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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2017

스웨덴에서 나는 행복..한가?

by Bani B 2017. 8. 9.

 



  며칠 전에 한국에 있는 친구한테서 갑자기 카톡이 왔다. 이런저런 고민이 많다 하더니 대뜸 물었다. "너는 거기서 행복하니?"


   서른살이 가까워오면서 친구들을 만나면 으레 '이직' 또는 '터닝포인트'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가곤 했다. 정말 이게 내가 원하던 인생인가, 이대로 냅두면 나는 앞으로 몇십년동안 이 일을 계속할텐데 정말 괜찮을까, 차라리 지금 뭔가 바꿔야하는 거 아닐까, 퇴사를 한다면 지금이 아닐까, 워홀을 갈까, 여행을 갈까, 유학을 갈까, 이직을 할까, 결혼을 할까 등등. 그러다보니 '이민'이라는 엄청난 터닝포인트를 맞이한 내가 어찌 사는지 궁금했을 것 같다. 그래서 어제 달리기를 하면서, 걸으면서, 잠이 들면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서울에서 자취하면서 직장다닐 때보다 지금 스웨덴에서 입에 풀칠만 하고 사는 이 생활이 더 행복한가 아닌가. 


   항목별로 나누어서 생각해보았다.


1. 경제와 관련된 행복점수 - 60점

   한국에서는 고정적인 수입이 있었고, 월세와 식비와 각종 생활비를 다 내고서도 어쨌든 저금은 할 수 있었다. 가끔 무턱대고 비행기표 할부로 끊고 해서 가끔 '헉'할 때는 있었지만, 어쨌든 경제적으로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는 날들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스웨덴에 와서 처음 10개월은 수입없이 저금으로만 먹고 살았고, 그 후 4개월동안은 한달에 80만원을 벌었고, 이번 달부터 월수입이 겨우 100만원을 조금 넘길 예정이다. 하지만 그것도 식비 내고, 이제 월세도 조금 분담해서 내고, 이것저것 쓰고 나면 저금할 돈이 없다. 부모님께 다달이 용돈 드리는 건 고사하고, '차라리 그 돈으로 내년에 한국 갈 경비 저금해놓는 게 더 효도일거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할 정도이다. 그래서 돈에 대한 스트레스는 한국에서 살 때보다 지금 더 자주 찾아온다.

   그렇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서 불행하다고 느낄 정도는 아니다. 어쨌든 먹고 살고 있다. 어쨌든 가끔 친구들을 만나 맛있는 걸 해먹을 정도는 된다. 길에 나가도 사먹을 수 있는 길거리음식이 없고, 시내에 나가도 딱히 사고 싶은 옷도 없고, 세일한다고 잡아끄는 화장품가게도 없으니, 돈이 나가는 곳이 한정되어있다. 슈퍼마켓 아니면 시스템볼라겟. 저금을 못해서 스트레스 받고 가끔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근사한 선물 못해준다고 스트레스 받는 건 있어도, 생활고를 느낀 적은 없으니 불행하지 않다. 그러니 경제적인 행복점수에 절반보다 조금 나은 60점을 적어본다. 


2. 노동으로 인한 행복점수 - 80점

   이건 어쩔 수가 없다. 한국에선 아침 8시에 집에서 나가서 저녁 8시 이후에 들어오는 생활이었다. 계약서에서는 분명히 8:30~18:30 근무라고 적혀있었는데, 저녁 7시에 퇴근하면 횡재, 저녁 8시 퇴근은 선방, 저녁 9시는 피곤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야근, 저녁 10시는 하아.... 뭐 그런 날들이었다. 그런 날들과 지금, 기간제 비정규직으로 주 15시간 일하는 노동이 전혀 비교가 될 리 없다. 이건 언젠가 내가 풀타임 정규직으로 일하게 되면 다시 생각해보겠지만,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노동으로 인해 아아아아주 적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므로 80점. 그 스트레스는... 장시간 스웨덴어 청취로 인한 스트레스라고.


3. 건강과 관련된 행복점수 - 70점

   한국에 있을 때보다 확실히 비염이 나아진 것 같긴 하다. 예전에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감기에 괴로워했는데 스웨덴에 와서는 그 빈도가 줄어든 것 같다. 하긴... 뭐 계절이 바뀌는 감이 있어야 감기도 걸리지, 이건 뭐 사시사철 겨울인 것 같으니. 운동은 오히려 한국에서 더 열심히 했다. 야근에 찌들면서도 '운동이라도 안하면 갑자기 쓰러질 수도 있겠구나'하면서 겨울에는 헬스장에 다니고 여름에는 자전거를 탔다. 오히려 스웨덴 와서 운동을 더 안하긴 하지만, 건강은 더 좋아진 느낌이다. 게다가 삼시세끼를 꼭꼭 차려먹는 것도 그 이유인듯. 한국에서 회사다닐 때는 아침은... 커피, 점심은 대충 편의점 도시락이나 회사근처 밥집, 저녁은 굶거나, 다같이 야식으로 햄버거 먹거나, 아니면 집에 가는 길에 김말이나 두 개 사서 먹거나... 하지만 스웨덴은 편의점 도시락 따위도 없고, 햄버거는 비싸고, 집에 가는 길에 파는 김말이 따위 없으니 해먹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확실히 건강은 좋아진 것 같고 이에 만족한다.

   하지만 고작 70점인 이유는, 어쩌다 아플 때 바로 갈 수 있는 병원이 없는 거ㅠㅠ 나는 코감기가 걸리면 바로 이비인후과에 가서 코를 지지고 목을 지지던 사람이었는데 그런 것도 없고, 지금은 손이 삔 상황인데 침맞을 한의원이 없고...


4. 정서적 안정 - 80점

   가끔 싸우기도 하지만 어쨌든 같이 사는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인 것 같다. 내가 하지 않아도 청소를 알아서 다 하기 때문....이 아니라, 어쨌든, 밖에 나갔다 와서 집에 왔을 때 이러쿵저러쿵 떠들 사람이 있다는 게 좋은 것 같다. 정서적 안정에 대해서는 자취할 때보다 지금이 훨씬 나아서 100점 주고 싶지만 20점을 깎은 이유는, 어쨌든 한국에 있는 가족들 생각이 나고 친구들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5. 자아실현과 관련된 행복점수 - 20점

   한국에서 일이 힘들기는 했어도 자아실현과 관련된 점수는 꽤 높게 줄 수 있었다. 정말 힘든 만큼 배우는 것도 많았고, 일도 점점 익숙해졌고,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도 해서 이래저래 조사도 많이 했었다. 계속 했었어도 괜찮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일이 많았어서 그랬지... 뭐 어쨌든, 이민을 계기로 퇴사를 하고 스웨덴에 와서, 새로운 직업을 구하려고 지금은 공부를 하지만... '생각대로만 되면 정말 멋지겠다, 엄청 뿌듯하겠다, 열심히 해야지'라는 생각과 동시에,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서른되어서 또 대입을 준비하나...'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뭔가 잘 되고 있긴 한건가,하고 의문이 들 때도 있고, '대학공부를 새로 다 했는데 정작 취업이 안된다거나 새로운 난관이 나타나면 어떡하나'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 행복점수가 좀 많이 깎인다. 

   그나마 20점이라도 주는 이유는, 그래도 뭔가 하고 있으니까 스스로를 격려하는 차원에서 주기로 했다. 


...그래도 총 500점 중에 절반이 넘었으니, 나는 지금 꽤 행복한 것 같다. 가끔 '도대체 내가 여기 왜 왔나'할 때가 종종 있는데, 그 때마다 내가 이 글을 다시 보고 힘을 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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