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2020

방구석에서 보낸 2주

by Bani B 2020. 6. 25.

자가격리 해제는 아직 하루 하고도 반이 남았지만 후기를 짤막하게 써본다. 입국 과정과 지원물품 개봉기 같은 게 내 눈에도 좀 신기해서 유튜브로 찍어 올렸는데 의외로 호평이라 자가격리 해제하는 것도 찍어서 조만간 올려볼까 싶다.

 

   2주가 사실 그렇게 심심하지 않았다. 할 게 많아서 그런가ㅠㅠ 계절학기 듣고 있는 거 숙제하느라 시간이 가고, 조교가 일을 참 꼼꼼하게 열심히 하는 바람에 과제 고쳐서 다시 제출하라고 되돌아오고, 그래서 그걸 또 고쳐서 내고 하다보니 시간이 잘 갔다. 과외는 원래 온라인으로 했으니 방구석에서 일을 할 수 있었고, 스웨덴 운전면허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책 읽다보면 시간이 슝 간다. 

 

   스웨덴어 공부를 방학동안 좀더 하고 싶어서 방법을 생각해봤는데, 듣기 연습을 좀더 하고 싶어서 방학되자마자 팟캐스트를 집중적으로 들었다. 나의 최애 프로그램은 블로그에 여러번 썼다시피 språket과 plånboken인데,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plånboken 그동안 다운받아놓은 걸 재생하며 10시간을 그렇게 들었더니(사실 그 중 6시간은 잠) 당분간 plånboken은 듣고 싶지 않아졌다. 그러다가 누가, '좀더 고급 어휘를 익히고 싶으면 뭐니뭐니해도 문학작품이 최고다'라는 말에 또 귀가 팔랑팔랑 해서, 오디오북 사이트를 찾아 가입했다. 스웨덴에도 밀리의 서재 비슷한 사이트가 여러 개 있는데, storytel은 예전에 이미 무료기간을 써먹었고, 이번에는 nextory를 다운 받아 한달동안 무료로 들어보기로 했다. 

   스웨덴 사람들은 어쩜 그리도 추리소설을 좋아할까.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도 추리소설 장르가 엄청 크게 있는데 이 인터넷 구독 서비스는 말할 것도 없다. 추리소설이 첫화면이고 뭘 눌러도 추리소설을 추천해주는 이 사이트... 나는 딱히 추리소설을 읽고 싶지는 않은데 하면서 넘기다가, 전에 어디선가 리뷰를 보고 읽고싶다 생각했던 미국 소설을 찾았다. 

   저작권 때문인지 그 책은 글은 서비스가 안되고 듣기만 서비스가 되어서 눈을 감고 듣는데... 뭐야, 뭐 이리 자연경관 묘사가 많이 나와. 무슨 새가 어쩌고 하면서 풍경묘사를 하는 거 같기는 한데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어서 시작한지 5분만에 일단 정지를 했다. 과연 여기서 포기할 것인가. 정녕 나는 오디오북으로는 뭘 배울 수 없는 것인가. 

   그러다가 문득, 한국어로 읽으면서 스웨덴어로 들으면 어떻겠냐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읽고 싶었던 책이니까 한국 모 e-book 서점에서 쿨하게 지르고 아이패드로 한국판 전자책을 열었다. 그리고 다시 스웨덴어 오디오북 재생... 그리고 귀로는 스웨덴어, 눈으로 한국어를 보며 미국 소설을 읽었다. 근데 이게 꽤 효과적이라고 생각을 했던 게, 귀로 들리는 거에 좀더 집중을 하면서 이해하다가 도저히 방금 그 단어는 모르겠다 싶을 때 얼른 해당 문단에서 한국 단어를 찾는 그 과정이 재밌었다. 그리고 음성파일을 잠깐 정지 시켜놓고, 한국어로 한 페이지를 미리 읽어서 내용을 대충 이해한 다음, 다시 스웨덴어로 들으면서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것도 재밌고 많이 배울 수 있었다. 한국어로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스웨덴어로 번역을 해보고, 눈감고 들으면서 스웨덴어 문장들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비교해볼 수도 있었고. 그렇게 어제 세 시간을 읽었는데 음성파일은 아직도 거의 10시간이 남아있네 :) 좀더 해보고, 남에게 추천해줄만한 공부방법이라고 생각이 되면 따로 정리해서 포스팅을 해보겠다. 

 

   여튼 그래서... 방구석에서 사람과의 교류 없이 혼자 앉아서 공부나 하고 심지어 공부의 대부분이 스웨덴 생활의 연장이라 도대체 내가 지금 한국에 있는 건지 스웨덴에 있는건지 모를 때가 있지만, 하루에 두 번 엄마가 밥먹으라고 문을 똑똑 두드려서 문을 열어 밥그릇을 방으로 들고 와 먹을 때, 그렇게도 먹고싶었던 총각김치와 열무김치와 생선구이로 밥 한그릇 쓱싹 비울 때, 역시 여기가 한국이군 하고 생각한다. 

 

   낼 모레 격리해제인데 내일 마지막으로 코로나 검사 한번 더 하라고 해서 아주 당당하게 합법적으로 걸어서 보건소에 갈 예정이다. 버스타지 말라고 하셔서 30-40분동안 도보로 가지만 오랜만에 오래 걸어서 좋을 것 같다. 격리 끝나면 제일 먼저 미용실 가서 염색부터 할 거고(1년만에 염색....ㄷㄷ) 사실 제일 하고 싶은 건 거실에서 엄마랑 TV보는 거. 집에 온 지 2주가 다 되어가고 밤마다 엄마가 거실에서 TV를 보는 소리가 들리는데, 나도 같이 보고 싶은데 같이 보지를 못하니 이게 생이별이 아니면 무어란 말인가. 주말엔 거실에서 치맥을 해야겠다.

반응형

'일상 > 2020' 카테고리의 다른 글

2종 오토 -> 1종 보통 변환 후기  (0) 2020.07.15
자가격리 해제 후 일상 + 스웨덴 운전면허 준비  (0) 2020.07.02
2학년이 끝났다.  (0) 2020.06.06
스웨덴, 4년.  (0) 2020.04.28
스웨덴도 드디어 대학 휴교  (0) 2020.03.1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