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에서 올해 초에 알바를 한 명 구했다. 내가 부려먹을(?) 사람이라서 내 지인을 추천하고 뽑고 싶었다. 워낙 인맥으로 들어온 사람이 많은 회사니 그래도 될 분위기였다. 그런데 그 다음날 팀장이 이미 알바를 구했다고 했다. '알바 뽑는다는 계획을 어제 들었는데 벌써 뽑았다고?' 알고 보니 다른 팀 사람의 딸이었다. 으엇, 내가 한 발 늦었다... 나도 20년 후에 우리 아들 알바라도 꽂아주려면 그동안 민첩성을 길러야겠군, 하고 생각했다.
알바생은 스무살, 작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코스를 몇 개 듣다가 잠시 쉬면서 진로를 다시 생각하고 있는 중이라 했다. 차분한 목소리에 말이 그리 많지 않은 친구였다. 점심을 조용히 같이 먹고, 그가 할 일들을 알려주었다.
알바생은 그렇게 게으름을 피우는 것 같진 않았지만 아픈 날이 많았다. 3개월만 고용할 계획이었고 그 동안 할 일이 많았으므로 조금 초조해졌다. '내 한국인 지인을 뽑았으면 진행상황이 좀 달랐을텐데...'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게다가 운전면허 강습이 있다며 종종 자리를 비우고, 몸이 안좋다고 자리를 자주 비우고, 근데 자리 비운다는 사실을 나한테 이야기도 안하고 그냥 가버리고... 그래서 처음에 영 못미더웠고 답답하기도 했다.
그랬는데... 점심을 먹으면서 그녀가 임신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말에 너무 당황한 나머지 '축하한다'는 말 이후로 그 다음 말을 부지런히 머릿속으로 찾고 있었는데, 다행히 같이 밥을 먹던 동료들이 '아 그래, 일찍 시작하는 것도 좋지' 'ㅇㅇ 일찌감치 키워버리고 홀가분하게 중년을 맞이하는 것도 좋을 듯' 이러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왜 나는 그런 말들을 바로 하지 못했을까? 내 머릿속 스무살이란, 대학에 다니고 있거나 대입을 준비하거나 진로를 탐색하면서 갓 연애를 시작하거나 시작하고 싶거나... 그런 모습들뿐이었고 나도 모르게 그 알바생을 그 모습에 끼워맞추고 있었나보다. 그래서 예상답안에 없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뚝딱거렸던 것 같다.
원래 3개월만 고용할 계획이었지만 알바생의 손이 다행히도 점점 빨라졌고, 6개월로 연장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녀의 임신기간을 거의 다 지켜볼 수 있었는데... 배가 불러가면서 알바생의 옷차림은 더욱 파격적으로 변해갔다. 8월 출산 예정이라 여름을 만삭으로 보내게 된 그녀는 거의 항상 동그란 배를 내놓고 있었다. 비키니 탑 같은 걸 입고 올 때도 있었고, 한국 유교걸(!)인 나에겐 엄청난 컬쳐쇼크였던 것이다... 입사첫날에 끈나시 탑을 입고온 사람이 있었던 것도 충격이었지만 배를 내놓고 다니는 만삭 임산부 패션도 너무 충격이었다...... '이것이 MZ인가...? 요즘 애들 대단하네...'라는 생각도 솔직히 했다. (근데 사실 나도 밀레니얼인데? 밀레니얼 꼰대가 여기있습니다.)
그러던 지난 주, 출산 예정일을 한달 앞두고 그녀는 갑자기 아이를 낳았고 그렇게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작별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미처 다 하지 못한 일을 내가 하기 시작했는데 이제야 그녀가 꽤 빠르게, 많은 일을 했음을 깨달았고 내가 말하지 않은 것도 알아서 체크해서 잘 해결해놓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냥, 처음 해보는 일이라 처음에 조금 서툴렀고 회사에서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하는지 잘 몰랐던 스무살 그녀를 좀더 따뜻하게 생각해줄걸. '스웨덴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보다 설렁설렁 일한다'는 편견으로 그녀를 봤던 게 미안해졌다. 건강하고 좋은 엄마가 되길, 하고 싶은 공부도 잘 하고 잘 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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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어제까지 생각했는데, 원래 4주만 휴가를 쓰고 지난 주부터 나오기로 했던 동료가 출근예정일에 갑자기 '이번 주도 쉴래' 하고 안나오더니, 방금은 매니저한테서 '걔가 담주도 쉬겠다는데 너 괜찮아?'하고 연락이 왔다. 이렇게 갑자기...? '스웨덴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보다 설렁설렁 일한다'가 편견일지는 몰라도, '스웨덴 사람들은 잘 쉰다'는 진짜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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