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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2018

5월 29일

by Bani B 2018. 5. 30.


(밤 10시 30분경. 그래도 남쪽이라 해가 지기는 진다.)


1. 

   이상하다. 이 나라 날씨가 요즘 너무 좋다. 좋은 날씨가 일주일 넘게 계속되었을 때 '지금 즐겨야지'하고 놀았는데 이제 2주가 넘어가니 정말로 불안해지면서 '이제 이 날씨도 정말로 끝이 날테니 더 열심히 놀아야지'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이 날씨가 끝날 기미가 안보이네...? 

   이 곳은 정말 너무 건조하다. 이미 예전부터 가습기를 한국에서 하나 사오고 싶었지만, 원목가구를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는 동거인의 반대로 차마 사오지 못했다. 습기가 가구에 좋지 않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내 기관지도 좀 생각해주지 않으련...? 한밤중에 꼭 한두번은 일어나서 물을 마시고 잘 정도로 건조하다. 비가 안오니 땅도 갈라지지만 내 기관지도 쩍쩍 갈라지는 느낌이다. 이제 슬슬 비가 그립다. 


2.

   드디어 물리2 시험이 끝났다. 올해 들어 내 최고의 걱정거리였던 물리2ㅠㅠㅠㅠ 드디어 끝났다! 다행히 좋은 점수를 받았고, 큰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다음 학기에 원하는 곳에서 공부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그게 5년제... 사실 3년짜리 학사과정을 늘 생각하고 있었지만, 접수마감일 전날 갑자기 마음이 변해서 5년짜리 학석사 통합과정을 1지망으로 썼다. 마감일 지나고 나서 잠시 '아... 내가 미쳤지... 빨리 취직할 생각을 해야할 판에 왜 또 무슨 바람이 불어서 5년짜리를... 졸업하면 만 35세...'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사실 5년짜리 과정은 룬드캠퍼스에서 하는 것이므로 굳이 기차타고 헬싱보리캠퍼스까지 통학하지 않아도 된다는 큰 장점이 있었다. 그리고 중간에 취업되면 굳이 5년 채울 필요없이 논문쓰고 학사졸업해도 된다는 사람들의 말이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 


3.

   시험 전전날은 내 생일이었다. 만 서른이 되는 생일. 진짜 계란 한판 꽉 채운 서른이 되었다. 만 스무살 생일날에는 뭘 했더라. 일기를 찾아보니 전날 밤새 술마시고 새벽에 집에 와서는 숙취에 괴로워하다가 그래도 휴일이라서 부모님댁 가서 밥 먹고 친구랑 또 맥주를 마셨다고 써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별로 변한 게 없구나. 변한 게 없으니 다음 학기에 새 친구들이랑도 세대차이 별로 안느꼈으면 좋겠다. 다음 학기부터 공부하려는 과의 작년 입시자료를 보니, 합격한 144명 중 25세 이상은 단 8명이었고 나머지는 다 25세 미만이었다고 한다. 나이는...숫자...에....불과...하지....^^; 하긴, 콤북스에 시험 보러 갔을 때 각자 봉투 받아서 그 안에 들어있는 시험지 푸는 거였는데, 봉투 겉에 써있는 애들 이름이랑 생년월일 보니 다들 96, 97... 얘들아, 이 언니가 한국 살 때 97년생들 중학생 과외하고 막 그랬어...^^; 고등학교 막 졸업하고 오는 애들은 98, 99년생 이런 애들이겠지? 너네 Y2K가 뭔지는 아니???  

   사실 지금 나의 최대 고민은 이것이다. 절친이 생기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어차피 20대 때 학교다닐 때에도 같은 과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래도... 도대체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을 때 물어볼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이랑 말은 좀 텄음 좋겠는데... 


4.

   스웨덴 사람들의 수줍음(?)에 대해 한가지 덧붙일 게 있다. 사실 올해 들어 합창단 연습에 몇 달 나갔었다. 물리시험이 가까워지면서 공연은 못나갔지만 연습은 열심히 갔었다. 연령대도 다양하고, 다들 '사람 만나고 싶어서' 오신 거라 '비교적' 말도 잘 걸어주시고 그랬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조금 재밌다고 느낀 점은


- 처음 2주동안은 정말이지, 내 목소리만 들렸다. 발성연습할 때 나만 하는 것 같을 정도로 정말 내 목소리만... 합창하러 오셨으면서 이렇게 수줍어하시면 어쩐대요!싶을 정도였다. 다행히 3주 정도가 지나자 다른 분들의 목소리를 드디어 들을 수 있었다.


