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쿵스레덴 트레킹(1): 준비 - 마음가짐과 체력
2021 쿵스레덴 트레킹(2): 준비물 리스트
2021 쿵스레덴 트레킹(3): 여행 전 오해, 여행 후 감상
2021 쿵스레덴 트레킹(4):시간흐름에 따른 여행기 + 소소한 여행 팁
여행 다녀오자마자 영상 찍은 거는 바로 편집해서 지인들과 공유했지만 블로그에는 아직 준비과정밖에 쓰지 않았다. 집사람은 매일 아침마다 '블로그 언제 쓸거야?'하고 물어봤는데, (그럴거면 니가 쓰던가...)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묻는 걸까? 트레킹에 대한 글로 인해 내 블로그 방문자 수가 늘길 바라는 마음? 자기가 열심히 찍은 사진이 어디엔가 올라가서 많은 사람들이 봐주길 바라는 마음? 내가 여행에 대해 어떻게 쓸지 궁금한 마음? 여튼, 매일 닦달을 해대니 오늘 드디어 마음잡고 써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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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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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부터 써야하나, 시간순대로 써야하나 아니면 전체적으로 느낀 점을 써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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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대한 나의 오해 1 : 사람이라고는 우리 일행밖에 없지 않을까?
여행을 준비하면서 쿵스레덴에 다녀온 한국 사람들 후기도 많이 봤는데, 대부분 피엘래벤 클래식 기간에 다녀와서인지 사진과 영상에 사람들이 많았다. 게다가 한국은 휴가가 짧아서 그런가, 대부분 4박 5일 일정으로 이 길을 걷는듯했다. (존경...) 내가 갔던 것은 피엘래벤 클래식이 시작되기 일주일 전이었고, 그래서 사람이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이 꽤 많았다! 이미 밤기차가 만석이었는데 뭐...>_< 셋째날부터는 그래도 점점 간격이 떨어진 느낌이었지만, 첫번째와 두번째 날에는 길에서 사람을 정말 많이 만났다. 우리나라 설악산 등산할때처럼 앞뒤로 사람들이 거의 줄서서 가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앞뒤 시야에 사람이 없다가도 갑자기 어디선가 바람처럼 누군가 나타나 비켜줘야할 때가 '예상했던 것보다' 자주 있었다. 그리고 '꼭 정해진 길로 안 가도 되잖아'라고 생각했지만, 길이 난 곳을 따라 걷지 않으면 늪에 빠진다거나 엄청난 돌무더기를 만난다거나 하게 되므로 결국 길이 난 곳을 따라걷게 되었고, 그 길이 좁다보니 내 뒤에 사람들이 기다리는 경우도 있었다>_< 원래 천천히 걷는 나로서는 이게 굉장히 스트레스였다. Kebnekaise fjällstation 산장은 쿵스레덴 트레킹뿐만 아니라, 짧은 일정으로 케브네카이세 등산만 하려는 사람들도 많이 와서 그런가 사람이 저어엉말 많았다. 거기서 문 열자마자 사람이 바글바글해서, 거기서 맥주 한잔 여유롭게 마시려던 생각이 바로 사라졌다. 어깨를 부딪힐 정도로 붐비는 데 간 것이 정말 오랜만인데 그게 아이러니하게도 이 산속이라니...
사람이 아주 없을 거라 생각하고, '뭐... 볼일은 걍 대충 아무데나 적당한 데 땅 파서 보면 되겠네' 했는데... 물론 그러면 되는 거긴 한데, 의외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들의 눈을 피할 덤불이나 커다란 바위 등을 찾아야했다. 그런데 여기는 툰드라... 몸을 숨길 큰 나무 따위 없고, 덤불도 다 키가 작고 >_< '저기다!'싶은 데를 가면 (다들 같은 생각이었는지) 어김없이 돌 사이에 끼어있는 화장지들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땅을 쉽게 파려고 가벼운 삽을 들고 갔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땅을 파는 게 어려우니 (이끼와 작은 식물들 때문에 발로 쓱쓱 땅파는 게 쉽지 않았다) 대충 볼일보고 화장지 위에 돌멩이 올려놓는 걸로 뒤처리를 한 것 같았다. 그렇게 먼저 앞서 걸은 이들의 흔적(!)을 곳곳에 볼 수 있었다.
