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에는 시간이 20의 속도로, 스물 다섯살에는 시간이 25의 속도로 간다더니 서른하나가 되니 시간이 그만큼 더 빨리 가는 느낌이다. 벌써 1월 17일이라니 정말 믿을 수가 없다. 한국에 가서 3주동안 잘 놀았고, 그 중 3박4일을 일본에 가서 가족들과 놀았고, 다시 스웨덴으로 돌아온지도 일주일이 되었다. 한국에 가서는 배탈이 나는 바람에 일주일을 거의 잘 먹지 못하고, 배탈이 낫고 난 후에도 음식을 조심해서 가려먹었다. 그런데 스웨덴에 돌아와서 한 이틀쯤 지나고 나니까 갑자기 그게 얼마나 아쉽던지. 먹지못한 순대국밥이 떠오르고 먹지못한 닭발이 떠오르고ㅠㅠㅠㅠ 다음을 기약해야지 뭐.
작년에는 한국나이 서른이었지만 어쨌든 여기에서 20대니까 그런가보다 했는데, 이제 올해 5월이 되면 만 나이조차 서른이 된다. 내일모레가 되면 남자친구와 알고지낸 지 10년이 된다. 10년 전 나는 이제 진짜 입시가 끝난다는 안도감과 곧 캠퍼스라이프를 즐길 수 있다는 설렘에 기뻤던 것 같은데, 지금의 나는 또 입시를 하고... 곧 시작될 캠퍼스라이프는 설레기보다는 걱정이 앞서고 또 어떻게 3년 또는 5년을 학교다니나... 뭐 그런 생각이 든다.
이번 학기 계획은 참 심플하다. 매주 금요일마다 아이들과 모국어 수업을 하고,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저녁에 한국어수업을 하는 게 이번 학기 노동의 전부. 그 외에는 물리2와 수학5와 프로그래밍 수업을 듣고, 집에서 혼자 스웨덴어와 운전면허 공부를 할 예정이다. 지난 학기에 비하면 참 널널하게 느껴져서 요 며칠 되게 적응이 안되는데, 널널하지 않도록 열공해야지!
그리고 곧 영주권을 신청할 시기가 다가온다. 2년을 꽉 채워 살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비자만료 한달 전에 신청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제발... 영주권이 나오기를. 드물기는 하지만 어떤 경우는 영주권 말고 그냥 비자 1년 연장만 되기도 한대서 조금 걱정이다. 이제 나도 그 CSN이라는 것을 받아보고 싶고, 학자금대출을 받아서 운전면허를 따려고 하는데...
사실 지금 상태로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운전과 차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게 문제구만. 책은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_< 10년 전에 한국에서 운전면허 땄을 때에도 바들바들 떨었는데 룬드에서 과연 내가 면허 딸 수 있을까? 자전거가 수시로 앞으로 튀어나오는 이 도시...에서...? 아무래도 여름방학 때 스몰란드 숲속 가서 면허를 따야겠다<
한 달에 책 세 권 읽는 게 올해의 새해다짐이었다. 해외로 이민간다는 사람에게 뭘 가져가라고 하겠냐고 물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전자책 단말기'라고 말할 것 같다. 크레마는 나의 보물ㅠㅠ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책 보는 건 정말 싫은데, 크레마는 눈도 안아프고, 적응되면 그냥 책 읽는 것처럼 편하게 넘길 수 있고, 무엇보다 가볍고! 해외에서도 한국 책을 얼마든지 사서 볼 수 있고! 나는 크레마를 5년동안 애용해왔는데, 미리 국내 도서관에 신청해놓고 아이디 발급받으면 전자책 대여도 가능하다.(대여의 경우는 책 종류가 별로 없었지만...) 요즘 책들은 거의 전자책으로 잘 나와서, Yes24에 예치금 잔뜩 넣어놓고,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쉽게 사서 읽을 수 있다.
스웨덴 와서 처음 한 해동안 일부러 한국어로 된 책을 읽지 않았는데, 그러고 나니 모국어로 된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갈증처럼 생겨서 요즘에는 그냥 보고 싶을 때마다 보고 있다. 그 중 기억에 남았던 것은 며칠 전에 읽은 김애란 소설집에 있었던 '침묵의 미래'라는 단편이었다. 사라져가는 언어의 화자들 이야기였지만, 모국어로 이 집에서 소통할 사람이 없다는 데 답답함을 느끼고 있던 차라 그 이야기만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예전에는 일기장을 집 구석에 꼭꼭 숨겨두고 다녔지만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없어서 가끔 책상 위에 펼쳐놓고도 나가는데, 다시 돌아와서 그걸 볼때면 '이 집에서 한국어는 나만의 보물이야'라는 생각과 함께, '모국어로 이해받지 못하는 건 가끔 좀 슬픈 일이야'하는 생각도 든다. 쓰다보니... 이 단락 결말을 어떻게 지을까. 남자친구야 한국어 공부 좀 해< 정도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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