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백신도 치료제도 개발되지 않은 전염병이 세계를 휩쓸기 시작할 때 각 나라가 취한 대응방식은 제각각이었지만 스웨덴은 왠지 느긋했다. 한국처럼 빨리빨리, 더 많은 사람들을 테스트하지 않음을 답답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고, 덴마크처럼 진작에 학교와 식당 문을 다 닫아버리고 국경 폐쇄까지 해버린다거나 하지 않음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 역시 답답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하면 공포심을 덜 유발하고 패닉을 최소화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이 나라를 무작정 비판하지 않으려 했다.
잘 기억은 안나지만 예전에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읽고, 사람과 사회를 무력하게 만드는 게 꼭 전염병뿐만은 아니겠다고 느꼈던 게 기억난다. 당연하다 생각했던 게 당연하지 않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게 사라져가는 데서 오는 공포심이야말로 또 다른 전염병이 아닌가. 특히 책에서, 하루종일 수십명의 환자를 보고 온 의사에게 어떤 사람이 '당신이 뭘 알아, 너무 추상적으로 이 병을 생각하는 게 아니야? 너무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는 거 아니냐고!'라고 따지고, 의사는 '나야말로 하루종일 사람이 죽어나가는 걸 보고 왔는데 내가 이 병을 안일하게 생각한다고?'하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었다. 스웨덴 정부의 대처가 답답하긴 하지만 어쨌든 보통사람인 나보다 이 병과 다양한 대처방안을 알아본 전문가들일 것이고, 그들이 누구 한 명 더 죽이려고 이렇게 답답하게 구는 건 아닐거라 생각했었다. 한국처럼 병원수가 많지 않고 검사할만한 인력과 자원이 많지 않으니, 그걸 계산해서 대응 우선순위를 정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멀리서 볼 때는, 한국이 빨리 엄청나게 많이 검사를 하는 게 좋기도 하면서도 '너무 검사하는 데 돈을 쏟아붓는 게 아닌가, 보조금 마련에 좀더 관심과 돈을 부어야하지 않을까'했는데, 막상 '검사를 지독히도 안하고 확진자동선공개는 생각도 못하는 나라'에 코로나가 닥치니 생각이 좀 달라졌다. 확진자 숫자가 늘어나면 공포가 느껴지고 문을 닫게 되지만, 반면 커졌던 숫자가 점점 줄어들거나 하면 걱정도 좀 덜하게 되고 다시 문을 열고 어떻게 살아볼까 생각하게 될건데... 스웨덴이 확진자 통계를 잘 내지 않는 것도, 검사를 아무나 안해주고 그냥 집에만 있으라 하는 것도(물론 감염자든 비감염자든 사람 접촉을 최소화 하는 게 최대한의 예방방법이라 해도) 과연 민심동요를 막고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법이 될까 의문이 든다.
휴교도 국경통제도 고려하고 있지 않다던 스웨덴 정부가 갑자기 어제 스웨덴의 모든 고등학교와 대학교, 콤북스 같은 성인교육기관을 잠정적으로 휴교한다고 공지했다. 음... 정확히 말하면 휴교는 아니다. 학교 문을 닫긴 하지만 수업과 시험은 온라인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했으니까. 근데 그게 정말 너무 갑자기 내린 조치여서 다들 더 당황하고 더 패닉하고 있는 것 같다. 하도 '휴교와 국경통제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누누히 말하다가 갑자기 휴교도 하고 국경통제까지 하니까 사람들이 '와, 그 전염병이 진짜 여기 왔나봐'라며 사재기를 엄청 하고 있는 것 같다. 마트에 냉동식품과 파스타, 휴지가 텅텅 비었더라.
초등학교와 유치원은 아직 휴교령이 내려지지 않았는데, 그것까지 문을 닫으면 다들 집에서 아이를 봐야하니까 다 휴가 내고 집에 있으려 할테고, 그 경제적 여파를 어떻게 감당할까 아직 고민하고 있는 모양이다.
별 거 아닌 것 같고 그냥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것 같아보였던 일상이 사실은 얼마나 소중한가, 벌써 깨닫고 있다. 이미 한달 전부터 한국에서부터 소식을 들으면서 가족들과 친구들의 일상이 무기력하게 변해가는 거 같아 안타까웠는데 이제 여기도 시작이다. 심란하다. 한국은 한달전부터 계속 이렇게 심란했겠지. 당장 이번 주 토요일 시험이 온라인으로 바뀌었고, 다음 주부터 새로 수업 3개 시작하는데 다 온라인으로 바뀌었다. 강의가 온라인이 되는 건 상관없는데 셋 다 주로 실기수업을 하는 과목이라 그게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저녁에 하던 한국어수업 알바는 수강생들이 당분간 나가고 싶지 않대서 일단 오늘 수업은 취소했다. 그래서 당분간 직접 만날 사람이 없다. 친구들 만나는 건 괜찮으려나. 게을러지지 않도록 집에서 어떻게 자습할 건지 계획을 좀 세워봐야겠다. 내 일상과 평정심을 최대한 유지하려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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