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많이 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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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 기간이다. TV에서 올림픽을 많이 볼수 있으려나 했지만, SVT에서는 안보여주고 5번 채널 같은 데서만 보여주고 시간대가 잘 안맞아서 잘 못보게 된다. 그래도, 남북한팀과 스웨덴이 하는 아이스하키는 중계해주겠지,하면서 틀었건만... 5번도 9번도 스키를 보여주고 있었고ㅠㅠ 결국 VPN 이용해서 한국 사이트에서 봤다. 어쨌든, 평창올림픽 덕분에 사람들이 이제 '오, 한국! 겨울올림픽 하고 있는 나라!' 하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다들 한국 겨울이 엄청나게 춥다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한국이 그렇게 춥다며?" "바람이 많이 불어서 경기가 취소되었다며?" 응... 비록 위도상으로는 스페인이랑 비슷하지만 한국은 정말 추운 나라야... 이제 다시는 나보고 '요즘 스웨덴 춥지? 한국에서 와서 적응 잘 하고 있니?' 따위 말하지 마... 스코네가 서울보다 훨 따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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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설날을 어떻게 보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친구집에서 밥을 먹었었나...? 뭘했지 진짜? 인스타를 했을 때는 사진으로 기억을 남겨두었어서 그걸 훑어보면 대충 뭘했는지 알 수 있었는데, 인스타 계정을 없앴더니 과거의 일을 떠올리기 참 힘들다. 이래서 사람이 매일매일 일기를 써야하나보다. 특히 나처럼 기억력이 점점 안좋아지고 있는 사람은 정말 일기를 써야할 것 같다.
설날은 한국도, 중국도, 베트남도 지내는 명절이니까, 이미 몇주전부터 모국어 선생님들끼리 금요일 회의 끝나고 다같이 음식먹으며 축하하자고 얘기를 했었다. 그래서 한국음식 뭐해갈까, 무슨 전을 부쳐갈까 나름 열심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회의 일정이 달라지고 각자 뿔뿔이 흩어지게 되면서 파토가 나고ㅠㅠ 떡국이나 끓여먹을까 했는데 어제도 동네 태국슈퍼에 떡이 안들어왔다. (지난 주에 '다음 주에 가래떡 들여놓을거지? 들여놔주면 좋겠어ㅠㅠ' 했건만 잊어버리신 모양이다.) 그래도 다행히, 요즘 친하게 지내는 베트남친구가 초대해줘서 내일 저녁은 재미있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베트남의 설날음식은 어떨지 굉장히 기대가 된다.
베트남. 사실 스웨덴에 오기 전에는 잘 몰랐던 나라. 엄마랑 하롱베이를 여행하기는 했지만, 3일간의 여행동안 알게 된 것은 '길거리 쌀국수마저도 엄청 맛있다'라는 것과 '스쿠터가 진짜 많다'라는 것. 뭐 그 정도였다. 생각해보면, 예전에 아빠가 베트남청년들을 어떻게 하다가 초대해서 우리집에서 자고 간 적도 있었고, 일본에서도 베트남 친구를 몇몇 만났었고 참 가까운 나라인 것 같은데 왜 나는 이렇게도 몰랐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베트남이 참 가깝게 느껴지는데, 베트남사람이랑 얘기를 하면 뭔가 우리나라 사람이랑 얘기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일 설날 저녁에 초대해준 친구는 작년에 같이 일했던 사이이기도 하고 같이 수업도 들으면서 친해졌다. '아 조모임 짜증나' '걔 일 진짜 못하지 않냐' '너 지난 학기 성적 뭐 받았냐' 하고 한국사람들처럼 스스럼없이 말하는 거나, 베트남이랑 한국의 문화가 되게 비슷하다는 점을 서로 발견하는 게 재밌었다. 특히 베트남어 발음이 중국어랑 좀 비슷하다는 걸 추측은 하고 있었지만, 진짜 한자문화권인 줄은 최근에 처음 알았다.
