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27일에 스웨덴으로 이민을 왔고 이제 딱 4년이 되었다. 해마다 4월 27일에 뭔가 블로그에 글을 쓰곤 했는데, 1년이 되던 2017년에는 무상교육의 혜택을 누린 그간 1년을 되돌아보며 복지제도에 대한 생각을 적었고, 2년째 되었던 날에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려서 '관계'에 대한 생각을 적어보았다. 그리고 3년이 되었을 때에는 내가 지금 사는 곳이 내 집이고 내 삶이 여기에 있다는 뭐 그런 얘길 적었다.
요즘 내 일상에 제일 많이 영향을 끼치는 건 당연히 코로나 바이러스다. 너무 진부한 이야기라서 쓰지말까 했는데 사실 요즘 정말로 하는 것도 없고 다른 생각을 하는 게 없어서, 오늘의 글감은 어쩔 수 없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되었다. 4월에 이태리 여행을 갈 예정이었는데 당연하게도 항공권이 취소되고, 보상을 요청했는데 여행사가 엉뚱한 메일만 잔뜩 보내서 거의 포기상태다. 6월에 남자친구와 한국에 갈 예정이었는데, 현재로서는 외국인 무비자 입국이 안되어서 남자친구는 못갈 것 같고 나는... 비행기가 과연 취소되지 않고 제대로 갈지 걱정이다. 답답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상황이 좋아지기를 기다려보는 수밖에. 그 밖에는 뭐... 학교 수업은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어서 학교에 안간지 벌써 한 달이 넘었고, 일주일에 한번 하던 한국어 수업도 온라인으로 진행해서 수강생들을 화상채팅으로 보는 데에 점점 익숙해졌고, 사람들을 만날 일이 있으면 공원에서 만나게 되었고, 최근 한달동안 남자친구 가족 외에 내가 만난 사람들 수를 한 손으로 셀 수 있다.
그런 것들이 불편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견딜 만하고 이런 일상에 익숙해져가고 있다만, 나를 제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 '피아식별'이다. 갑자기 웬 군대용어인가 싶지만 다른 단어가 사실 떠오르지 않는다. '피아식별'은 군대에서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는 것을 뜻하는데, 우리나라는 워낙 양당 대결구도가 굳어진 탓에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사람들이 일단 "너 설마 그 정당 지지하니?" 하고, 듣는 사람이 아군인지 적군인지 파악한 후 이야기를 이어나지 않나. 그런데 요즘에는 정치말고 하나가 더 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국적에 상관없이 전 세계가 난리가 났으니 누구나 이런 질문을 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질문 안에 어떤 '의도'가 들어있음을 느끼고 나면 어떻게 답해야할지 난감해진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한국과 스웨덴의 대응은 정말 많이 다르다. 한국은 처음부터 감염자 동선 추적을 해서 공개를 했고, 매일 질본이 브리핑을 했고, 학교가 개학을 연기했고, 의심 증상이 있으면 바로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메르스 이후로 대비를 잘 해왔구나,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반면 스웨덴은 감염자가 어느 지역에서 몇 명이 나왔는지는 알아도 정확히 어떤 도시에서 나왔는지도 공개를 안하고, 초등학교와 유치원은 아직도 정상등교를 하며, 코로나검사는... 어디서 누가 받는건지 정말 궁금할 정도이다. 마스크는 여전히 다들 안쓰고, 손소독제는 마트에서도 진작에 다 떨어졌는데 병원에도 손소독제가 부족해서 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스웨덴의 대응이 아주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닌게, 우리나라는 그래도 국내에서 제조가능한 물품들이 많았던 것에 비해 스웨덴은 제조공장을 다 해외로 옮겨서 물자조달이 이럴 때 어려울 수 있겠고, 마스크를 안쓰는 건 여전히, '마스크를 쓰면 내가 아픈 사람으로 보일까봐'이지 않을까 싶다. CCTV도 잘 없는 나라인데 감염자 동선공개가 가능할리 없고, 초등학교와 유치원을 다 닫아버리면 부모들이 일을 쉬고 집에 있어야하니까 함부로 못닫는 모양이다. 심지어 이 나라 질본에서는 이미 예전부터 아주 솔직하게, 병원과 인적,물적자원이 매우 부족하다고 말했고 코로나 검사도 많이 안할 거라고 얘기했다.
