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됐다. 보통 이맘때쯤에 한국에 가곤 했는데 학기가 끝나도 스웨덴에 남아있으니 조금 기분이 이상하다....는 것은 잠시였고, 지난 일주일동안 꽤 바빴다. 드디어 인턴을 시작했고 일주일이 꽤 순탄하게 흘러갔다.
- 이 팀은 멤버들이 다 북유럽 곳곳에 흩어져있어서 실제로 다같이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팀 공통의 목표같은 게 있긴 하지만 각각 역할도 다르고 전공분야가 다 달라서, 하는 일도 다 제각각인 것 같다. 딱히 팀장으로 보이는 사람도 없다. 나를 가르쳐주고 있는 멘토가 경력이 제일 오래되고 이런저런 일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이 사람한테 뭘 보고하거나 허락을 받거나 하지 않는다. 매일 아침마다 영상통화로 미팅을 하긴 하는데, 오늘 뭐할 건지 보고하는 목적이 아니라 '어제 요런 걸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됐는데, 혹시 뭐가 문제인지 아는 사람 있어?'하고 서로 질문하기 위한 목적의 미팅인 것 같다. 그래서 질문할 거 없으면 회의에 안오거나 '오늘 특별히 할 말 있는 사람? 없으면 회의하지 말자' 이러는 사람도 있고 굉장히 자유롭다.
- 멘토는 굉장히 차분하고, 내가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기초적인 것부터 세세하게 가르쳐주는데, 일주일 내내 매일 '멘토를 정말 잘 만났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근무시간 외에 뭘 더 할 생각 말고 개인시간을 즐기라'는 말을 자주 하고, 내가 조금이라도 뭘 하면 잘했다고 칭찬을 아낌없이 퍼붓는다. 반면에 내가 뭔가 잘못 했을 때는, 내가 어떤 점을 오해했는지 짚어주고 왜 그렇게 하면 안되는지를 설명해주는데 정말 이렇게 체계적으로 설명 잘하는 사람 오랜만이다... 왜 당신은 학교에 계시지 않는건가요ㅠㅠ 경력도 오래되고, 수비범위(?)가 넓은지, 다른 팀에서 메신저로 질문을 할 때도 제일 먼저 대답하고 이것저것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이 이 멘토다. 롤모델로 삼기엔 지금 나로서는 너무나 아득해보이는 사람인데 어쨌든 앞으로 남은 4주동안 배울 게 많을 것 같다.
- 스톡홀름에 본사가 있고 룬드에 사무실이 있긴 한데 팬데믹이라 아무도 출근하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인턴 첫날 갔을 때에는 멘토랑 멘토 동료가 한 명 나와있었고 셋이서 태국음식을 시켜먹었다. 그 사무실 뿐만 아니라 사무실이 있는 산업단지 전체가 매우 조용했다. 그 첫날에 직접 만나 컴퓨터를 받고, 이런저런 인트로덕션을 하고, 멘토가 몇 가지 기본지식을 전수해준 후 그 다음 날부터는 다 재택으로 일했다. 재택이면 이런저런 단점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지금으로서는 재택이라 좋은 점도 있다.
좋은점 :
- 남 눈치 안보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음. 첫날에는 멘토 바로 옆 책상에 앉아서 이것저것 했는데 은근히 눈치보였다. 눈치보는 게 한국만의 직장문화일까...? 여튼 멘토 눈치가 보였다. 멘토가 시킨 일을 하면서 간단한 것도 구글링하 하는 게 눈치보이고 슬랙으로 누가 메시지 보내서 답장을 하는데 그것도 눈치가 보이고...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정말 눈치보면서 했어서 이게 없어지질 않네. 하지만 재택으로 하니, 아침 팀미팅과 그 후 이어지는 멘토와의 미팅, 그리고 오후에 있는 멘토와의 두번째 미팅을 제외하면 다른 사람과 얼굴보고 얘기할 일이 없어서 매우 편하다. 궁금한 거는 슬랙으로 물어보면 되고, 글로 소통하기 힘들면 멘토에게 통화를 요청해서 물어볼 수도 있다. 주변사람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인 나로서는 재택근무가 잔신경도 안쓰고 참 좋다.
- 구글링 효율이 더 높아짐 : 위에 쓴 것과도 맥락을 같이 하지만... 어쨌든 뭘 하려고 하면 구글링이 필수이고, 웬만하면 공식 문서를 찬찬히 읽고 해보려고 노력은 한다. 그렇긴 한데... 공식 문서를 봐도 뭔 얘긴지 모르겠으면 나로서는 한국어로 검색이 하고 싶어진다. 한국 사람들 블로그에 얼마나 정리를 잘하는데... 물론 정확하지 않은 정보도 있어서 잘 골라봐야하지만, 정말 아주 감도 안올 때에는 한국 블로그를 한번 읽고, 포인트를 잡고, 공식문서를 다시 영어로 읽곤 한다. 근데 이게... 옆에 사람이 있으면 한국 블로그 보는게 눈치가 보인단 말이지. 재택이니까 그냥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막 하면 되니까 편하다.
