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곳으로 이사온 지 딱 3년이 되었다. 재작년, 그리고 작년에도 이민 후 1년, 2년 소감을 적었는데 1년째 되던 때에는 선거가 있었기 때문에 1년동안 내가 스웨덴에서 받은 복지혜택에 대해 간략하게 쓰면서 우리나라가 더 여유롭고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썼다. 2년 되었을 때에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는데, 소원했던 남북관계가 봄이 오듯 조금 풀리는 것을 보면서 내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쓰게 되었다. 올해는 뭐에 대해서 쓰면 좋으려나. 난장판 국회...? 농담이다.
스웨덴에 오기 전까지는 매 해 뭔가 달라지는 게 있긴 했지만 변화의 폭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 대학 다닐 때야 그냥 학년이 올라가고, 수강과목이 달라지고, 자취방을 바꾸고 뭐 그런 정도였다. 졸업하고 취업한 후에도 딱히 그렇게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던 것 같다. 고민거리와 선택할 거리는 항상 있긴 했지만... 뭔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힘들게 준비한 기억이 별로 없다. 음... 교환학생 가려고 일본어공부했던 것 정도? 전공공부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으므로 기억도 별로 없고, 대기업 입사를 준비하지 않았으니 취준을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그렇게 열심히 했던 것도 아니다. 돈을 벌고 싶긴 했는데 딱히 구체적으로 10년, 20년 후를 생각해본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들어간 회사에서는 늘 엄청 힘들어했는데, 조직생활에 적응하고 빠른 템포로 일하는 게 힘들었던 거지, 내가 뭔가 자기 계발을 위해 엄청 뭘 열심히 했던 건 또 아니다. 가끔 '내가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늦기 전에 다른 커리어로 방향을 틀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은 했지만, 결국엔 기술습득에는 돈이 들고 나에게는 그런 여유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그때 비자신청을 하고 스웨덴에 오기로 마음먹었던 건, 딱히 그당시에 뭘 이루고자 하는 목표도 없었고, 잃어서 아쉬울 게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다른 나라에 가서 산다고 막상 결심하니 엄청난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했지만.
스웨덴에 와서는 한 해, 한 해가 너무 달랐다. 아니, 한 달, 한 달이 정말 달랐다. 긍정적인 부분으로도, 부정적인 부분으로도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스무살 때는 그냥 다들 대학을 가니 나도 갔고, 그냥 재밌어 보이는 걸 골라서 공부를 했을 뿐이었는데, 낯선 땅에 떨어지고 나서야 이제야 인생에 대해 좀 고민을 하기 시작하고 '생존'을 위해 언어공부를 했다. 정말이지, 고민해야할 것이 많았고 선택할 거리가 많았다. 이 나라에서는 백지와도 같은 상태였기 때문에 선택할 거리가 많았던 건데, 항상 "뭘 하고 싶은지"와 "뭘 할 수 있는지"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는 누구를 만나든 결국 이야기가 그렇게 깔때기처럼 진로상담으로 흘러가곤 했다. 마음도 갈대처럼 흔들리고 귀는 더욱더 팔랑팔랑해졌다. 지난 3년동안 만난 사람도 많았다. 한국에서는 친구 위주로 약속을 잡고 만났지만, 여긴 뭐 아는 사람이 없었으니 이 모임도 가보고 저 모임도 가보고, 이 사람도 만나보고 저 사람도 만나보고, 이 얘기도 들어보고 저 얘기도 들어보고... 어쨌든 지난 3년만큼 나의 앞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이전에는 없었고, 지난 3년만큼 내 하루하루가 그렇게 달랐던 적이 없었다. 기분도 어쩜 그렇게 요동을 쳤는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이제 조금 있으면 1학년을 마치게 되는데,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나의 이민생활이 조금은 안정을 찾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로도 어느 정도 방향이 잡혔고, 당분간 알바 걱정, 취업 걱정 할 일은 없으니 뭔가 고민해야할 것들과 결정을 내려야할 것들이 이제 줄어든 것 같다. 아무 생각말고 공부만 하면 되는데 아 정말 공부는 해도해도 하기 싫은 것이구나... >_< 어쨌든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매달 뭔가가 있었고, 매달 고민거리와 매달 결정할 거리가 있었는데 이제 좀 단조로운 일상이 찾아온 것 같다. (지금은 매달 시험이 있고 매주 과제가 있으니 이게 더 다이나믹한 일상인가 싶기도...)
그런데 나는 항상 꼭 걱정거리를 꺼내고야 말고 꼭 불평거리를 발견하고야 마는 동물이라. '아 그래도 빠른 기간에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야'라며 스스로를 토닥토닥하다가도, 갑자기 '아니 근데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하는데? 서울에서 그래도 나 꽤 괜찮게 살고 있었잖아? 회사 계속 다녔으면 승진도 했을 거고 돈도 벌었겠지?'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쩔 때에는 '이제 이 곳에 내 삶이 있고, 이 곳이 내 집이라는 것'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고 그게 내가 이곳에 적응했다는 증거라며 뿌듯해하다가도, 어쩔 땐 그것때문에 슬퍼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그래도 몇년 후나 아니면 노년에라도 한국 다시 가서 살고 싶어"라는 말이 나온다고 치자. 당연히 감정적으로는 한국에 부모님과 동생도 있고 오랜 친구들도 있으니 나도 그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보면 그러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한국에 가면 뭘 할 수 있겠어?라는 생각과, 한국에 가면 우리 집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겠어?라는 생각과, 이제는 한국에 가도 각자의 삶이 다 달라져버렸으니 만나도 전과 같은 사람이 별로 없고 만날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과, 하고 싶은 공부는 여기서는 할 수 있지만 한국 가면 하기 어렵다는 생각과, 이젠 스웨덴에서 사는 게 오히려 좀 편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면서 '굳이 한국을 다시?'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러면 또 복잡한 마음이 된다. 30년 가까이 살았던 곳보다 겨우 3년 산 이 곳을 편하다고 생각하는 게 정상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하고, 요즘처럼 벚꽃이나 연등을 보러 갔던 기억, 친구들과 되도 않은 말장난을 하며 깔깔거렸던 날들이 떠오르면 '그래도 나는 한국에서 그런 것들이 좋았는데'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런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슬프다가도.
그런 얘기를, 외국 생활을 몇십년간 하신 분께 털어놓았더니 "나의 삶은 항상 지금 내가 있는 곳에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간단하게 말씀하셨다. 내가 내 삶을 한국에 두고 스웨덴에 와서 고생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내가 내 삶을 완전히 한국에서 스웨덴으로 '옮겨온' 것도 아니고, 뭐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도 말고 아련해하지도 말고 지금 내가 있는 곳을 내 집이다, 이게 '지금'의 내 삶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그런 말씀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스웨덴 생활에 적응하고 여기를 더 편하게 여기고 하는 것에 대해 굳이 한국의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미안함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옳은 말씀이었다. 오랜 친구들과의 인연을 좀더 알차게 이어나가지 못하는 아쉬움, 가족들에게 바로 버스타고 갈 수 없는 그런 아쉬움은 아무리 해도 없앨 수 없겠지만, 그 대신 내 옆에 있는 내 새 가족에게 더 잘하고 지금의 삶을 잘 채워나가자는 그런 다짐을 또 새삼스럽게 하게 되었다.
이민온 지 3년, 소감 끝. Skå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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