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머잡을 시작한지도 어느새 3주가 지났다. 내 블로그를 방문하시는 분들의 대다수가 스웨덴 취업과 직장생활 등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니 지난 3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조금 자세하게 써볼까 한다.
작년 여름에 일했던 회사에서 올해 여름도 10주동안 일하게 되었다. 이 회사는, 혈액 검사용 슬라이드를 기계 안에 넣으면 적혈구, 백혈구 등 판별해주는 그런 시스템을 만드는 회사다. 기계가 1차적으로 분류한 걸 사람이 다시 보고 재분류하는 등 자료를 관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도 중요한데, 작년에는 그 중에서도 데이터베이스 백업하고 복구하는 기능을 따로 웹어플리케이션으로 만드는 걸 했었다. 그때 그들의 계획은 점차 웹앱으로 바꾸려는 거였는데, 올해 와보니 그 말은 없어지고 윈도우 데스크탑 앱을 새롭게 만드는 프로젝트가 생겨있었다. 작년 프로젝트는 섬머워커들끼리 오손도손 하는 프로젝트였지만 올해는 당장 8월말 1차 릴리즈가 목적인 프로젝트에 투입이 되어 시니어들이랑 일하고 있다. 하지만 시니어님들은 다른 프로젝트도 하고 있어서 온전히 이것만 붙잡고 있는 건 컨설턴트 한 명이랑 섬머잡 하는 4학년 학생이랑 나 이렇게 셋이다.
그런데 그 컨설턴트는 지난 3주동안 딱 하루 얼굴을 봤고, 계속 재택을 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뭘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작업속도가 굉장히 느린 것 같은데 다른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걸까? 그가 이 회사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는건지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하도 존재감이 없어서 팀 미팅에서도 사람들이 자꾸 '그 친구는 휴가야? 안보이네'하고 묻는다... 그걸 저희한테 물으시면...? >_< 4학년 친구는 프로그래밍 기초수업을 한두개 듣고 온 의생명공학과 학생이라 매일 수시로 질문을 나에게 퍼붓고 있다... 특히 깃 커밋하고 푸쉬하는 법은 정말 매일매일 알려주고 있었는데 3주가 지나자 이제 드디어 내 도움없이 rebase를 하고 뿌듯해하는 것 같았다. 이 정도예요 여러분. 한국 여름인턴들은 코딩테스트와 테크니컬인터뷰 등의 엄청난 절차를 거쳐 뽑는다 들었는데, 스웨덴에서는 깃이 뭔지 몰라도 섬머잡 뽑힙니다... (물론 회사에 따라 다를 수 있음) 다른 팀 섬머워커들이랑도 친해져서 어떻게 이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는지를 물었는데, '아는 사람이 일해서' '학교에서 특강 듣고나서 메일로 섬머잡 할 수 있는지 물어봤는데, 바로 인터뷰 잡고 뽑아줬어' 이런 대답을 들을 수 있었... 하긴 나도 작년에는 직접 공고 보고 원서 넣었지만 올해는 바로 부서장한테 컨택해서 일하게 됐지. 여튼 이런 사회입니다. 스웨덴에서 섬머잡하고 싶으면 인맥과 적극성이 필수...
여튼 다시 이 친구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그 친구가 정말 엄청 사소한거까지 물어보긴 하지만 나도 사실 그게 그리 귀찮지는 않은 게, 그 친구 코드를 같이 봐주고 질문에 대답해주면서 내가 뭘 알고 모르는지 복습도 되고 아는 걸 남한테 다시 설명하는 연습도 되니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히려 프로그래밍을 잘 못하는 애랑 일을 하게 되어서 내 부담감이 확 낮아진 느낌...? 설렁설렁 일하고 있는데도 지난 3주동안 내가 일 제일 많이 했다... 좀더 열심히 일해서 '일 잘하는 사람' 이미지를 굳힌 후 정규직 전환을 시도해보고 싶은데, 작년에도 느꼈지만 이 부서는 정규직 주니어보다는 파트타임 학생알바를 더 선호하는 것 같아서 크게 기대는 안하고 있다.
