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생일이었다. 만 33세가 되었다. 이제는 서른 '즈음'이 아니니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는 못틀겠다며 집사람이 너스레를 떨었다.
생일선물이라며 집사람의 부모님이 용돈을 조금 보내주셨는데 메시지에 '수영 강습비'라고 적혀있었다. 운전면허도 땄으니 이제 수영을 배워야할 때인 것 같다. 가을에 시작하는 수영기초반 등록을 이번에는 잊지 말고 해야겠다. 서른셋인데 아직도 배워야할 게 많다. 하지만 스웨덴애들이 아무 생각없이 하는 그 개구리수영이, 과연 내가 일주일에 한번 수영장에 가서 배운다고 배워질까? 그걸 배우기에 이미 내 몸은 굳어버린 게 아닐까?
생일 전날에는 룬드달리기대회Lundaloppet에 나가서 뛰었다. 원래는 정해진 날짜에 수백명이 와서 한꺼번에 뛰는 대회인데 코로나 때문에 형식이 바뀌어서, 4월부터 8월까지 매달 다른 장소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달에는 평소에 산책다니는 연못가를 돌며 5km를 뛰었다. 혼자서 뛰면 재미도 없고 금방 지쳐서 5km를 쭈욱 못달리는데, 동네친구가 같이 뛰어줘서 5km를 쉬지않고 뛰긴 했다. 재작년 기록보다 좀 단축해보자며 막판에 마악 뛰었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재작년기록과 아주 똑같았다. 음, 그때보다 두 살 더 먹었지만 기록이 같다는 건 체력이 나빠지지는 않았단 게 아닐까? (긍정)
하지만 체력을 정말로 길러야한다. 8월에 저어기 북쪽으로 열흘동안 하이킹을 하러 간다. 평소에 하이킹을 즐겨했냐면 그건 절대 아니고, 평소에 등산을 좋아했냐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텐트에서 자본 건 거의 10년만인 것 같고, 하루에 20킬로씩 걸은 적은 인생에서 처음인 것 같다. 아... 대학생 때 친구따라 회기에서 고속터미널까지 걸은 적은 있는데 그게 몇킬로일까. (...찾아보니 13킬로라고 나온다.) 15kg정도 되는 가방을 메고 오래 걷는 것은 더더욱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요즘에 집사람과 휴일마다 어딘가 가서 배낭메고 걷고 오는데 다녀올 때마다 살이 쑥쑥 빠진다. 그만큼 많이 먹지만 이번 달에 4-5kg가 쑥 빠졌다. 체중은 줄어드는데 뱃살이 늘어나는 것은 기분탓이겠지? 지방을 빼고 근육을 늘려서 체지방률을 줄여야한다는 상식 정도는 있지만 근육을 늘릴만한 운동을 안하는 게 문제다. 하이킹 다녀올 때마다 '운동 정말 빡세게 해야지'라는 생각은 한다. 하지만 다녀와서 과제나 시험을 마주하면 '운동할 시간이 어딨어'라는 핑계를 대는 나는 스물세살 때나 서른세살 때나 달라진 게 없다. 이제 다음 주면 학기 끝이니까 운동을 좀 하게 되지 않을까? 아직도 이렇게 남의 일처럼 얘기하고 있는 걸 보니 정신을 덜 차린 것 같다. 그리고 학기 끝나자마자 인턴 시작이라 그떄는 또 그 핑계를 대게 될 것 같다.
인턴할 회사에서 4월에 계약서 쓴 이후로 별 말이 없길래 '나 일하는 거 맞나' 조금 불안해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오늘 좀더 구체적으로 첫 출근 날짜와 시간을 알려주었다. 첫날만 회사에 나오고 나머지는 재택으로 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첫날 회사에 직접 가는 게 다행이다. 비록 그날 회사에 아무도 없을 거라고 하지만... (서..설마 멘토와 둘이서만 하루종일 있을 예정인가? 좀 숨막히지 않을까 그러면...?) 게다가 다른 인턴 세 명은 스톡홀름 본사에서 일할 거고 룬드 사무실엔 나 혼자일거라고 하니 뭐 서로 의지할 인턴 '동기'라는 것도 없을 것 같다. 음 그러고보니 동기라는 게 있어도 과연 그런 동기애가 스웨덴에도 존재하는지 궁금하다.
인턴 5주를 하면 뭘 하게 될까, 라고 물으니 집사람이 '건물 안 화장실을 안 헤매고 찾아갈 때 되면 5주 끝나지 않냐'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맞네. 그런데... 직접 가서 하는 거면 화장실 위치 파악하다가 5주가 가겠지만 재택을 하면 뭘 파악하다가 5주가 끝날까.
다시 생일 이야기로 돌아와서, 생일날에는 멀리서 그리고 가까이서 많은 축하를 받아서 즐거웠다. 내가 평소에 남의 생일을 잘 챙기지 않는데 이렇게 챙김을 '받아서', 앞으로는 나도 사소한 것도 잘 챙기는 사람이 되어봐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작은 것, 말 한마디로도 얼마든지 주변사람들을 더 기분좋게 해줄 수 있었는데 '나는 좀 무심하니까'라는 핑계를 대기만 했던 건 아닌지 반성도 되었고.
5월 말이다. 항상 6월에 한국에 갔으니 5월말 되면 한국 가서 뭐할까 뭐 먹을까 누구를 언제 만날까 들뜨고 그랬는데 그게 없으니 이상하다. 특히 미드섬머 때 스웨덴에 있는 게 5년만인데, 하필 그날 집사람이 근무라서 나도 그냥 어디 안가고 집에 조용히 있기로 했다.
여름을 스웨덴에서 보내기로 했기 때문에 섬머잡도 하게 됐고 집사람이랑 긴 하이킹도 갈 수 있게 된 거겠지만... 그래도 한국에 안 가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다. 어떤 것이 더 시간을 값지게 보내는 일일까 생각해봤자 머리만 아프고 속상하기만 하니까 그냥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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