드와이프를 '산파'라고 쓰시는 분들이 많던데, 산파는 옛날옛적 출산을 돕던 나이든 여성을 뜻하는 말이고, 전문 훈련을 받은 이 특수간호사의 정식 한국어 명칭은 '조산사'이다. 이 단어가 더 많이 쓰였으면 좋겠다.

   조산사와의 첫 만남은 한시간 정도에 걸쳐 이루어졌지만 피검사나 초음파 따위 보지 않았고^^ 나와 남편에 대한 (정확히는 태어날 아이의 가정환경에 대한) 조사가 목적인 것 같았다. 우리의 건강상태와 가족력 유무, 식습관, 운동은 하는지, 직업유무, 주택형태 같은 질문을 했고, 얼마나 사귀었고 우리의 관계가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지...같은 질문도 했다. 나한테는 폭력에 노출된 경험이 있다거나 트라우마 같은 게 있는지, 음주 습관 등을 좀더 자세하게 물어봤다. 그리고 다음 예약을 잡고 끝났다. >_< 굉장히 신선한 경험이었다. 대답하면서도 '아이를 키울 좋은 환경인가...?'하고 스스로 되돌아보게 되기도 했고,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지난 가을에 술 좀 덜마실걸 하고 반성하기도 했고.

 

   11주에 가서 피검사를 했고, 12주에 드디어 공식적인 첫 초음파를 보았다. 사실은 8주에 500크로나를 내고 미리 초음파를 한번 봤었다. 이 나라는 임신,출산,심지어 임신중절에 필요한 진료비가 다 무료인데, 기본으로 제공되는 것 이외에 추가로 뭘 하려면 사설병원 가서 돈을 내면 되긴 하더라... 안볼까 하다가 출혈이 두어번 있었어서 불안하고 궁금해서 돈 내고 봤었다. 그땐 그냥 통닭처럼 생겼던 아가가 12주가 되니 제법 인간처럼 생겨있어서 좀 놀랐다. 다들 초음파 보면서 감격하고 운다던데... 우리 둘다 너무나 조용하고 분석적으로 화면을 보고 있었어서 조산사님이 좀 당황한 것 같았다. 목투명대 두께를 재고, 지난 주에 했던 피검사 결과와 합쳐서 기형아검사 결과를 바로 알려줬다. 확률이 낮으니 NIPT나 양수검사 같은 건 안할 거라 했고, 다음 초음파는 4월 말로 잡았는데 그 후 더이상 초음파 검사는 없을 거라고 했다. ...이미 5-6월까지 검진날짜를 다 잡아줬는데 그럼 그때는 뭘 하나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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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을 해도 될까 아닐까. 한국 맘카페를 보내 임신 초기는 무조건 안정이라고들 하던데, 예전에 유퀴즈에서 본 산부인과 전문의 선생님은 그것이 다 잘못된 풍문이므로 안정 빼고 다 하라는 말을 했었다. 조산사에게 메일을 보내 물어보니 수영이든 달리기든 체력되는 한 다 열심히 하라고, 가만히 있는 건 피하고 무조건 운동하라는 답이 왔다. 사실 6주차부터 수영강습을 시작할 예정이었어서, '염소 성분이 나쁘진 않을까'하는 마음에 그것도 물어봤는데, 조산사님은 '염소물이든 바다든 다 괜찮고 수영 즐겁게 잘 하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래서 임신을 알고 나서도 거의 2-3일에 한번은 5km달리기를 하거나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했다. 웨이트 하는 그룹트레이닝도 했고 요가도 했고 에어로빅 비슷한 것도 했다. 하면서도 이게 정말 괜찮나 싶긴 했는데, 같이 운동하러 갔던 친구가 임신 20주가 넘었는데 나보다 더 열심히 하는 걸 보고 그냥 나도 열심히 하기로 했다. 효과가 있는 것 같기도 한게, 체한 느낌이 들 때 달리기 하고 오면 머릿속도 개운하고 속도 좀 풀리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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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주에 접어든 현재, 토스트와 우유 같은 게 가장 잘 먹히고, 마늘이 들어간 음식은 잘 먹지 못하고 있다. 평생동안 단 한번도 좋아한 적이 없던 콜라를 좋아하게 되어 가끔 마시고, 반대로 매일 하루 세잔도 마시던 커피는 냄새가 역해서 한모금도 못마신다. 과일주스처럼 신 거는 못마시고 보기도 싫지만 이상하게 귤은 맛있다. 알약을 삼키는 게 너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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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일을 하거나 수업에 가야했다면 정말 힘들었을 텐데, 논문학기라서 정말 다행이다... 오전에 입덧 때문에 힘들어도, 컨디션 좋은 저녁에 부지런히 공부하면 되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임신을 하기에 가장 좋은 타이밍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물론 취업이 꼬인 것은 좀 그렇지만... 9월 입사를 꿈꿨는데 9월 출산예정이다. 그래서 이미 지원해버린 회사들 면접을 보러 다니면서도 임신 이야기를 언제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을 했고 (이건 다른 글에서 썰을 풀어보겠다) 차라리 출산 전 여름에 바짝 돈을 벌자며 부랴부랴 섬머잡을 지원하기도 했다. 근데 섬머잡은 역시 졸업생 안뽑고 재학생한테 기회를 주나봐... 연락이 안오네...ㅠㅠ 지금 생각으로는 9월에 출산하고 3개월 바짝 독박육아를 한 후, 12월이나 1월부터 일을 시작하면서 남편이 약 1년동안 육아휴직하고 육아를 전담하는 것인데, 1월부터 일을 하려면 언제 이력서를 넣어야할지가 좀 애매하다. 지금부터 해야할지 아니면 여름쯤에 알아봐도 괜찮을지... 휴우. 그런 고민들을 실컷하면서 1-2월이 훌쩍 지났고 3월도 그렇게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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