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스웨덴으로 돌아오던 날, 친구가 (다른 비행기이긴 했지만) 같이 와서 약 열흘동안 같이 놀았다. 항상 한국에 다녀오고 나면 왠지 모를 쓸쓸함과 가족에 대한 걱정 같은 복합적인 감정이 있곤 했는데, 이번에는 돌아오자마자 집에 손님이 있었던 셈이라 그럴 겨를이 없었다. 스코네에서 닷새, 스톡홀름에서 닷새를 함께 보낸 후 친구는 다음 여행지로, 나는 룬드로 돌아왔다.
그렇게 다시 일상을 보낸 지 일주일. 일상...으로 돌아오긴 한걸까? 아직 학교가 시작하지 않은 탓에 여전히 휴가중인 느낌이지만 20일에 시험이 있으므로 억지로 일상으로 돌려놓아야했다. 두달 넘게 가지 않은 헬스장에 아주 오랜만에 갔고, '내가 정말 이런 문제를 풀었었나' 싶을 정도로 기억이 나지 않는 전공책을 다시 꺼냈고 시험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나에게 '일상'을 대표하는 것은 아침식사인데, 정말 오랜만에 오트밀죽을 먹으니 '이제 정말 휴가는 끝났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주에 있었던 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친구집에 들러 잠시 통역을 도운 일이었다. 태어나자마자 한국에서 입양을 왔고 몇년 전에 한국 가족을 찾아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이번 여름에는 그 한국 가족들이 스웨덴에 와서 친구의 스웨덴 가족들도 만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다만 가족들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되지 않아서, '한국가족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들이 있는데, 시간될때 잠깐 와서 좀 도와달라'고 나에게 부탁을 했었다.
별 생각 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갔었는데 그날 했던 통역은 아마 앞으로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사업미팅이나 관광통역 같은 것도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그날 내가 전달해야했던 대화는, 미안함과 그리움, 고마움을 서로에게 표현하는 그런 말들이라 더욱 중요한 것이었다. 사적인 대화이므로 그 상황과 내용을 자세히 쓸 수 없지만, 어쨌든 이렇게 다양한 감정들이 농축된 타인의 대화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입양인 한 명을 인연으로 두 가족이 만나서 '우리는 이렇게 한 가족이다'라고 말하는 그 모습, 함께 옛날 사진을 보며 그때의 상황은 어땠는지, 그때의 감정은 어땠는지, 어떤 에피소드들이 있었는지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하고,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뒤섞인 감정을 더 표현하고 싶어하고, 통역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가족의 얼굴에서 그 감정을 캐치하고 바로 안아주는 그런 모습들이 아름다웠다.
그런 대화를 나는 중간에서 한국어와 스웨덴어로 전달을 해야했는데, 이 감정이 가감되지 않고 최대한 잘 전달되기 위해 엄청 애를 썼다. 중간중간에 '약간의 문화적 차이'를 부연설명하면서도 '내가 쓸데없는 말을 지금 너무 많이 한건가' 싶기도 했고, 반대로 중복되는 말들을 간결하게 정리하면서도 '내가 지금 너무 축소해서 말한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중간에 가족들이 울면서 이야기할 때는,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어서 눈물이 주륵 나올 뻔하기도 했다. 나는 가족에게 좀 무뚝뚝한 편이라 이런 종류의 감정표현은 가족들에게 입밖으로 내어서 해 본적이 없는데, 서로에게 아낌없이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대화를 몇 시간동안 통역하다보니 내 가족 생각이 나기도 했다.
어느덧 날이 저물어서 집에서 나오는데 친구와 그 가족들이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아니야, 이런 자리에 초대해줘서 고맙고 이런 대화를 듣게 해줘서 내가 오히려 고마워, 라는 말이 진심으로 나왔다. 남은 기간동안 추억 많이 쌓고 돌아가시기를.
내일부터 또 아침식사로 오트밀죽을 먹으며 벼락치기를 해봐야지. 20일에 있을 이산수학 재시험이 끝나면 지난 1년동안 배운 걸 좀 훑어보며 다음 학기에 대비해야겠다. 날이 점점 짧아져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겨울이 오고있어!!'라고 외치곤 했는데 정말 진짜 뭔가 거대한 것이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것은 과제 쓰나미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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