- 그러고 나자 드디어 연습하러 조금 일찍 도착하면 사람들이랑 스몰토크도 좀 할 정도가 되었다. 사실 그간 사람들도 나한테 궁금한 게 많았고 나도 사람들이 궁금했어서, 그런 스몰토크가 너무 반갑고 재밌었다. 연습이 끝나고 나서도 5분 정도는 남아서 서로 수다를 떨다가 연습실을 나가곤 했는데.....


만약 한국이었다면,


A: 너 어디에 살아?

B: 여기서 가까워! 저기 마트 뒤에 살아. 너는?

A: 나도 거기 사는데! 

B: 아 그래?

(자연스럽게 집 방향으로 같이 걸어가면서 수다를 떤다)


하지만 이 곳은 스웨덴.


A: 너 어디에 살아?

B: 여기서 가까워! 저기 마트 뒤에 살아. 너는?

A: 나도 거기 사는데! 그렇구나. 그럼 다음 주에 만나자. (먼저 걸어가면서) 헤이도! 

B: 헤이도! (잠시 기다린 후, A가 가는 방향으로 천천히 뒤따라 간다)


   이 패턴을 몰랐던 나는, 처음에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애한테 어디 사냐고 물어본 후, 그 아이가 우리집이랑 엄청 가까운 데 산다는 말에 아무 생각없이 같이 걸어갔었다. 그랬더니 그 다음 주부터 그 친구는, 같이 가자는 말도 없이 "다음 주에 보자, 안녕!" 인사하고 성큼성큼 나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나와의 대화가 그리 즐겁지 않았나보다,하고 생각하던 중이었는데, 아니 그러기엔 그 친구는, 조금 친해지자 연습실 안에서는 굉장히 유쾌한 친구였고 내가 가사를 틀리가 발음하면 엄청 친절하게 고쳐주기도 했다. 

   머지 않아서 나는, 이 친구 뿐 아니라 모두의 행동이 다 비슷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몇 주간의 대화를 통해, 사실은 사람들이 거의 모두 이 동네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연습실 안에서는 그렇게 사이좋게 깔깔 웃던 사람들이, 연습실만 나가면 다들 띄엄... 띄엄... 한명... 한명씩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게 아니던가>< 아니 왜? 어차피 같은 곳으로 가는데 같이 말하면서 걸어가면 안되는 것인가?

   하루는, 그날 나는 대충 사람들의 행동패턴을 파악하고, 나도 적당히 혼자 멀찍이 떨어져서 걷고 있었는데 한 아저씨가 말을 걸어오셨다. 그 아저씨도 우리집 근처에 살고 계신다고 했다. 악기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걷고 있었고, 내 딴에는 대화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아저씨가 "나 여기서 길 건너야돼. 다음 주에 만나자, 안녕" 하고 길을 건너셨다. 나도 그 길 건너야되는데... 어떡하지, 하다가 조금 더 걸어서 다른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넜다. 그러고 나서 우리집 방향으로 가는데 다시 그 아저씨를 만났....>< 약간 민망해하는 아저씨... 아니 그러게 그냥 같이 수다나 떨면서 같이 걸었으면 되지 않았나? 

   이 이야기를 우리집 스웨덴인에게 했더니 자기는 그 사람들이 이해가 된다고 했다. 정말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혼자 가고 싶은 것일 수도 있지만, 같이 가고 싶어도 혹시라도 남을 방해할까봐 그러는 것일 수 있다고 했다. 스웨덴 사람들이 정이 없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친해지면 정도 많고 참 친절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뭐랄까, 수줍은 것도 있고 지레 '걱정'하는 것도 많은 것 같고 '조심'하려는 것도 많아서 미리 벽을 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5.

   그리고 절대 먼저 나서서 제안하지 않는 모습들이 보인다. 요즘들어 '도대체 이 나라 정치인은 어떻게 양성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3월부터는 언어교환모임을 시작해보았다. 한국인 친구들도 있고, 한국어를 배우는 스웨덴인 친구들도 있으니 아예 다같이 모여서 언어교환을 하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약간의 준비기간을 거쳐서 3월부터 1주일에 한번씩 모임을 했다. 하지만 항상 나만 주최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원하는 시간에 모임을 만들 수 있고, 좋은 의견이 있거나 좋은 계획이 있다면 페북 그룹에서 제안해달라고 여러 차례 이야기했으나... 페북그룹이 있는데! 거기다 쓰면 모두가 볼 수 있는데! 왜 다들 굳이 개인메시지로 나에게 소곤소곤 말하는 것인가^^;;; 이것은 꼭 '내 의견은 이러이러한데, 네가 말해주면 좋겠어' 같은... 



6. 포스팅의 마무리는 어제 재밌게 본 초단편영화 (...스웨덴의 구직난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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