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빠르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데 정말 요즘 그게 실감이 난다. 다다음주면 벌써 2023년이라니, 정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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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입학을 했을 때 내가 대강 몇년도에 졸업을 하게 될지 계산해보고는 눈앞이 캄캄했다. 2023년 여름 졸업이라니. 그때로서는 아직 2020년도 멀게 느껴졌을 때라 2023년이 되어야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게 된다는 게 정말 먼 미래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한학기가 지나고 학사시스템에 들어갔는데 '총 300학점 중 30학점 이수했음'이라고 써있어서 더욱 절망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힘들었는데 고작 10퍼센트를 마쳤다니. 언제 300학점 다 채우나 정말 막막했다. 이제 나는 300학점 중 262.5학점을 채웠고, 다음 달이면 7.5학점이 들어와서 270학점이 될 예정이다. 이제 이 학교에서 강의실에 앉아 수업을 들을 일은 없다고 생각하니 시원섭섭하다. 1월부터 30학점짜리 논문을 쓸 것인데...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이 간단하지 않았어서 그 기록을 좀 해보려고 한다.
학부마다 학교마다 다 다르겠지만 LTH는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하면서 논문을 쓰는 것을 권장한다. 학교에서도 쓸 수 있지만 그것도 자기 마음대로 주제 잡아서 쓰는 게 아니고 박사과정생이나 교수가 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일하면서 쓰는 것 같다. 그래서 학교 홈페이지에도 각 연구실에서 '석사 논문쓸 사람 구함' 공고가 올라오고, 링크드인이나 각종 취업공고에도 회사들이 석사논문쓸 사람을 구한다는 공고가 올라온다. 봄학기면 1월부터 쓰는 건데, 이미 9월부터 공고가 올라오고 학교에서도 그때부터 열심히 학생들한테 '얼른 논문쓸 회사들을 알아보렴'하고 쪼았다.
회사가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경우도 있지만, '너희가 우리에게 제안서를 보내면 검토해보겠음' 하는 회사도 많았다. 전자의 경우는 그냥 이력서와 커버레터 작성해서 보내면 되지만 후자의 경우는 그 회사에 대해 열심히 정보를 찾아봐야 제안서 비슷한 걸 끄적거려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9월 말과 10월 초는 아침에 일어나면 공고 확인+회사에 대한 정보 수집+예전에 그 회사에서 논문을 쓴 졸업생을 서치하고 그 논문을 대강 훑어봄+그럼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봄+끄적임...의 작업을 하며 보냈다. 논문은 혼자 써도 되지만 보통 둘씩 쓰는 것을 권장하고 그렇게 모집하는 회사가 많다.
친구와 상의 끝에 꽤 진지하게 지원한 곳은 네 군데였다. A,B,C,D사에 지원을 했는데 A사는 NLP 관련 프로젝트에 주력하는 스타트업이고 B는 항공 관련 중소기업, C는 대규모 IT컨설팅회사, D는 IT와 상관없는 대기업이었다. 그 중 뚜렷하게 석사논문 주제를 내놓은 회사는 A,C,D였고, B는 내가 제안서를 제출해야했다. 첫번째 면접은 네 군데 모두 비슷했다. 기술과 관련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ㅎㅎㅎ걍 자기 소개 하고, 회사 소개 하고, 화기애애하게 '논문 뭐 어떤 거 쓰고싶어? 졸업 후에 무슨 일 하고 싶어?' 이런 거 물어보고 끝났고 A는 두번째 면접 때 조금 더 논문에 대한 이야기를 한 후 바로 오퍼를 해왔다. B는 내 개인적으로는 정말 너무 관심있는 회사였고, 그쪽에서도 내가 쓴 제안서를 좋아하며 오퍼를 줬지만 친구가 시큰둥한 반응이라 빠이... C는 면접이 좋은 분위기이긴 했는데 2차로 인적성검사를 했고 3차로 코딩테스트를 한다길래 귀찮아서 빠이... D는 면접 보고 나서 한달동안 아무 소식이 없다가 갑자기 '늦은 건 알지만... 너네 아직도 우리한테 관심있니? 논문쓰러 올래?'...이미 A와 이야기가 끝난 상황이었어서 빠이..
