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사실 브로콜리너마저의 명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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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잘 보지 않지만, 그래도 정말 마음에 든 영화는 두번이고 세번이고 본다. 세 번이나 본 애니메이션 '목소리의 형태'는 청각장애를 가진 쇼코와 어린 시절 쇼코를 괴롭혀서 전학을 가게 만든 후 왕따를 당한 쇼야의 이야기이다. 다른 아이들이 하는 것처럼 소통하고 싶어서 잘 들리지 않아도 음악시간에 노래를 부르려 하고 쇼야에게도 중요한 말은 음성언어로 하려 하는 쇼코와, 쇼코와 친구가 되려고 수화를 배운 쇼야나 사하라의 이야기, 그리고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재회하여 놀이공원에 가는 장면까지는 그냥, '왕따 예방용 학습만화' 정도이지 않을까했지만... 그리고 '서로 다른 언어형태를 존중하고 친구가 되는 이야기' 정도가 아닐까 했지만, 우에노라는 민폐 캐릭터 때문에 줄거리가 달라진다. **약간의 스포일러** 끝까지 쇼코에게 있는말 없는말 가리지 않고 솔직하게 '너 밥맛이야'라고 하는 등 정말 비호감캐릭터이지만, 사실 나는 우에노 때문에 이 영화가 좋았다. 특히 마지막에 우에노가 쇼코에게 '바보'라고 할 때 주변 모두가 서로 눈치를 보는데, 그 때 쇼코가 오히려 우에노에게 '바보'라고 되받아치는 장면이 정말 좋았다. 모두가 어릴 때 했던 행동으로 죄책감을 가져 쇼코에게 마냥 상냥하려고만 하고, 제대로 어릴 때 일을 사과하지 않고 친절하게 대하며 '이제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쇼코에게 가장 솔직하게 "나는 아직도 네가 싫어"라고 말하고 쇼코도 마지막에 그에 답하는 모습이. 아무도 쇼코에게 '감히' 바보라고 말하지 못했지만, 다른 이에게 하는 것처럼 쇼코를 놀리는 모습이야말로 감독이 '소통'에 대해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생각했다. '목소리의 형태'에 상관없이 자신의 '목소리' 자체를 솔직하게 전하는 게 중요하다, 뭐 그런 거.
장애뿐만이 아니라 사실, 해외에서 '외국인'으로 사는 입장으로서도 와닿는 부분이 많은 영화였다. 나는 이 나라 사람들과 잘 소통하고 이 사회에서 잘 살아보고 싶어서 열심히 이 나라 말을 배웠고, 좀더 좋은 급여를 받으며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싶어서 대학교에서 더 공부하는 걸 택했다. 물론 내 스웨덴어가 원어민의 스웨덴어와는 다르고 어색한 부분도 많겠지만, 빨리 적응하고 싶어서 처음에 학교 행사도 열심히 참여했고 학교에서 애들한테 말도 먼저 걸었고 조모임이 있으면 자료를 한번이라도 미리 더 읽어서 조모임 때 한마디라도 더 해보려고 했다. 학교 애들이 나를 '귀찮게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냥 보통의 학교생활을 하고 싶었다. 아마 특수학교에 가지 않고 '굳이' 일반 학교에 가서 열심히 음악시간에 '들리지 않아도' 열심히 노래를 부른 쇼코가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다행히도 평소에도 자주 연락하는 친구가 두 명쯤 생겼고, 평소에 연락하지 않아도 학교에서 만나면 잠시 멈춰서서 근황을 물을만한 사람들도 생겼다. 그렇게 나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해서 평탄하게 잘 다니고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 학교는 조모임이 정말 많다. 다행히 대부분은 내가 파트너를 고를 수 있고 두명씩 하는 활동이 많아서, 1학년때부터 친한 친구와 계속 붙어다니고 있다. 그 외에 가끔 랜덤으로 조원이 정해질 때도 있었는데 대부분은 무탈하게 넘어갔다. 무탈하게 넘어갔다...고 믿고 있었다.
