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5일, 공항에서 내려서 기차를 타고 시내에 도착했을 때에는 대략 오후 5시가 넘어있었다. 이미 해가 져 있었고, 눈과 함께 바람이 세게 불고 있었다. 역에서 숙소까지는 사실 500미터 남짓한, 매우 가까운 거리였는데 그 날은 그렇게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게 추울 줄 모르고, 눈이 이렇게 내렸을 줄 모르고 얇은 양말을 신고 갔어서 발이 금세 꽁꽁 얼었다. 그 날 숙소로 걸어가는 길에 찍은 몇 안 되는 사진...
호스텔 체크인을 하고 내 침대를 찾아 이불과 베개에 시트를 끼웠다. Midtown hostel 이라는 곳이었고, 호스텔 예약사이트에서 평점과 후기가 굉장히 좋아서 예약을 했었다. 나쁘지는 않았는데, 후기처럼 뭐 그렇게 판타스틱한 정도는 아니었다. 조용하게 머물 수 있는 정도? 그리고 역이랑 올드타운 사이에 있어서 어디든 접근성이 좋았다는 장점은 있었다. 조식이 불포함이라고 써있긴 했지만 알고 보니 시리얼 정도는 제공해주더라. (다만 우유는 스스로 슈퍼 가서 사와야한다는 그런 번거로움이...)
옆 침대에 잠시 쉬고 있었던 사람이 알고 보니 한국인이었다. 교환학생을 마치고 집에 가기 전에 유럽을 여행하고 있다고 했다. 몇 마디 주고 받은 후, 저녁을 먹으면서 좀더 수다를 떨자고 꼬셔서 밖에 나갔다.
숙소 근처에 식당이 어디에 있을지 몰라서, 호스텔 직원에게 추천을 받았다. 그건 매우 잘한 일이었다... 그단스크는 동네가 전체적으로 참 조용하고 그렇게 식당이 많은 동네는 아니어서 무작정 나갔더라면 엄청 헤맸을 것 같다. http://www.jadalnia.com.pl/ 이 식당이었는데, (주소는 Szeroka 125, 80-835 Gdańsk) 가격도 착하고 양도 많고 맛있었다! 포크 립+감자 요리가 6천원, 생맥주 500ml 한잔에 2천원 정도 했다. 굴라쉬도 양 많고 맛있었다. 저 차는, 폴란드를 오래 여행하신 분이 추천해주신, 홍차+계피+레몬 이었는데 달달했다.
다음 날 아침에도 쉬지 않고 눈이 왔다. 바람은 점점 거세지고 눈도 점점 많이 오고, 영하 12도까지 떨어졌었다. 양말을 두 겹을 신고,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올드타운은 봐야지 하면서 길을 나섰다.
그단스크의 거의... 유일한 관광지인 드루가 거리. 그단스크는 2차 대전을 겪으면서 도시의 거의 전체가 파괴되다시피 했고, 오래된 건물이 별로 없었다. 이 거리가 그나마 옛날 건물들을 잘 복원해놓은 곳이라, 그단스크 사진 검색하면 거의 이 곳에서 찍은 곳이더라.
이 날은 마침, 이 나라 공휴일이었다. 아마 동방박사 세 사람이 갓 태어난 아기예수를 보러 왔다는 날인 것 같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연극 같은 걸 하고 그 후에 행진도 하고, 미사 같은 것도 보고... 심지어 따뜻한 홍차를 무료로 나눠주기까지 했다! :) 다만... 그 때문인지, 보려고 했던 박물관이 임시휴관해서 조금 아쉬웠지만...
강변을 조금 걷다가 아무래도 너무 춥고 배가 고파서 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호스텔 직원이 추천해줬던 폴란드 만두집에 가려고 했는데, 잘못 표시해줬던 모양이라 결국 길만 헤매다가 호스텔로 돌아왔다. 다행히 다른 직원이 정확한 위치를 알려줬고, 다시 찾아갔다.
다행히도 삼일 내내 내리고 있었다는 눈이 그치고, 드디어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폴란드 만두집 이름은 놀랍게도 '만두' 였다... >_< 뭐지, 폴란드말로도 만두는 만두인가 했는데, 알고보니 폴란드어로 만두는 '피에로기'였고, 가게 주인이 '오, 한국에도 피에로기(폴란드 만두) 같은 게 있어? 그거 이름이 만두야? 그래 그럼 우리 가게 이름은 만두로 하자' 하고 지은 이름인 듯했다. 메뉴 중에 한국 만두도 있었다.
