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동안 스웨덴에서 살면서 그렇게 엄청 문화충격을 받은 적은 별로 없었다. 소소한 것은 뭐 그냥, 이 나라 사람들이 소금을 엄청나게 쳐서 먹는다는 거랑 크리스마스 때 쌀을 우유에 끓인 죽을 먹는다는 거랑 뭐 그런 것 정도. 그래서 누군가 "문화차이 때문에 힘들지 않냐" 따위의 질문을 던지면 "그런 걸 별로 느낀 적이 없다"고 답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 접한 장례문화는 조금 컬쳐쇼크였다.
남자친구의 외삼촌이 3월 말에 돌아가셨다. 오랫동안 병을 앓으시다가 돌아가신 거라 가족들 모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래서 돌아가셨던 날도 다들 차분했다. 바로 장례식을 준비하고 조문을 받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이 나라는 장례식까지 조금 준비기간이 걸린다는 건 알고 있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너 이때 시간 돼? 그럼 이 날은? 그래, 그럼 이날 장례식을 하자" 이런 식으로 정하는 걸 보니 그건 조금 충격이었다. 그렇게 해서 정해진 날은 고인이 돌아가신 후 한 달이 넘은 후의 날짜였다. '한 달 후에 한다고? 그럼 화장은 미리 하는 건가? 유골함은 지금 어디에 있는건데 그래서? 응?' 우리나라는 누군가 돌아가시면 바로 휴가를 써서 장례를 준비하지만, 이 나라는 그런 휴가가 없으므로, 그리고 장례업체의 일정과 장례식을 할 장소의 스케줄까지 다 고려해야하므로 보통 한달 후에 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했다.
고인은 부인이나 자식이 없었어서, 고인의 누나인 남친 어머님이 장례를 준비하셨다. 한번 집에 들렀을 때 어머님은 고인의 사진들을 쭈욱 늘어놓고 '초대장에 어떤 사진을 넣을까'를 고민하고 계셨다. 나는 이것도 조금 신선했는데, 장례식의 '초대장'을 본적도 없고 생각도 해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식 날짜가 정해진 후, 장례식에 대해 거의 잊어갈때쯤 드디어 그날이 되었다. 당연히 까만 옷을 입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확인차 남친 어머님께 다시 여쭤봤다. 그랬더니, "뭘 입고와도 좋지만 까만색은 입지 말고"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네? 장례식에 까만 옷 입고 가는 건 만국공통 아니었나요...? 스웨덴 드라마에서도 사람들은 까만색을 입던데... "그렇긴 하지만 우린 조금 다르게 할거니까 절대 장례식 온다고 새로 옷 사거나 하지 말고 그냥 집에 있는 옷 입고 오라"고 하셨다. 여기서 2차 컬쳐쇼크.
예전에 꽃 얘기를 하다가, 스웨덴에서는 카네이션이 장례식 때 가져가는 꽃 중 하나라는 얘길 들었다. 그래서 당연히 카네이션을 사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고 그냥 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갔더니 하얀 국화도 아니고 카네이션도 아닌 빨갛고 분홍분홍한 장미꽃들이 있었다. 아... 정말 이 나라는 뭐, 딱 정해진 게 없고 그냥 사람 취향이구나, 하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장소에 도착해서 사람들과 약간 담소를 나누고 시간이 되어서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고인이 개신교 신자가 아니었어서 그냥 장소만 빌려서 간단히 한다고 들었다. 조문객은 남자친구의 가족들, 나, 그리고 고인의 친구 네 명, 이렇게 열명 뿐이었다. 여기서 3차 컬쳐쇼크였던 것은, 남자친구의 누나는 심지어 분홍색 옷을 입고 있었고, 고인의 친구분들은 생전에 함께 즐겨 갔다던 블루스 페스티벌 기념티셔츠를 입고 계셨다. 제대로 정장을 입은 사람은 나랑 남자친구...? '우리 너무 갖춰입고 왔나봐' '나는 어두운 초록색 블라우스 입고 나오면서도 너무 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장례식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나서 바로 스피커에서 음악이 나왔다. 이게 바로 4차 컬쳐쇼크. 아무리 고인과 이 가족이 종교와는 매우 거리가 먼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좀 경건한 느낌의 음악이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약간 흥이 나는 블루스 음악이 나왔다. 그걸 음악감상회 하듯이 가만히 앉아서 듣고 있었다. 아 그렇지. 고인이 돌아가시고 나서 고인의 누나, 그러니까 남친 어머님이 하신 말씀이 있었다. "장례식에서 무슨 노래 틀지 좀 적어놓고나 가지... 나는 그래서 내 장례식에서 뭘 틀지 미리 다 정해놨어." 그러니까 지금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이 노래는, 어머님이 최선을 다해 고른, 고인의 페이버릿 노래들이었던 것이다.