일의 난이도가 너무 쉽지도 어렵지도 않고 적당한 데다가, 새로운 게 나오면 충분히 인터넷으로 튜토리얼을 보고 배울 시간을 주니 스트레스도 적고 재미있고 여유롭다. 가장 힘든 건... HR이 보내는 엄청난 양의 인트로덕션 비디오... 대충 회사소개랑 기계, 소프트웨어 설명이겠지 했는데 적혈구,백혈구,혈소판의 종류와 특징에 대한 비디오 분량이 정말 엄청났다. 백혈구 종류가 그렇게 많은 줄은 몰랐지? 사실 난 생물을 배운 적이 없어서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이 각각 다 한종류씩만 있는 줄 알았다. 하긴, 그런 거였다면 이런 분류기가 필요가 없었겠구나... 혈액구성요소의 종류가 지나자 그 다음엔 암세포와 기생충에 대한 내용이 나왔고... 한국어로 들었어도 힘들었을텐데 다 영어였어서 더 어렵고 졸렸다. 비디오만 보면 끝나는 게 아니라 퀴즈를 통과해야 되는 거라 대충 듣지도 못함... 심지어 화재대처교육도 30분이 넘었고 퀴즈가 꽤 어려웠다. 그리고... 3주가 지난 지금, 그들이 보낸 교육자료 중 절반밖에 못끝냄... 여름 끝나기 전엔 다 들을 수 있을까?
8시쯤 집에서 나가서 자전거타고 가면 회사에는 8시반쯤 도착을 한다. 오전에 일하다가 12시에 약 30분동안 점심을 먹고, 또 일하다가 적절히 다섯시쯤에 자리에서 일어난다. 하루 8시간 근무를 지키려고 하는데 가끔은 30분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아무도 뭐라 안함... 내가 언제 와서 언제 가는지 아무도 신경안씀... 많은 분들이 스웨덴 회사들은 다 피카를 엄청 오래 하고 매일매일 티타임이 다같이 있냐고 물어보시지만 딱히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커피 내리러 부엌에 갔다가 누가 거기 이미 있으면 그냥 잡담이나 잠깐 하는 수준이다. 점심시간이 30분으로 의외로 짧긴 한데 사실 이것도 뭐... 내가 30분을 먹든 50분을 먹든 아무도 신경안씀... 팀장이 지난 주에 미팅 시간을 바꾸길래 왜 그런가 했더니 애들 종업식이 있어서 오전에 1-2시간 학교다녀와야했던 거였고 (참고로 팀장은 남자다) 나도 앞으로 조산사 예약이 오전 10시나 오후 2시 등 애매한 시간에 잡혀있는데, 눈치보지 않고 잠깐 다녀올 수 있을만한 근무환경이다. 한국에서 연차도 내 맘대로 못쓰고 연속 3일이상 휴가를 못쓰는 회사에 다녔던지라, 화장실 오래 다녀오면 자리를 왜 이렇게 오래비우냐, 화장실은 왜 그리 자주 가냐고 했던 회사에 다녔던지라, 6시반 퇴근인데 7시에 퇴근하면 '왤케 빨리 가냐'는 말을 들었던 회사를 다녔던지라 이런 것들이 처음에는 정말 적응이 안되었다. 사실 아직도, 내가 팀장보다 먼저 집에 가는 상황이 되면 나도 모르게 괜히 눈치를 보지만 그들은 정말 1도 신경안쓴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누군가는 공부할 떄가 더 좋았다지만 나는 일하는 게 더 좋다. 학교에 다니면 저녁에도, 주말에도, 과제 생각을 계속 하면서 보내야하는 게 싫었다. 하지만 회사에서 나온 순간 일 생각은 끝! 과제처럼 집에 와서도 붙잡고 있지 않아도 되는 게 정말 좋다. 그래서 스웨덴에 온 이후로 요즘이 가장 기분이 좋은 것 같고, 남편이 보기에도 그렇다고 한다. 정규직 취업이라는 큰 산이 아직 남아있고 문득문득 걱정이 좀 되긴 하지만... 일단 3일간의 하지 연휴도 일 생각은 하지 말고 푹 쉬며 잘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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