1학년 때야 정말 '아주 초보인 애'와 '그래도 코딩 좀 해본 애' 이렇게 나뉘어서 실력차가 있었다 치지만, 2학년때부터 들은 과목은 (실력차는 있을지라도) 어차피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이용해서 프로그래밍을 해가는 거니까, 수업을 잘 듣고 과제 설명을 잘 읽으면 내가 다른 애들보다 그렇게 특별하게 뒤처질 일은 없었다. 그래서 내가 딱히 다른 애들보다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다. 문제를 내가 잘못 읽은 적이 있을지는 몰라도 말이다. 그래서 친한친구와는 과제를 할 때 궁금한 게 있으면 서로 물어보고, 언어가 다르긴 해도 학교수업은 비슷한 속도로 이해하고 있다고 서로 믿는다. 과제 분량도 서로 봐주거나 미루는 거 없이 동등하게 나눠서 한다. 소통이 잘 되니까 아웃풋도 꽤 좋은 편이다.
랜덤으로 걸린 조모임은, 에세이를 쓰고 발표를 해야하는 조모임에서는 별로 문제가 없었다. 각자 맡은 파트를 나눠서 쓰고, 서로 의논해서 발표담당을 정해서 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꼭, 프로그래밍을 하는 조모임에서만 내가 기분이 나쁠만한 일들이 생겼다. 사실 입학한 후 처음 했던 조모임부터 느꼈던 뭔가가 있었다. 그때는 내가 정말 말을 지금처럼 (틀려도 자신있게) 못했고 코딩경험도 별로 없었으니 애들이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무시한 걸 거라고 생각했다. 뭐 예를 들어... 파트를 나눠서 코딩을 했는데 내가 써간 부분은 보지도 않고 지들끼리 그부분까지 쓴다거나, 내가 옆에서 "그렇게 하지 말고 요렇게 하는 게 더 나을걸?"이라고 코멘트해도 "음 그러게" 라고 대꾸 한마디 하고 결국에 지 맘대로 한다거나. 그런 일이 1학년때도, 2학년때도, 그리고 3학년때도 일어나고 있다. 1학년때야 내가 좀 어리버리했다 치지만 그 후로 배운 점이 좀 있어서 (=스웨덴에서 겸손의 미덕은 개나 줘라, 무조건 어필해야 살아남는다...라는 걸 배웠다) 노력했는데, 뭐 변하는 게 없다.
이에 대해 자세히 길게 썼다가 다시 지웠다. 안좋은 일을 자세히 쓰면 나중에도 기억이 생생하게 날 거니까, 그냥 간단히 쓰겠다. 같이 만들어야 하는 프로그램에 대해서 의견을 제시했고, 남이 쓴 코드에 대해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어서 다이어그램을 그려가면서 설명을 했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 무슨 기능이 구현이 안된다고 걱정하길래 내가 그 부분을 코딩해서 올려놓고 '한번 테스트해보라'고 그룹챗에 말했지만 아무도 내 코드를 보기는커녕 다음 날 '응? 너 코딩했어?'라고 하기도 했다. 뭐 그밖에도, 내가 테스트한 후 '이거이거 안된다'라고 하면 아무 대꾸도 없고, 다른 누가 똑같은 말을 하면 바로 답장하며 자기들끼리 서로 토론하며 개발을 해나가는데, 이런 광경이 처음이 아니라서 환멸마저 느꼈다. 그렇다고 그 애들이 나에게 무례하게 말하지는 않고 굉장히 친절하게 말을 한다. 꼭, 쇼코를 다시 만난 동창들이 친절하게 말을 걸지만 누구 하나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것처럼. 차라리 걔네들이 내 말을 못 알아듣고 있는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런데 다 알아듣고 있는데 그냥 안듣는걸 아니까 슬펐다. 같이 하고 싶지만 끼워주지 않는 그런 상황. 같이 할 수 있지만 '아냐 너는 못해'라고 하고 내치는 그런 상황. 너희들이 하고 있는 거 나도 뭔지 안다고 어필하지만 듣지 않는 그런 상황. 이게 내가 외국인이라서 그런걸까, 아니면 내가 여자라서 그런걸까, 아니면 둘 다일까 생각하니 머리가 아팠다.
그래서 어제까지는 조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 오늘 하루 그냥 관전해봤다. 당연히 매우 잘 굴러갔다. 내가 아무 의견도 말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어주는 거, 그냥 에세이나 고치고 제출을 담당하는 거, 이게 그들이 원하는 거였을까 생각했다. 이런 걸 나만 느끼는 걸까 아니면 다른 스웨덴 여자애들도 느끼고 있을까. 여자애들 중에 친한 애가 없어서 물어볼만한 애가 없네... 나만 느끼는 걸까 다른 외국출신 애들도 느끼는 걸까 궁금한데 이 과에 나처럼 이렇게 성인이 되어서 이민 온 애가 별로 없어서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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