현지인에게도 꽤 인기가 있는 가게인지, 점심 때가 조금 지난 오후 두세 시쯤 갔는데도 한참 줄을 서서 기다렸다.
가게가 굉장히 깔끔하고 크고 그래서 조금 비쌀 것 같았지만, 메뉴를 보고 안심했다. 만두 10개에 5천원 정도 하는 가격.
종류가 굉장히 많아서 고르기 힘들었지만, 어쨌든 선택은 성공적이었다! 멧돼지 고기가 들어있는 걸로 골랐는데, 속이 아주 꽉꽉 차있었다. 소스도 간이 잘 맞고 맛있었다. 배가 굉장히 고픈 상태였는데도 한 여덟 개 정도 먹으니 배가 불렀다. 같이 갔던 분도, 그단스크에서 갔었던 다른 피에로기 가게보다 훨씬 맛있다고 하셨으므로, 여기 한 번 추천해본다. 트립어드바이저에서도 평이 좋은데, 본점은 시내랑 떨어져 있고, 역 근처에 있는 것은 분점이다. (주소: ul. Elżbietańska 4/8 80-894 Gdańsk) 홈페이지는 http://pierogarnia-mandu.pl/
같이 밥을 먹어주신 한국 학생분은 짐을 정리해야해서 먼저 호스텔로 돌아갔고, 나는 그단스크의 야경을 한 번 보고 싶어서 좀더 돌아다니기로 했다. 걷다보니 관람차가 나왔다. '호박(amber)'으로 유명한 도시라서 그런지, 관람차 이름이 Amber sky >_< 15분 타는 데 7천원이긴 했지만, 그래도 높은 곳에서 그단스크 시내를 내려다본 적이 없다는 생각에 한 번 타보기로 했다. 서너 번 정도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는데, 예상보다 멋진 경치를 볼 수 있었다! 눈이 쌓여있어서 건물들이 더 멋있어 보인 것도 같지만, 한편으로는 눈이 덮여있지 않은 지붕은 어떤 색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관람차에서 내려서 다음 골목으로 들어가면 또... 드루가 거리이다. 정말이지 그단스크는 매우 작다. 길을 잃어도 안심하게 되는 그런 규모. 데이터 사용 안하고 종이 지도로만 길을 찾아다녔는데도 나같은 길치가 잘 살아남은 그런 도시.
이 거리 구경을 끝으로 그단스크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맥주를 사서 호스텔로 돌아왔다. 같이 점심을 먹었던 한국 분은 떠나고 또다른 한국 분이 체크인을 하셔서 같이 맥주를 마시고 수다를 떨었다. 폴란드를 오래 여행하셨는데 여행하면 할 수록 매력있는 나라라서 꼭 나중에 여기서 살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2박 밖에 안해서 그 정도까지는 아직 못느꼈지만, 그 말을 듣고 나니 나중에 크라코프도 자코파네도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의 2박 3일 그단스크 여행은 끝이 났다. 마지막 날 아침에는 숙소 근처에 있던 빵집에서 굉장히 단 소보루빵을 사 먹었고, 공항에 가니 비행기가 지연되어 있길래 느긋하게 쇼핑을 했고, 그래도 시간이 남아서 햄버거를 사먹었는데 의외로 그게 굉장히 맛있었고, 비행기 안에서 푸욱 잤다. 그리고 집에 왔는데 남자친구가 또 햄버거를 만들어줬다.
어떤 사람은 그단스크가 생각보다도 훨씬 작고 볼게 없어서 실망했고, 어떤 사람은 올드타운만으로도 그단스크는 가볼 만하다고 말했다. 나는 후자인 것 같다. 그단스크는 정말 작아서 하루면 정말 충분히 다 돌아볼 수 있지만, 다른 도시를 여행하는 김에 시간이 남아서 겸사겸사 그단스크도 가볼까 하시는 분이라면 나는 추천하고 싶다. 눈이 많이 와서 못가봤지만 소폿이나 말보르크 성도 많이 가는 관광지인 것 같고 사진을 보니 괜찮은 것 같다. 뭐... 사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역시 착한 물가ㅠㅠ 바다 하나 건넜을 뿐인데ㅠㅠ 스웨덴의 절반 수준인 것 같은 착한 레스토랑 물가ㅠㅠ
사과주스 또는 매실액이랑 섞어 마시면 굉장히 맛있는 폴란드 보드카 Zubrowka! 사실 이거 사러 폴란드에 갔던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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