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710121421791609
"파릇파릇과 푸릇푸릇을 구별하면 뭐하나, 쓸만한 2인칭 대명사가 없는데."
그러게 말이다. 누가 "한국어로 2인칭 대명사가 뭐냐"고 물을 때면, "상대방이 너보다 나이가 적거나 같다면, 아니 여튼 너랑 같은 '레벨'이라고 느껴지는 사이라던가 친하게 느끼는 사이라던가 뭐 여튼 그런거라면 '너'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게 아니라면 이름 뒤에 '씨'를 붙인다거나 직책을 붙인다거나 언니오빠라고 한다거나...." 등등의 기나긴 설명이 이어진다. 그러면 또 질문이 생긴다. "어째서 '선생님'은 너보다 위에 있으며, 너보다 늦게 입사한 직장동료는 '아래'라는 거지? 그런 기준은 뭐야?" 한국어를 가르칠 때 저 '기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곤 했다. 그러면 장유유서와 군사부일체까지 설명을 안할 수가 없....
요즘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통성명을 할 때 상대방이 딱 봐도 내 나이 또래거나 나보다 어려보이면 그의 나이를 웬만하면 묻지 않는다. 내 나이도 웬만하면 (상대방이 먼저 묻기 전에는) 알리지 않으려고 하는데, 마음속으로 '이대로 서로 존대하는 상태가 지속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 존대를 한다고 해서 덜 친해진다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존대를 하면서 친하게 지내는 이들이 많다. 그러다가 그가 나의 나이를 알게 되고, 자신에게 말을 놓을 것을 부탁하면 작은 실랑이를 벌이곤 하는데 결국에는 '당신이 나에게 말을 놓지 않는다면 나 역시 당신에게 말을 놓지 않을 것'이라는 나의 말에 보통은 서로 존대하는 사이가 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역시 나이가 신경이 쓰이는지, 굳이 내 이름 뒤에 '씨' 대신 '님'을 붙이는 분들도 있으나 솔직히 말하면 나는 오히려 그게 신경이 쓰인다. 아마 '씨'를 붙이면 무례할까봐 그러는 것 같은데 나는 누군가가 '-님'이라고 부를 만한 대단한 사람이 아니며 서로에 대한 존칭으로는 '-씨'도 무례하지 않고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무엇보다도, 그게 뭐 그리 대수인가 사실!
하지만 상대방이 딱 봐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면 나 역시 저 위 문단에서 서술한 것과는 달리 '예의있게' 상대의 나이를 묻고 호칭을 정리한다. 이 단계에서 나는 정말 일관성이 없는데 보통 상대가 원하는 대로 호칭을 맞춰주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해 정말 오랫동안 생각을 해왔지만, 솔직히 말하면 '존댓말에 익숙한 상대에게 굳이 충격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아직 더 강하기 때문에 일관적으로 내 태도를 정리할 수가 없다.
글이 길어지고 두서없지만 어쨌든 뜬금없이 이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가족호칭을 좀더 수평적으로 정리하고 정체성과 자존감을 지키는 호칭으로 바꾸려한 한 지인의 글 때문이었다. 호칭, 그리고 존댓말/반말이야말로 우리가 조금만 바꾸려고 노력한다면 좀더 민주적인 언어습관, 민주적인 인간관계가 가능해질텐데. 다들 '한국은 그놈의 수직적인 조직문화가 문제야'라는 말을 수십년동안 했으니 이제 좀 바꿀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러고보니 한글날이 머지 않았다. 옛날 글이지만 장강명 작가의 글 링크를 이 글 처음에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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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글의 주제가 한글이 되었으니 덧붙이는 한가지 에피소드.
학교에서 과제를 하다가 막히면 구글링을 하는데, 가끔 한글로 구글검색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학교 컴퓨터는 대부분 리눅스이고 리눅스에서 한국어 키보드를 추가하려면 그 과정이 꽤 번거롭다. 그래서 구글에서 그냥 영타로 해놓고 쳤는데 구글이 알아서 한글로 바꿔서 검색해주더라. 그걸 옆에서 본 스웨덴 친구들이 굉장히 신기해했다. "뭐... 뭐야? 저건 무슨 언어야?" "아, 한글 키보드는 어차피 외웠으니까 그냥 이렇게 치면 구글이 바꿔줘. 봐봐, 'tmdnpeps'을 치니 스웨덴이 나오지?" 그러니까 어째서 tmdnpeps이 스웨덴이냐며... 이것이 바로 한국인만 아는 암호다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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