여기 가면 사방이 물이라서, 물 구하는 건 쉬울 거라고 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였다. 물 흐르는 곳이 많기는 한데 마실만한 물을 찾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필터를 들고 갔으면 좀 나았을텐데 우린 필터를 안들고 갔다. 그래서 물이 콸콸콸 흐르고 유속이 센 곳을 골라 물을 떠 마셨다. 저녁에 텐트를 칠 때, 다른 사람들도 다 비슷한 생각으로 그런 물가 근처에 텐트를 치는 것 같았고, 엄청 가깝지는 않아도 어쨌든 시냇물 근처에 옹기종기 텐트를 치게 되었다. 그래서 '물이 내쪽에서 저쪽으로 흐르는 상황'이면 내가 보낸 물을 저사람들이 마셔야되는 거니 설거지를 하기가 좀 그랬고, 반대의 상황이면 내가 물을 마시면서 '음... 저사람들이 설마 이 물에다가 소변을 보진 않았을거야' 따위의 생각을 하게 됐다.
여튼... 그래서 내 예상과는 달리, 다른 사람들을 많이 '신경써야했던' 여행이었다. 그래 뭐... 나같은 약골도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면 오지는 아니지.
여행에 대한 나의 오해 2 : 평지니까 걷기도 쉬울 거야
왜 밑도끝도 없이 여기가 평지일 거라고 생각했을까? 아마 사진에서 봤던 광경이 마치 초원 같았고, 푹신푹신한 풀을 밟으며 가거나 하는 상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주변 산들은 다 높지만, 그 산들 사이사이를 지나는 거니까 오르막내리막도 없이 평지를 갈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첫날에는 '아 역시 쉬운 길이군' 했지만 아비스코야우레부터 오르막내리막의 연속이었다. 높은 산들 사이를 지나려면 산을 오르는 건 아니더라도 그 사이에 있는 고개들은 넘어가야한다. 특히 Tjäktjapasset이라는, Tjäktja와 Sälka 사이에 있는 고개가 제일 힘들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만만해보였는데 막상 가니 꽤 경사가 있었다. 고소공포증이 있던 나에게는 참으로 후들후들했지만, 그 비슷한 곳을 몇 번 걸으니 이제 고소공포증이 없어진 것 같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봤을 때에는 돌이 박혀있긴 하지만 그렇게 돌이 많아보이지는 않았고, spång이라고 하는, 널판지길이 많아서 걷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spång이 멀쩡한 형태로 남아있을 거란 기대는 안했지만 가끔 '아니 이럴 거면 여기다가 널판지를 놓지를 마 아예!'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길은, 내가 생각했던 그런 '저 푸른 초원'이 아니라 돌밭이었다. 아 그렇지, 여기는 빙하지형.... 왜 빙퇴석 생각을 못했을까? 저기 남쪽 스몰란드만 해도 빙퇴석이 그렇게 많이 쌓여있는데, 빙하와 더 가까운 이 북쪽은 말할 것도 없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미 두번째날부터 이미 오른쪽 허벅지가 당기고 세번째날에는 왼쪽 무릎이 아팠으며 오른쪽 발등이 아팠다. 진통제를 먹어가며 열심히 걸었는데, 네번째날이 되니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되어, 왼쪽 무릎이 아프면 '이따가 오른쪽 발목이 아프면 왼쪽 무릎 아픈 게 좀 묻히겠지, 그때까지 기다리자'...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정말 오른쪽 발이 아프면 '와 이제 왼쪽 무릎 안아프네, 그럼 이제 또 왼쪽 무릎이 아플 때까지 기다리자 그럼 오른쪽 발이 덜아프겠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길을 걷고 방랑하며 수행을 했던 것인가! 의외의 깨달음을 얻고 돌아왔다. '어딘가 아프면 다른 데가 아플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여행에 대한 나의 오해 3 : 안 걸을 땐 엄청 심심하겠지? 책도 읽고 글도 쓰겠어.

