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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2023

섬머잡 끝, 코로나(?), 스웨덴에서 첫 물리치료

by Bani B 2023. 8. 20.

무지개

섬머잡이 끝난 지도 1주일이 지났다. 예전 포스팅에도 잠깐 썼지만, 이번 섬머잡은 8월말 배포 예정인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이것저것 하게 되었는데 난이도가 그렇게 높은 건 아니었어서 인력도 적었고... 시니어개발자인 A와 B가 주축이었고, 컨설턴트 C와 나, 그리고 다른 섬머워커 D가 보조하는 식으로 계획을 짠 듯 했다.
   그런데 A는 다른 프로젝트 때문에 정말 바빠서 거의 이 프로젝트를 들여다보지 못하다가 여름휴가를 떠났고, B는 휴가를 가을에 쓸거라 여름 내내 우리와 함께 있었다. 4학년 학생인 D는 타전공인데다가 프로그래밍 기초과목 몇개 듣고 온 게 전부라서 질문이 아아아아주 많았고 속도가 느렸지만 그래도 열심히 했다. C는 나보다 반년 전에 졸업을 해서 취업을 했고 그 역시 이게 졸업 후 첫 프로젝트라고 했다. 대충 수준이 비슷한 것 같으니 아마 C랑 가장 많이 이야기하고 서로 도와가며 일하게 될거라고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C의 업무속도는 좀 많이 느렸다... 여튼 나는 이걸 기회로 생각하고, 일을 엄청나게 열심히 해서 '일잘하는 사람' 이미지를 굳히기로 했다. 근데 사실 C는 일을 너무 안하고 D는 간단한 거 하나 가지고 한달 붙잡고 있었을 정도의 초보였으므로,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그냥 다 내 이름으로 도배가 되었다. 이 프로그램 프론트는 제가 다 했어요 진짜... 물론 내가 아무 도움없이 쓱싹쓱싹 잘한건 절대 아니었다. WPF는 완전 처음이어서 첫주는 튜토리얼 보면서 보냈고, A와 B에게 질문도 많이 했다. 그리고 이미 회사에서 만든 다른 프로그램들이 있어서 그 코드를 분석하고 응용해보면서 정말 많이 배웠다. 
   그렇게 일은 열심히 했지만 이 회사에 정규직으로 채용될 거란 기대는 거의 하지 않았다. 왜냐면 이미 팀장이 신규채용 계획이 없다고 여러번 얘기했고, 인원이 필요하면 컨설턴트 쓸거라고 했으니까. 그냥 열심히 해서 레퍼런스나 잘 받고 싶다는 생각이었고, 혹시라도 그들이 나중에 다른 회사 지인들에게 나를 소개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끝나는 날, B가 잠깐 얘기 좀 하자고 불러서는 "갓 졸업한 애가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하는 게 인상깊었고, 나는 네가 출산후에 돌아와서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팀장이 지금 휴가중이니 다음 주에 내가 팀장이랑 이야기해보겠다"라고 하는데 그동안의 노력을 모두 보상받은 기분이었다!ㅠㅠ 다 보고 계셨군요ㅠㅠㅠㅠ B가 내게 그렇게 말은 했지만 정말 팀장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반신반의했는데, 나중에 팀장이 메일로 'B가 너의 채용을 건의했는데 너도 알다시피 채용계획이 없었어서 예산 문제 때문에 윗선이랑 얘기해봐야한다, 좋은 소식이 생기면 바로 너한테 연락하겠다'고 했다.ㅠㅠ 기대는 60퍼센트 정도만 하기로 했지만, B에게서 저 말을 들었던 날은 계속 구름위에 떠있는 것 같았다. 디자이너들을 포함해 다른 팀 사람들도 따로 들러서 "오늘 마지막 날이지? 다음에는 정규직으로 돌아와서 또 같이 일하자!"하고 격려인사를 해주는데... 빈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는 게 힘이 나고 약간 울컥했다. 꼭 이 회사에서 일 못하게 되더라도, 어딜 가든 열심히 하면 사람들이 알아주고 인정해준다는 걸 잊지 말아야지. 이 여름에 열심히 일했던 것처럼, 나중에 첫 정규직 직장에 가서도 그렇게 열심히 배우고 하다보면 좋은 동료들이 생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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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놈의 예산조정이라던가 하는 게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고 정말로 내 자리를 만들어줄지 어떨지는 전혀 모르는 일이므로, 일자리찾기는 계속 되고 있다. 7월에 약 20군데 이력서를 넣었는데 열군데에서 거절 답장이 왔다. 뭐... 물론 경력자 뽑는 자리에 막무가내로 지원한 것도 있었고, 덴마크 회사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면접조차 보지 못하니 너무 답답했다. 친구에게 답답함을 토로하면서 자소서 얘기를 하는데, 친구가 '네 자소서에서 한 문장을 빼야할 것 같은데' 하고 말해줘서 그 부분을 빼고 세 군데 이력서를 더 넣었는데 그 다음 날 바로 두 군데에서 면접보자고 연락이 왔다. ??? 정말 이거였나???
   그 문구가 뭐였냐면, "저는 2023년 하반기를 육아휴직으로 보낸 후 2024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귀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같은 문구였다. 내가 굳이 육아휴직을 언급한 이유는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일을 시작하고 싶은지 알림과 동시에, 이게 회사들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리크루터라면, '이미 아이를 낳아서 서너달 시간을 보냈다고? 그럼 당분간 육아휴직 안쓰겠군? 그리고 회사도 금방 그만두지 않겠지?'라고 생각하고 날 뽑을 것 같았다. 근데 내가 틀렸나보다...:)) 자소서에 그냥 웬만하면 임신출산 이런건 언급을 안하는 게 좋은건가보다. 
   여튼 그렇게 인터뷰가 잡혔는데 그게 잘 되면 아마 9월쯤 코딩테스트 같은 걸 보게 될 거 같다. 출산 전에 할 수 있을까? 그냥 지금 잠시 구직활동을 멈추고 출산 후에 다시 해야하나?
 

