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네 가족이 기르는 염소들... 이제 써먹을 사진이 없다.)
누가 보면 수험생 블로그인 줄 알겠네...
어제 "영어와 나" 포스팅에 이어서 오늘은 "수학과 나"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이번 주부터 플렉시블로 수학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각각 계획을 따로 세우고 그에 따라서 기말시험을 볼 날짜가 정해진다. 플렉시블은 콤북스에 출석해서 강의를 듣는 수업은 아니고, 집에서 자습한 다음 일주일에 한 번씩 선생님을 만나서 궁금한 거 물어보는 식으로 진행된다.
나는 사실 수학을 좋아한다. 영어보다 훠어어어얼씬 좋아한다. 비록 고2 1학기 때 30점을 찍긴 했지만 그때는 내가 질풍노도의 시기였기 때문인 것 같다. 어쨌든 30점 받던 시절에도 수학을 싫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미친듯이 공부해서, 나중에는 당연히 만점받는 과목이 되었을 정도였다. 다만 나는... 문과였다^^ 미적분은 구경해본 적도 없고, 내가 만점을 받았다던 그 수학은 수학2도 아닌 수학1이었다.
스웨덴에 와서 고등학교 성적표를 보내 이 나라 기준으로 성적을 다시 산출했다. 이 나라 기준으로 수학3까지 인정해주겠다고 했는데, 내가나중에 가고 싶은 학과는 수학4를 이수해야한다고 했다. 수학4 교과서를 중고로 미리 구해서 조금 훑어보았는데, 1과는 그나마 삼각함수인데 2과부터 무려 미적분이 시작되는 게 아닌가. 나는 문과인데에에 미적분이 무엇인지 나는 모르는데에에...
플렉시블 수학4 수업을 신청한 사람은 세 명이라고 했다. 한 명은 어제 드롭했다. 이쯤되면 개인과외인 것 같다. 그저께 선생님과 학습계획 얘기하는 자리라고 해서 갔는데 나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학습계획이 적힌 종이를 나한테 주고 교실 정리를 하셨다.
"저... 제가 플렉시블은 처음이라... 그런데 매주 와야 하나요?" "원래 매주 오긴 해야하는데... 너 중국에서 왔니?" "아니요, 한국에서 왔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은 활짝 웃으며 말씀하셨다. "아, 그러면 안와도 돼. 정 궁금하면 오고, 아니면 그냥 기말시험 칠 때나 와."
그것은 사실이었다. 아시안이 수학을 엄청 잘한다는 고정관념을 이 나라 사람들은 정말로 갖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제가 미적분은 배운 적이 없는데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괜찮아, 괜찮아, 중국이나 한국 애들은 확실히 다르더라고. 잘 할 수 있어! 그냥 5월 말에 기말시험 볼 때 와."
그렇게 해서 나는 수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우등생이 되었다. 오늘 저녁에 handledning(수학이나 과학 궁금한 거 있으면 선생님 만나서 질문하는 시간) 오라고 해서 갔는데, 선생님은 그냥 나한테 한 번 더, "5월 말에 시험 칠거지? 여기 이름 적어놓고 가."라고 하셨다. "노력해보긴 할건데, 6주 남은 거라서 잘 모르겠어요>_<" 했더니 선생님은 또 한 번, "괜찮아, 끝낼 수 있어. 중국애들 다 잘 하더라고." 라고 하셨다. 중국애들 잘한다는 말에 오기로 "네 그럼 까짓거 5월 말 시험 보겠슴당!" 해버렸다.
시험 때 계산기를 써도 된다고 하고, 기본 공식은 따로 프린트해서 나눠주기 때문에 그걸 보면서 문제를 풀면 된다고 한다. 그럼 엄청 쉬운 거 아냐?라고 생각했는데.... 문제가 스웨덴어네? ^^ 결국, 내가 수학을 잘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고 내가 미적분을 배운 적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느냐 아니냐... 이것이 문제였다.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내일 부활절 지내러 숲속 갈 때 수학책을 들고가야겠다.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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