그런데 이 친구뿐만 아니라, 최근에 식사초대도 해주고 길에서 만나면 반가워해주는 동네친구도 베트남계 스웨덴 사람이다. 심지어 최근에 교통정기권을 렌탈해준 베트남사람이 '나 한국에서 유학했었어'라며 한국어로 말하지 않나, 버스정류장에 서있다가 몇마디 주고받고 페친된 사람도 베트남사람이다. 그리고 지금 일하는 곳에서 자기 일처럼 나서서 제일 많이 도와주시는 것도 베트남 선생님들ㅠㅠ 요즘 페이스북 메시지 주고받는 사람 중에 베트남 사람이 많다보니, 베트남이 아시안컵 준우승했을 때 페이스북에서 나보고 준우승 기념필터 넣으라며 추천 띄워줬었다>< 그런데 다들 기본적으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송중기'(!!!)를 아시는데다가, 친구는 심지어 한글도 독학해서 읽을 줄 아는데 나는 베트남 가수 1도 모르고ㅠㅠ 인사는 신짜오밖에 모르고... 항상 쌀국수랑 하롱베이 얘기만 할 수도 없고>_< 그래서 시간을 조금 내서 베트남어 읽는 법이라도 배워보기로 다짐했다. 이것이 이번 설날 다짐이 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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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하는 한국어수업도 지난 주에 다시 개강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한국어가 계속 흥해서, 이번 학기에 말뫼에만 다섯 반, 룬드에 한 반이 있다. 어제오늘은 설날 노래를 가르쳐드리고 다같이 불러봤는데, 한국에서 사온 블루투스 마이크를 보여줬더니 다들 좋아했다. 여건이 되면 학기말에 K-pop 노래자랑 한 번 열어보고 싶다.
사실 나는 오늘 한국어수업을 하면서 세대차이와 문화차이를 동시에 느꼈는데, 잊어버리기 전에 일기로 남겨두고 싶다. 오늘 수업은 중급반이었는데, '축하'라는 주제의 단원이었다.
#1.
나: 대화를 같이 읽을 거예요. 유키 씨와 민수 씨가 이야기하고 있어요. A씨와 B씨가 각각 유키 씨와 민수 씨를 읽어주세요.
A: "민수 씨, 이번 주에 한국 친구 집에 가요. 뭘 가지고 가면 좋을까요?"
B: "친구 집에는 무슨 일로 가요?" (스웨덴어로 자기들끼리) 잠깐, 이거 너무 무례한 거 아니야?
C: (키득키득) 이걸 왜 묻지?
A: (키득키득) 이상한 질문이야. 되게 무례한 것 같아.
나: 응? 이게 뭐가 무례해?
B: 내가 친구집에 가겠다는데 왜 가는지 왜 물어봐?
나: 음... (이게 무례한가?) 대화를 잘 봐봐. 유키 씨는 아마 일본 사람일거야. 일본사람이 한국친구 집에 간다고 하니까, 한국사람 입장에서는 좀 궁금할 수 있지 않을까? (왜 나는 등장인물의 심리를 또 분석하고 있냐)
B: 그래도... 내가 내 친구집에 갈 수도 있는 거지, 왜 굳이 이유를 물어봐? 친구 집에 가는 게 특별한 거야?
나: 아... 한국에서는 친구 집에 가는 것보다, 밖에서 만나는 게 더 흔하거든.
A: 밖에서? 밖에서 만나면 어디에서 만나?
나: 뭐... 식당이나 술집이나 카페나...? 집에서 다같이 만나는 경우는 잘 없는 것 같아. (다시 한국어로 돌아와서)어쨌든 계속 읽어봅시다?
A: "친구가 이사를 해서 집들이를 해요."
B: "아, 그렇다면 휴지나 세제를 사 가세요." 잠...잠깐??? 휴지랑 세제? 왜?
나: 그거야 뭐... 사람들이 항상 쓰는 거잖아? 실용적이고. 스웨덴에서는 집들이하면 뭘 주는데?
A,B,C : 꽃! 아니면 와인?
나: 그런데 내가 열명을 초대했는데 열 명이 다 꽃 사오면 그것도 별로지 않아? 스웨덴 되게 실용적인 거 좋아하는 나라 아니었음? 그리고 와인 사갔는데 집주인이 알고보니 술 못마시는 사람이면 어떡해?
C: 그래도, 꽃이 좀더 상징적이지 않아? 뭔가 축하하기에는. 그리고 와인은 내가 못마시더라도 나중에 다른 사람한테 선물로 줘버릴 수도 있고, 더 가치가 있잖아.
나: 흐음... 그래.... 그렇지... (하지만 나는 휴지와 세제를 받고 싶어)
#2.
나: 연습문제 해보세요. 모르는 단어 물어보세요.
A: (한국어로) '전자사전'이 뭐예요?