   여튼 섬머잡이 끝나던 날 밤에 스톡홀름으로 올라가 그 다음날 친구 결혼식에 참석했다. 요즘 날씨가 계속 비오고 추웠지만 결혼식날은 날씨가 좋아서 다행이었다. 결혼식 다음날에는 날씨가 더 더웠고 그렇게 스톡홀름에서 하루를 더 머물고 내려왔다. 이번에 스톡홀름에서 느낀 점은... 택시가 참 싸구나??? 룬드에서는 택시를 별로 탈 일이 없어서 우버도 안 깔았고 어어어어쩌다 택시탈 일 있으면 그냥 택시회사 전화해서 콜택시를 불렀고 그래서 자전거로 30분 걸리는 거리를 타도 300크로나 정도 나오곤 했다. 그래서 스톡홀름에서 택시는 더 비싸겠지 했는데... 스톡홀름 사는 친구들이 다들 우버나 볼트를 쓰네? 으아니 근데 이거 되게 싸네? 중앙역에서 브롬마까지 200크로나도 안나온다고? 짐이 많은 만삭임산부가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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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톡홀름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바로 내려갈까 하다가 중간에 내려서 스몰란드에 있는 시부모님이 계시는 별장에 왔다. 첫째날에는 그냥 목이 좀 간질간질한 정도였는데, 두번째날 몸살나고 기침하고 난리가 났다. 너무 피곤해서 하루종일 잠만 잔 것 같다. 먹고 자고 먹고 자고... 그 다음날은 조금 나았지만 그래도 먹고 자고 먹고 자고만 하면서 보냈다. 기침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화장실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그렇게 목요일이 되어 나는 기운을 차렸는데 이번엔 어머님이 열이 난다고 몸져누으셨고 스톡홀름에서 친구에게 받아온 깻잎도 있겠다, 삼겹살이나 구워먹으려고 부지런히 저녁 준비를 했다. 아니 그런데... 고기 냄새가 전혀 나지 않잖아? 이 고기는 특별한가? 환풍기가 좋은건가? 양파절임은 왜 이렇게 짠맛만 나지? 설탕많이 넣었는데... 블랙베리 파이도 만들었는데 왜 블랙베리가 이렇게 맛이 없지? 아니 깻잎은 정말 아무맛이 안나는걸? ...아무래도 나는 코로나에 걸렸던 것 같다. 토요일인 지금까지도 뭘 먹어도 아무 맛이 안나고 아무 냄새도 느껴지질 않는다...
   임신 막달까지 참 다사다난하다.
 