자, 다시 피아식별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이런 상황에서 내가 스웨덴 사람과 이야기를 한다면? 나는 단지 "한국은 동선추적이랑 검사수를 늘리고 정부가 좀 적극적으로 대응해서 감염자와 사망자수가 적어"라는 팩트를 이야기함에도, 요즘엔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발끈한다. 모든 나라가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거라고, 스웨덴은 스웨덴의 방법을 쓰고 있는 거라고 항변한다. "그래, 나도 알아. 근데 초기대응이 좀 늦었다고 생각하는데..."라고 내가 소심하게 말한다거나, 어쨌든 뭔가 한마디를 더 하면 "그럼 뭐 어떻게 했어야 하는데?"라는 약간 뾰족한 말이 돌아온다. 그럼 거기서 '아, 내가 지금 적이 되었구나'를 느낀다.
한국 사람들과 다 이야기가 통하는 건 또 아니다. "우리 눈에 당연히 부족하고 답답하지만, 이 정부도 나름 이 나라 상황에 맞는 대책을 생각해서 하고 있는게 아니겠냐"라고 말하면 "아 스웨덴 사람 다 되셨네요"라는 말이 돌아온다. "그렇게 선진국이라고 하더니 대응은 후진국이다, 그 세금은 다 어디에 쓰나"라는 말에, "우리나라는 병원 수도 많고 신종플루와 메르스도 있었으니 대비가 되어있었을텐데, 이 나라는 메르스도 없었고 병원이 정말 없지 않냐, 자원이 없어서 한국처럼 적극적으로 대응 못하는 게 맞는 거 같다"라고 생각을 건네면 왜 스웨덴 편을 드는 거냐는 말이 날아오기도 한다.
지난 4년동안 스웨덴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나를 밀어낸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었다. 워낙 외국인이 많은 도시에 살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제도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스웨덴 사회가 이민자에 대해서 관대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최근에, '아, 역시 내가 외국인은 외국인이구나'하는 사건들이 몇 있었고 그게 날 좀 속상하게 했다. 자주 눈팅하는 스웨덴 한인 커뮤니티에서도 코로나에 대한 논쟁이 있었는데 몇몇 뾰족한 말들을 보고 '이놈의 전염병이 진짜 사회적 거리를 만드네'하고 생각했다. 바깥에서 타인과 두어야할 거리는 '물리적 거리'라 불러야할 것 같고, 진짜 사회적 거리는 '타인과의 심리적 거리'를 말하는 살짝 부정적인 뜻 아닐까. 이렇게 전염병 때문에 누가 내편이고 누가 남의편인지 따지다보니 서로 사회적 거리가 점점 멀어져가고 있는 것 같다. 모든 게 정상적일 때는 외국인 한 명이 주변에 어슬렁 거려도 그게 그렇게 거슬리지 않던 것이, 전염병이 돌고 '누가 나에게 안전한 사람이고 누가 아닌지' 항상 생각하게 되고 '누가 내편이고 누가 남의편인지'를 생각하다보면 모든 게 다 거슬리게 되기 마련이다.
제발 이 상황이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 '사람과의 접촉'이 위험하게 여겨지고, 나로 인해 누군가가 아프게 될까봐 못만나는 상황, 누군가 때문에 내가 아프게 될까봐 걱정하는 이런 것들이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누가 내편이고 누가 남의편인지, 누가 믿을만하고 누가 믿을만하지 않은지, 개인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생각하고 판단해야하는 이런 낭비가 빨리 끝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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