내가 생각했던 거는, 저녁 여섯시쯤에는 텐트를 치고 밥을 먹고, 여덟시쯤에는 텐트에 들어가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다가 열시쯤 잠이 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루에 한두시간쯤은 텐트에 가만히 누워서 책을 읽든 글을 쓰든 휴대폰 게임을 하든, 그런 여유를 가지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책은 휴대폰에 전자책으로 여러 권 받아두었고, 메모지와 펜을 챙겨서 갔다.
스톡홀름에서 아비스코로 가는 열여덟시간동안은 정말... 노래도 많이 듣고 책도 좀 읽고, 메모지에 뭔가 벌써부터 메모도 했다. 하지만 그 후로 일주일동안 한번도 메모를 하지도, 노래를 듣지도, 책을 읽지도 않았다 >_<... 텐트치고 밥먹고 누우면 너무 피곤해서 그냥 바로 잠이 드는데, (바로 잠이 들지 않더라도 어쨌든 삭신이 쑤시고 피곤한데) 뭘 할 여유가 없었다ㅎㅎㅎ 길을 걸으면서 노래를 들을까도 생각했는데, 돌이 엄청 많고 집중해야할 때가 많으니 음악을 듣는 게 쉽지 않았다. 결국 목적지인 니칼루옥타에 도착해 거기서 버스를 탄 후에야 일주일만에 음악을 듣고 메모장에 뭔가 끄적일 여유가 있었다.
여행에 대한 나의 오해 4 : 가면 자연의 위대함을 엄청 느끼겠지?
자연의 위대함이라. 나는 이번 여행에서야말로 '문명과 기술의 위대함'을 느끼고 왔다.
물론 일주일동안 매일매일 바라보았던 풍경은 참으로 웅장했고 경이로웠다. 하지만 이미 두번째날, 멀리서 사미족의 마을을 바라보며 '이렇게 뭘 기를 수조차 없는 땅에서 어떻게 대대손손 살아왔을까' 생각했고, 매일 캠핑용 동결건조식품을 먹으며 '물만 부으면 이렇게 파스타가 되고 인도커리가 되고, 건더기도 참 훌륭해! 이게 아니었으면 나는 이 일주일동안 어떻게 끼니를 해결했을까', 펼치면 크고 아늑하지만 무게는 1.9킬로밖에 나가지 않는 우리의 텐트와 티타늄 소재의 각종 캠핑용품 들의 무게를 생각하며 '이런 경량 캠핑용품이 개발되지 않았다면 나는 이번 여행에서 몇킬로를 등에 지고 걸어야했을까' 등을 생각했다.
자연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있겠냐만은, 나는 평소에 사물보다도 사람에 더 관심이 있어서 그런지... 여행을 가면 '여기 사람들은 뭘 먹고 사나, 내가 사는 동네랑 뭐가 다른가'가 관심사인데, 이번에 간 곳은 사람이 없는 곳ㅋㅋㅋㅋ 사미족 마을을 갈 수 있었다면 얘기가 좀 달랐겠지만 어쨌든 자연만 있는 곳이었고, 그래서 솔직히 이번 여행에서 제일 재밌었던 포인트는 '이틀 연속 길에서 엄청 싸우는 이탈리안 커플을 본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구경하는 걸 제일 재밌어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이번 여행에서 새삼 깨닫고 돌아왔다.
여행에 대한 나의 오해 5 : 아마 다녀오면 이런 트레킹 다시는 안하고 싶을거야
솔직히 그런 생각을 여행다녀오고 나서 그 다음날까지도 했다. 한번 했으니 됐다, 두 번은 싫다 뭐 그런 생각. 그런데 사람은 역시 망각의 동물이라, 시간이 지나니 힘들었던 건 또 잊혀지고 좋은 것만 기억이 난다. 특히 지금 블로그 쓰면서 사진을 다시 쭉 보니 '다음에 하면 더 잘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든다. 기왕 비싼 것들 샀으니 또 써먹어야하지 않을까? 운동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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