- 시간도 절약됨: 집에서 회사까지 자전거로 30분 오르막길인데 그걸 안하니 좋다.
나쁜점:
- 인턴십의 장점 중에 하나가 인맥을 넓힐 수 있다는 건데 그게 안된다. 매일 팀사람들과 아침미팅을 했긴 했지만 다들 멀리 살고 앞으로 실제로 만날 일이 있을까 싶다. 게다가 다들 카메라를 끄고 계심>< 그나마 첫 미팅때는 서로 얼굴을 잠깐 보여주며 자기소개를 하긴 했는데 기본적으로 카메라를 끄고 얘기한다ㅠㅠ
룬드 사무실에는 서른 명 넘게 근무한다고 하는데 아마 인턴십이 끝날 때까지 볼 수 없을 것 같다. 그나마 첫날에 멘토 말고 다른 사람을 한 명 본 게 용하네. 이 사람들은 다들 팀도 다르고 하니까 정말로 같이 얘기할 기회가 별로 없다. 그나마 한명이 '인턴도 왔으니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대중교통타는 게 꺼려진다고 무산됨...ㅠㅠㅠㅠ
- 우리팀 외 다른 팀에 대해서 알기 힘들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거면 커피 마시면서 다른 팀 사람과 얘기도 하고, 다른 팀들은 어떤 일을 하는지 물어볼 기회도 있겠지만 재택이라 그럴 수가 없다. 물론 슬랙을 관전하면서 대충 어떻게 돌아가고 있구나 '추측'은 하겠지만...
조금 놀란 점:
- 인턴에게 정말 아무것도 기대하는 게 없다. 원래 그런가? 우리나라 IT기업들 인턴 후기보면 다들 면접 때 코딩테스트를 봤다느니, 기술면접 때 좀 어려운 걸 물어봤다느니 하는 것도 있고, 인턴십 자체도 뭔가 조금 높은 수준의 기본지식을 요구하는 것 같은데 여기는 그런 분위기가 아닌 것 같다. 물론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나름 스웨덴에서 인기가 있는 회사이고 지원한 사람도 많다고 HR이 그랬는데 무슨 기준으로 나를 뽑았는지 아직도 모르겠을만큼, 나에게 별로 기대하는 게 없다. 오히려 다들 내가 아무것도 모를 거라 예상하고 정말 아주 처음부터 하나하나 알려주려고 한다. 뭐.. 사실임. 이 팀이 하는 업무에 대해서는 정말 아는 게 없다. 오죽하면 멘토가 '이 책 읽으면 우리팀이 뭐하는 팀인지 알게될거야' 하면서 책 빌려줌... 근데 내가 이 팀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걸 미리 알았으면서 왜 날 뽑았을까? 아직도 미스테리다. 멘토랑 좀더 친해지면 물어봐야지.
- 나는 탄력근무제라는 게 있다는 것만 들었지, 그런 회사에 다녀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게 정말 존재하는구나... 너무 편하다. 그리고 서로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것도 신기하다. 아침 미팅시간에 '오늘 나는 몇시부터 몇시까지 일할거고 뭘 할거야' 라는 말은 일절 하지 않고, 회사에서도 이 사람이 정말로 1주일 40시간 맞춰서 일했는지 확인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냥... 내 동료들도 나만큼 일하고 있을 거라 서로 믿는다고. 금요일에 한 명이 오후 2시에 '나 이제 딸기랑 아이스크림 먹고 넷플릭스볼거야 안뇽' 하고 로그아웃하는데 그게 나에게는 최고의 충격이었다.
- 인턴이 왔는데 제대로 이야기해볼 기회도 없었다며, 코펜하겐 오피스에 있는 분이 티타임을 갖자고 시간을 예약했다. 근데 그게 업무시간 중이네. 뭐... 시간을 쓰는 게 하도 자유로우니까 상관없지만, 내가 한국에서 회사다닐 때에는 '신입이랑 친해질 기회가 없었는데 커피나 한잔할까'라며 오후 2시에 신입데리고 밖에 나가서 한시간동안 수다떨고 올...수가 없었지. 팀장한테 허락받으면 모를까>< 그런 회사에 다녔다가 이런 회사를 보니까 너무 신기하다.
- 물론 이걸 스웨덴 회사들이 다 이럴 거라고 확대해석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 회사는 (아직까지는) 꽤 괜찮은 곳인 것 같다. 웰컴 키트로 이것저것 선물도 많이 줬고(!) 슬랙이나 워크플레이스 같은 데서 사람들이 되게 말을 자유롭게 많이 한다. 오후가 되면 밈이 마구마구 올라온다....... (이사람들, 일안하고 밈 찾고 있나) 여름이라서 다들 여유로운 걸지도.
여튼 한 주는 순탄하게 잘 흘러갔고 돌아오는 주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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