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지금 개강 일주일을 앞두고 으엄청나게 긴장되고 떨려서 잠을 잘 못자는 그런 상태다. 사실 지난 1년이 너무 힘들었으므로, 대학에 들어가게 된다면 무조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CSN이 나올테니 일도 안하거나 덜해도 되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일하지 않아도 되고, 한 자리에 앉아서 공부만 하는 일상. 특히 비오는 날에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몸이 흠뻑 젖어 덜덜 떨 때마다, '내년에는 꼭 공부를 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원하던 게 이루어져서 기분은 좋으나, 후폭풍으로 걱정이 쫘악 밀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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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신입생이 되는 것은 사실 세 번째다. 2007년 봄, 그리고 재수해서 다시 들어간 게 2008년 봄, 그리고 올해 2018년 가을. 아, 2012년에 일본으로 교환학생 갔을 때 신입생들이 막 입학했던 때라, 나는 막학기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신입생들이랑 어울려서 동아리 돌아다니고 그랬더랬다. 그래서 어쩐지 대학 신입생이 되는 게 네 번째인 기분이다.
아... 이렇게 세 번이나 신입생놀이를 했는데 왜 나는 또 떨리는가.
1. 신입생이었던 게 벌써 10년전이다.
2. 그러므로 동기들은 나보다 10살이 어리다.
3. 학교에서 사용할 언어가 내 모국어가 아니다. =장시간 청취시 극심한 피로가...
4. 이제 맥주 두 잔이 내 한계인 것 같다.
5. 이제는 나도 동거인이 있으니 어쨌든 친구들과 보낼 시간과 가족과 보낼 시간의 밸런스를 잘 맞춰야할 것 같다.
6. 이 학교는 특히 신입생 환영회를 한달씩 하고 미친듯이 노는 것 같은데, 나는 같은 공부를 해도 남들보다 두 배의 시간이 걸릴 것 같으므로 그 균형을 어떻게 맞출 수 있을지 고민된다.
7. 사실 진짜 해보고 싶은 동아리 같은 게 하나 있는데, '이 나이에 주책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망설이는 내가 싫다.
8. 스무살 때야, 이 길이 아니면 딴 길 가면 되지! 하는 그런 호기로운 나이가 아니던가... 하지만 나는 대학 졸업 후 해본 일의 직종이 좀 다양하고 (축제기획사도 갔다가 여행사도 갔다가 스웨덴 와서는 가르치는 일을 했다) 웬만하면 지금 시작하는 이 대학프로그램이 제발 적성에 잘 맞아서 이제는 좀 한 직장에 정착하고 싶은데... 만약 이 전공이 알고보니 나랑 엄청 안맞았다, 이러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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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2008년에 학교 들어갔을 때, 동기 중에 일본 사람이 있었다. 나보다 6살이 많은 오빠였는데 첫 신입생 엠티 때 옆자리에 앉았고 나도 일본에 진작부터 관심이 많았어서 친해졌다. 서울에서 2년동안 한국어공부하고 대학에 들어온거라고 했으니 지금의 내 상황과 좀 비슷하구나. 수업도 몇 개 겹쳐서 자주 만났는데, 수업 중 어려워하는 부분을 몇 번 도와주었더니 내가 제일 잘 설명해준다며 과제할 때마다 연락을 했다. 처음에는 '외국인이니까 이게 어려울 수 있지'라는 생각으로 꼬박꼬박 도와줬는데 점점 짜증이 났다. '이렇게 간단한 영작문도 못하면 대학공부는 왜 하지'라는 생각도 들었고, 점점 나한테 의존하는 것 같고 나도 귀찮아서 연락을 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2학년부터는 아예 서로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 분 생각이 요즘따라 자주 난다. 좀더 친절하게 도와줄걸, 하는 생각과 함께, 나도 그렇게 다른 애들한테 폐끼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도 든다.
인생사 역시 자업자득. 마무리는... 토모오빠 그땐 미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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