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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2018

스웨덴 대학에서의 첫 4주

by Bani B 2018. 9. 22.

입학하고 나서 벌써 4주가 지났다. 아직은, 살아남았다.


1. 



의외로 강의는 그럭저럭 들을 만하다. 과제도 집에서 잘 준비하면 되는거니까 시간을 들이면 아직까진 할만한 것 같다. 하지만 그 시간이 참 부족하다..........매주 LABB이 최소 한 번은 있고, 이번주에는 무려 랩이 세번이나 있었는데... 학교 첫날에 학과 코디네이터가 "공부만 하지 말고 놀기도 하고 술도 마시고 취미생활도 하고 운동도 하며 학교생활을 하라"는 말을 강조했는데 나는 이번 9월 한달동안 한번도 운동하러 못갔을 정도로 시간이 없었다>_< 원래는 학생조합도 가입해서 기웃기웃해보려는 생각이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보통 스웨덴 대학은 한번에 여러 과목을 듣지 않고, 한 과목씩 차례차례 끝내가는 식이라는데, 이 학교는 어찌된 일인지 세 과목을 한꺼번에 들었다. 다행히 3hp짜리 한 과목은 어제 끝났고 이제 11월까지는 이 두 과목뿐이다. 수업은 출석을 안부르니까 안가도 상관없는데 대신 중간중간에 체크하는 시간이 많은 것 같다. 그룹세미나를 오라고 한다거나 랩을 오라고 한다거나... 그리고 진도가 엄청 빠르다! 강의를 하고 나서 "이 부분은 각자 읽고 랩 시간에 확인할거야" 식이다. 수학도 강의시간보다 그룹별로 모여서 문제 풀고 토론하고 선배한테 물어보는 시간이 더 많다. 그래서 강의와는 상관없이 진도도 쭉쭉 나가버린다. ><



2.

시간이 없었던 것은 학교 수업과 과제가 빡세기도 했지만 이 학교 신입생 환영행사가 한달에 걸쳐 진행되고 매일 오후에 뭔가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2주는 정말 웬만하면 다 가서 같이 놀았다. 체육대회 같은 것도 하고 저녁식사도 가고 잔디밭에 앉아 노는 것도 하고 술도 마시고... 저녁식사는 한번 했다하면 밤 11시 30분까지였고, 잔디밭에 앉아 노는 행사는 꼭 애프터파티가 있어서 그것도 밤늦게까지 계속됐고, 헬싱보리 캠퍼스까지 가서 대낮부터 술을 마신 주말도 있었는데... 애들은 그러고 나서도 참 멀쩡한데 나는 아가들보다 열살이 많아서 그런지 몸을 사리게 되더라.

그리 낯가리는 성격은 아니므로 처음에 사람들한테 말거는 것까지는 참 잘했는데, 문제는 애들이 빨리 말하면 멍... 주말에 룬드 시내를 돌면서 그룹별로 퀘스트 같은 걸 수행하는 게임을 했는데 그룹별로 노래 개사하고 아이디어회의하고 이러면 멍... 하루종일 스웨덴어 청취하고 집에 돌아오면 멍... 그래서 3주째부터는 그냥 학교 수업시간에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는 데 만족하기로 하고 신입생 행사에 잘 가지 않았다. 그랬더니 몸은 조금 편하다.


3. 

학교생활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다짐한 것은 '학교에서는 웬만하면 영어를 하지 않겠다'였다. 이때까지 그래도 이 마구잡이 스웨덴어로 잘 버티고 있고 과 친구들도 어느덧 나한테 적응한 것 같아서 내가 말도 안되게 얘기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주는데... 그래도 제일 힘든 부분은 역시 '말로 설명하는 것'이다. 매주 최소 한번은 랩이 있는데, 시작 전에 조교가 책 제대로 읽고 숙제 잘 했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꼭 질문을 한 다섯개는 던지는데... 준비를 열심히 해도 해도, 조교가 하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는 게 어렵다ㅠㅠㅠㅠ 와... 오늘도 내가 쓴 코드 보면서 이 함수의 입력값이랑 출력값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물어봤는데 도대체 뭘 물어보시는건지 이해를 못함ㅋㅋㅋㅋ 그래서 대답으로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 하고..... 서로 하고 싶은 말만 한 것 같다>_< 코딩하다가 궁금한 게 있어서 옆자리 애한테 물어보려면, 내가 궁금한 이 포인트를 스웨덴어로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생각하는 시간이 더 길다. 

다음 주에는 수학 구술테스트가 있어서 증명문제를 종이에다가 일단 풀고 그걸 말로 설명해야하는데... 얼마전에 친구가 수학문제 물어봐서 대답해주다가 '제곱'과 '세제곱'을 을 스웨덴어로 어떻게 말하는지 몰라서 헤매고>_< 어제도 실기시간에 조교가 뭔가 물어봤는데, 답이 10의 308제곱이라는 것은 알았으나 그 말을 하지 못해 "잠깐만... (종이에 쓰고) 이거이거!" 라고 대답해서 넘어갔다>_< 

매일 학교 생활이 뭔가 고개를 하나씩 넘고 있는 것 같은데 이걸 5년동안 넘어야 한다니 좀 아득하다.


그래도 넘고 넘고 넘다보면 뭔가 보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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