한 곡이 끝나자 장례식을 주관하는 사람(아마도 업체에서 나온 사람)이 고인의 간단한 약력을 읊었다. 그러고 나서 "다음 곡은 ㅇㅇ의 ㅁㅁ입니다." 그러고 나서 또 노래 재생... 노래가 끝나고 나서는 고인을 기리는 시를 읽더니 또 "다음 곡은 ...입니다"하고 나서 또 노래 재생... 그것은 마치 라디오 공개방송과도 같았다. (심지어 뒤에서 CD 틀고 있던 사람이 fade-in / fade-out을 얼마나 잘하던지...) 하필이면 노래들이 좀 흥겹기도 해서 리듬을 타지 않으려고 노력했을 정도였다. 그래도 그 노래들이 뭔가 추억이 있는 노래였는지 친구분들과 어머님이 훌쩍이셨고... 마지막으로 앞에 나가서 꽃을 두는 순서가 되었다. 어떤 친구분은 블루스 페스티벌 기념모자를 대신 놓아두고 우셨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 곡이 재생되었고, 그렇게 장례식이 20분만에 끝났다.
그렇게 나와서 미리 예약된 식당으로 갔다. 진짜 엄청 맛있는 고퀄리티 코스요리였는데, 어머님이 "다들 맛있게 먹고, 마시고 싶은 술이나 와인도 맘껏 시켜라, 내 동생도 그러길 바랄 거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고인이 마지막으로 쿨하게 먹을 것을 쏘고 있다는 느낌으로 다들 배부르게 먹고 마셨다. 대화의 주제는 고인과의 추억이었는데, 다들 그와 있었던 에피소드를 하나씩 풀어놓으며 신나게 웃는 분위기였다. 누군가 "집에 있던 사진들을 좀 정리해봤는데..."라며 앨범을 꺼냈고, 고인과 친구분들이 찍힌 사진을 다같이 돌려보았다. 다들 까만 옷을 입고 있지 않으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말 누구 생일잔치인가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웃고 떠들었다. 그래서 장례식을 한 달 후에 하는 건가? 비보를 접했을 때의 슬픈 감정은 각자의 방법으로 추스리고, 시간이 좀 지난 후에 만나서 고인과의 추억을 얘기하고 '그는 그래도 다른 형태로 우리 마음 속에 남아있다'고 말하는 게 이 곳의 장례식인가 싶었다.
물론 어떤 집은 좀더 많은 사람을 부르고 목사가 주관하는 종교적인 장례를 치른다고 들었고, 이 집이 좀 개성있게 한 편인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장례식이 스웨덴에서 아주 이상한 형태는 아니라고 했다. 장례식에는 고인이 좋아했던 것들을 놓거나, 친구들도 고인과의 추억이 담긴 물건을 가져온다거나 한다고. 그리고 식 후에는 다같이 어딘가 가서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는 시간이 있다고 하고. 아무래도 생전에 가까웠던 사람들만 초대되고 참가를 하니, 더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았다. 고인의 친구분들은 다 처음뵙는 분들인데도 아무도 나에게 어디서 오고 뭘 하고 있는지를 묻지 않았고, 단지 '고인을 만난 적이 있냐'고만 물었다. 그 정도로 대화의 주제는 오로지 고인의 생애였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손님들을 보내고 오는데, 동생이랑 관련된 일화를 많이 듣고 사진도 봐서 그랬는지 어머님의 표정도 밝아보였다.
그래서 나는 이 장례식이 꽤 마음에 들었다. 나는 딱 한번밖에 뵌 적이 없었는데도 고인에 대해서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된 그런 자리였다. 심지어 좀더 건강하실 때 만나보지 못한게 아쉬웠을 정도로, 블루스를 좋아하던 거구의 아저씨가 궁금해졌을 정도였다. 나도 이런 식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내 삶이 마무리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만의 플레이리스트에 대해서도 조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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