올해 블랙베리가 풍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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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신 막달 되면 태동이 줄어든다고 누가 그랬나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태동의 양상이 좀 달라졌을 뿐... 쿵쿵 치던 아가는 이제 꾸우우욱 기지개를 켜듯이 온 사방으로 팔다리를 밀어내는 것 같고, 머리로 방광을 눌러서 가끔 찌릿찌릿 아프다. 가끔 생리통처럼 배랑 허리가 싸르르 아프기도 하는데 조금 심한 생리통 느낌이라 찾아보니 가진통이라고 한다. 
   임신 33주차에 골반통이라고 해야하나, 골반이랑 허리 통증이 정말정말 심했다. 앉아있다가 일어날 때 억 소리가 나고, 잠깐 화장실 가는 것도 너무 힘들 정도로 걷기가 힘들었다. 조산사에게 물어보니 이런 걸 foglossning이라고 하는데 너무 아프면 물리치료사를 찾아가보라 해서 예약을 했다. 예약... 정말 힘들었다... 여름에는 뭐가 되는 게 없다. 정말 기적적으로 임신 34주차에 물리치료사를 예약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물리치료사가 혼자 개업하는 경우가 없는 것 같은데 여기는 물리치료사들만 있는 물리치료센터 같은 것도 있고 여튼 따로 예약할 수가 있다. 물론 한국 같은 물리치료기계는 기대하지 마세여... 들어갔는데 침대만 덩그러니 있어서 약간 당황했다. 물리치료사님은 50대 정도로 보였는데,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사랑의 불시착'을 정말 재밌게 봤다고 하셨고... 약 1시간동안 진료하면서 사랑의 불시착 얘기를 제일 많이 한 것 같다. 내가 증상을 설명하자 이곳저곳 눌러보시고 진찰하시더니 효과가 있을만한 운동법을 몇 가지 알려주시고 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제대로 된 자세로 하는지 안하는지 보고 교정하기를 반복. 혹시라도 잊어버릴까봐 운동법을 프린트해주시고... 이제 갈까 했는데 갑자기
   "침맞고 갈래?"
   물리치료사가 침을 놓는구나 이 나라는... 그래 뭐 분만할 때 조산사도 침을 놓는다던데. 너무 궁금해서 맞겠다고 하고 잠시 기다렸다. 침은 별 거 없었다... 허리에 침을 한 네다섯개 꽂고 10분동안 가만히 있다가, 다시 물리치료사님이 와서 침을 살짝 비틀어 돌리며 자극을 주고는 또 10분동안 가만히 있었다. 내가 한국에서 고등학교 때부터 쭉 다녔던 한의원은 침을 아프게 놓기로 유명한 곳이었고, 그래서 웬만한 한의원에서 '톡' 하고 침놓는 것도 성에 안차서 항상 침을 아프고 깊게 놓는 곳에 다녔는데 이 물리치료사님의 침이 성에 찰리가...... 그냥 200크로나 주고 좋은 경험을 했다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알려주신 운동을 틈틈이 열심히 했는데 꽤 도움이 많이 된것 같다. 이제 골반통은 괜찮은데 등쪽 갈비뼈 주변 근육이 너무 아프다. 기침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침대에서 일어날 때 그 근육을 많이 써서 그런 것 같다. 이래서 미리미리 등 운동을 하라고 하는건가ㅠㅠ 임신초기로 돌아간다면 나는 정말로 코어운동, 등운동을 열심히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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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산 교육 같은거는... 어떤 곳은 조산사가 비슷한 예정일에 낳는 사람들끼리 모아서 '부모 그룹'을 만들어 교육도 하고, 모유수유나 출산진통 시 호흡법 이런 걸 교육해준다던데 여름에는 그런 게 하나도 없었다. 다니던 헬스장에서도 보통은 임산부 요가, 임산부 그룹운동 같은 게 있는데 여름에는 그런 게 1도 없었다. 임신 중후기를 여름에 보내면 이게 안 좋습니다... 만약 둘째를 계획해서 낳게 된다면 꼭 여름을 피하고 싶다. 그래도 9월 초에 룬드 대학병원에서 하는 교육이 있길래 남편이랑 신청해놨는데 아가가 그전에 나오진 않겠지 설마... 불안해서 맘똑티비 호흡법을 몇번 보기도 했는데 연습도 좀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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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산예정일이 한달도 채 남지 않았고, 이사도 약 열흘 정도 남았다. 내일 집에 돌아가면 앞으로 일주일동안은 열심히 짐을 싸야지. 정말로 짐을 싸야한다 이제... 그리고 출산가방도 꼭꼭꼭 싸야지. 정말 다행히도, 4월말에 한국에서 보낸 선편소포가 이제 스웨덴에 도착한 모양이다. 아가가 태어나면 엄마가 보낸 배냇저고리를 입히고 싶었는데 딱 타이밍 좋게 와서 정말 다행이다. 아직 통관중이라고 뜨는데 월요일에는 제발 포스트노드가 바로 소포를 집으로 보내줬음 좋겠다. 
 
 
아오 정신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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