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켜서 글 하나 쓰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라고 생각은 하지만 사실 이것도 은근히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라 미루고 미루다보니 벌써 3월이 코앞이다. 어제 일도 금세 까먹곤 하니 부지런히 일상을 기록해두고 싶은데...
[학교생활]
- 드디어 그룹 프로그래밍 수업도 한 주만 더 하면 끝이다. 6주동안 한 그룹이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수업이 있었다. 달리기 대회에서 사용할만한 프로그램을 10명이서 만드는 건데, 조교가 가끔 들어와서 이것저것 '고객'으로서 주문하긴 하지만 뭘 가르쳐주지는 않아서, 알아서 문제 해결을 하고 알아서 만들어내는 그런 수업이었다. 그래서 매주 월요일 아침 8시부터 17시까지 학교에 앉아서 코딩을 했는데 스트레스는 받아도 재밌기는 했다. 둘씩 앉아서 하다가 짝을 바꾸기도 하고 해서 다른 애들의 코딩습관 같은 것도 볼 수 있었고 많이 배웠다. 기능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 계속 얘기를 해야하니까, 안친한 애들과 스웨덴어로 말해야할 때 울렁거리는 것도 극복하는 뭐 그런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은 하는데... 독불장군같은 애 한 명이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다. 욕을 쓰려면 한도끝도 없으니 쓰지 않겠지만 이제 얘랑도 일주일이면 끝... 이녀석이 세부전공 뭐 선택할지 무조건 꼭 알아내서 그 전공은 피해가기로 결심했다.
-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던 컴퓨터구조 과목도 드디어 끝이 보인다. 그리고 평생 뭐가 뭔지 모르는 채로 남을 것 같다... 지난 학기 디지털 회로 과목이 그래도 꽤 재미있었고 이 과목도 처음에 의욕이 넘쳐 으쌰으쌰 해보았지만 이제는 나는 정말 하드웨어 쪽으로는 센스가 없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다.
- '신호 및 시스템'과목과 '공학수학'을 적절하게 섞은 과목이 하나 있는데 선생님이 러시아사람이다. 지난 다변수 미적분학 과목 선생님도 러시아사람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분은 발음이 굉장히 뚜렷하고 판서를 아주 훌륭하게 잘 하셔서, 내가 잘 못알아들어도 필기를 잘 받아적으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분은... 첫 수업에 들어가서 앉았는데 나는 정말 선생님이 독일어를 하고 있는 줄 알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게 러시아억양이 엄청 섞인 스웨덴어라는 걸 깨달았는데, 그마저도 선생님이 발음을 엄청 뭉개서 스웨덴애들도 못알아듣고 있었다. 판서라도 제대로 해주길 기다리며 수업을 들었는데... 그렇게 두서없이 판서하는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고, '파이'를 '시그마'처럼 쓰는 바람에 그게 파이인 줄 아주 한참 후에 알았고... 결국 수업을 두세번 가고 포기. 집에서 유튜브 보면서 혼자 공부하고 있다. 친구 말로는 요즘 수업 오는 사람이 (백명중에) 열 명 정도 된다고...
- 그래도 이번 페리오드는 수학시험 딱 하나다! 컴퓨터구조도 시험이 있긴 한데 필수는 아니고. 그래서 이번 페리오드는 실험시간이 빡세긴 했지만 좀 헐렁했던 느낌이다.
[알바]
어쩌다보니 이야기가 되어 수요일 저녁마다 Folkuniversitetet에서 한국어를 다시 가르치기 시작했다. 룬드에 입문반이랑 그 다음 단계 반이 개설이 되어서 두 그룹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2년만에 하는 일이라 좀 떨리긴 했는데 재밌었다. 예전에 자료를 열심히 만들어놔서 딱히 준비를 많이 할 필요도 없고. 수업을 하고 나서 엄청 피곤하긴 했는데 뭐랄까, 그동안 학교에서 '팔자에 없던 것들을 배우느라' 고생하다가 오랜만에 내가 잘하는 걸 하니까 뿌듯하고 좋은 그런 기분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 아직 스코네에는 확진자가 없고, 스톡홀름이랑 예테보리 부근에서 열 명쯤 나온 모양이다. 학교에서도 "중국,한국,이태리,이란에 다녀온 학생이 있다면 2주동안 자가격리하고 나올 것"이라는 공지가 나왔다. 한국에는 6월에 갈 예정이지만... 사실 나는 4월에 베네치아와 볼로냐에 가려고 이미 몇달 전에 예약을 해놓은 상태다. 내가 그동안 유럽에 살면서도 유럽여행을 잘 못해봤다며 야심차게 티켓을 끊은 것이건만... 불과 몇주전만 해도 친구와 '베네치아에서 만나자'며 계획을 짰건만... 상황이 이렇게 돌아갈 줄이야. 4월 20일 여행이니까 아직 시간이 있어서 지켜보고는 있는데, 이대로라면 이태리 다녀와서 2주동안 학교에 못나가고 자가격리를 해야하고, 그 2주동안 실습수업을 못나가는 게 제일 큰 문제가 될 것 같다.
내 여행도 그렇고, 혹시라도 이 상황이 더 길어져서 6월에 남자친구와 한국 가는 데 차질이 생길까봐 그것도 걱정이 된다. 한국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 걱정도 많이 되고. 그들이 코로나에 걸릴까봐 걱정이 된다기보다는, 아무래도 사람 모이는 걸 피해야하는 상황이다보니까 일상에 계속 차질이 생겨가는 것 같아서 그게 걱정이 된다. 엄마도 집에만 있으니 답답하다고 하시고. 그런데 이걸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 도대체 뭔 말을 하고 싶은건지 모르겠는 기사들, 혐오표현이 가득한 덧글들을 우연히 읽게 되면 더욱 한숨이 난다. 모두가 힘든데 그런 말 하나 더 얹어서 이 사람들은 뭘 얻고 싶은건가 싶기도 하고. 이 세상 도대체 어디로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
[문화생활]
2020년에 책을 좀더 많이 읽는 게 목표였는데 그래도 지난 두 달 동안 꾸준히 뭔가를 읽었다. 오디오북은 어색하고 다시 절대 들을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유튜브에서 듣는 EBS라디오문학관이 꽤 재밌어서 듣고 있다. 도대체 왜 제목을 ASMR이라 적는지는 모르겠지만... 밀리의서재에도 은근히 재미있는 책이 많아서 계속 구독하게 된다. 뭔가 이것저것 읽은 것 같은데 당장 기억나는 건 '잊기좋은 이름'과, 제일 최근에 읽은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정도다.
유튜브는 문명특급과 워크맨을 꾸준히 보며 웃고 있고, (펭수는 아직도 뭐가 웃긴지 잘 모르겠다...) 그거와는 별개로 내가 11월부터 정말 이미 백 번은 재생한 것 같은 영상이 하나 있어서 기록으로 남겨두려고 한다.
춤을 너무 맛깔나게 추시는 거 아닙니까... 이 영상으로 '이날치'에 입덕하여 다른 영상인 '별주부가 울며 여쫘오되'도 몇 번을 재생했나 모른다. 음원 내주십쇼 스포티파이에서 듣고 싶습니다..... (*수정: 11월에 검색했을 땐 음원 없었는데 지금 검색하니 스포티파이에 이날치가 있다! >_< 흥하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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