그렇게 A를 선택한 게 11월 초인데, 내가 한국에 있었어서 바로 계약서는 못썼고 그저께가 되어서야 회사에 가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좀 하고 계약서를 썼다. 아주 작은 회사라서 돈을 안주는게 조금 아쉽다... 보통 큰 회사들은 논문 프로젝트하게 해주면서 돈까지 주는데ㅠㅠ 그래도 주제가 너무 흥미로워서 이 곳을 선택한 거라 후회는 없고 오히려 기대가 된다. 하지만 머신러닝에 대한 나의 기본지식이 너무 바닥이라 그게 걱정이다. 시작하기까지 한달이 남았으니 공부 좀 해야할까...
계약서를 받아와서 교수님들께 메일을 드렸다. 지도교수님과 심사교수님을 내가 알아서 컨택해야한다는 게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다행히 연락드린 교수님들 두분 다 흔쾌히 받아주시고 신청서도 잘 처리해주셨다. 그리고 아주 방금, '신청서 처리 되었고 이제 프로젝트 시작해도 됨'이라는 메일을 받았다. 이제 정말 졸업이 다가옴이 실감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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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과는 별도로 이제 취업 고민도 하면서 이것저것 알아보기 시작했다. 특히 컨설팅 회사들이 링크드인으로 메시지를 보내는데 별로 관심이 없어서 다 거절하다가 코펜하겐에 있는 어떤 회사는 좀 궁금해서 면접을 보기로 했다. 온라인 면접인줄 알고 덥썩 물었던 건데 코펜하겐으로 직접 오라니... 그래도 인터넷에서 정기권 싸게 빌려주는 애들이 있으니까 그거 빌려서 싸게 갈 생각으로 초대에 응했다.
그리고 사기당했다ㅎㅎㅎㅎ 제값주고 사면 왕복 300크로나인데 인터넷에서 90크로나에 정기권을 빌리기로 하고 스위시를 했었다. 근데 이놈이 티켓 안내놓고 튀었네? 이 커뮤니티에서 거래하면서 사기당한 적은 처음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90크로나를 날리고 추가로 예정에 없던 300크로나를 쓰게 되면서 굉장히 열이 받아 전화를 걸었지만 이미 놈은 전화도 막아놓고 페이스북 메신저도 막아놓고 날랐다. 그나마 다행인 건 현금거래가 아니라 스위시로 거래했어서 그의 실명을 알 수 있었고, 그걸로 경찰에 신고는 했다만... 경찰이 과연 어디까지 수사를 해줄것인지는 모르겠다. 90크로나를 받아내려 신고를 했다기보다는 아무리 봐도 그 스위시 주인이 사기를 친 것 같지는 않아서... 사기꾼이라고 하기엔 그 스위시 주인은 멀쩡하게 링크드인 페이지도 있고 인스타그램도 너무 멀쩡한 말뫼대학교 학생인데, 해킹을 당했던 것일까? 진실이 궁금하다.
여튼 아침부터 기분은 굉장히 나빴지만 우여곡절 끝에 코펜하겐에 가서 면접을 봤다. 리크루터와의 대화는 즐거웠지만 돌아오는 길에 기차가 또! 말뫼에서 멈춰서는 바람에, 과연 룬드에서 코펜하겐까지 통근이 가능할까라는 회의감과 함께 '코펜하겐은 고려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어제 지인들을 만났는데 그중 하나가 '그 회사 일은 빡센데 초봉이 6만크로나래... 직접 들은 얘기임. 거기말고도 코펜하겐 회사들은 다 초봉 엄청 세잖아'이라고 해서 솔깃...... 내가 룬드말뫼 어디 가서 초봉을 감히 6만을 받겠..? 걍 편도 1시간반 통근길을 감내하고 코펜하겐 회사들을 찔러볼 것인가...
하지만 그것보다 더 고민인 것은, 나는 아직도 내가 어떤 커리어를 쌓아가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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