나: '사전'은 알죠? '전자'는 TV나 컴퓨터처럼 전기를 이용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전자사전은, 책이 아니라 배터리로 사용하는 사전이에요.
A,B,C :????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한국어로) 그러니까 그게 뭐에요?
나: (스웨덴어로) 디지털 사전!
A,B,C : ???? (스웨덴어로) 그러니까 그게 뭐냐니까? 사전 홈페이지 말하는거야?
나: 아니, 왜 그런 거 있잖아. 컴퓨터보다 작은 사이즈이고 사전만 되는 거.
A,B,C : 그런 게 있어?
나: (사진 찾아서 보여줌) 이거 말이야.
A,B,C : 처음 보는데? 이런 게 있단 말이야? 이거 와이파이 되는 거야?
나: (여기서 1차 멘붕) 아니, 예전에는 와이파이가 없었잖아. 그러니까 이 안에 사전이 이미 저장되어 있는 거야.
A,B,C : (얘네도 이미 세대차이 느끼기 시작함) 아... 그래...?
나: 너네, 종이 사전은 써본 적 있어?
A,B,C : 단어 모르면 구글 찾으면 되지 왜 사전을 써?
나: (멘붕) 아... 그렇지.
A : 저건 몇년도 쯤에 쓰던 거야?
나: 내가 고등학교 입학선물로 저걸 받았던 게 2004년이고...
A: 나 2004년에 네 살이었어.
B: 난 여섯 살.
C: 너 진짜 '언니'구나.
나: .....책 출판사에 전화해서 '전자사전' 얘기 빼라고 할게...... 2000년도에 태어난 사람들은 전자사전 안쓴다고...
그냥, 나는 오늘 이게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아직도 내 서랍속에는 전자사전이 있는데... 컬러 전자사전 나왔을 때 진짜 획기적이라고 신기해했었는데... MP3까지 넣을 수 있는 게 나왔을 때 진짜 그거 갖고 싶었는데>_< 언젠가는 스마트폰이 완전 구식 취급을 받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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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이 나라 수학 교육과정에도 한번 깜짝 놀랐다. 이번 학기에 수학5를 신청해서 듣기 시작했다. 책을 사서 한번 훑어보는데, 응? 미적분 빼고 이미 다 풀 수 있을 것 같은데..? 1단원은 집합이었고, 2단원은 행렬이랑 확률(표준편차 그런거...), 3단원은 등차수열이랑 등비수열, 4단원 미적분, 그리고 5단원은 뭔가 응용문제 푸는 법에 대한 내용인데, 각종 방정식과 함수에 관한 내용이었다. 아직 4,5단원을 제대로 안봐서 잘 모르고, 내가 고등학교 때는 문과 수학에서 미적분이 완전히 빠져있었어서 사실 4단원이 조금 어려울 것 같긴 하다...만? 1단원 집합은 진짜... 아주 친절하게 집합의 개념부터 알려주기 시작해서, 합집합과 교집합이 뭔지 맞춰보라는 연습문제와... 원소 개수 써보라는, 뭐 그런 수준이었다. 행렬이랑 수열도 연습문제부터 풀어봤는데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1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렵지 않았다. 아니 뭐지? 사실 수학5는 대학입시에 아무런 가산점도 없고 안들어도 되는 과목이라, 대부분의 자연계/공학계열 사람들도 수학4까지만 하고 가는 것 같은데... 수학4 내용은 삼각함수와 미적분 기본개념, 로그,지수 그리고 허수 개념이 약간 나왔던 게 기억난다. 그럼 이 나라 이과는 집합이랑 행렬이랑 수열을 안배우고 공대에 간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약간 분했다. 나는 심지어 문과였는데, 한국에서 대학가서 이걸 써먹어본 적이 없는데 고등학교 3년 내내 죽어라고 이걸 풀고 또 풀고 했다는게. 그 시간에 스웨덴 애들은 다른 걸 할 수 있었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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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물리2는 진짜 개어렵다. 물리1은 이거에 비하면 쉬운 거였는데도 징징대던 나 자신을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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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요즘에 놀란 것들'에 대해 쓰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써보겠다. 종종 오전에 SVT 아침프로그램을 보는데, 며칠 전에는 예전 유로비전 우승자인 몬스 젤멜로브가 나왔다. 런던을 방문하고 있는 그를 연결해서 인터뷰하겠다고 하더니...
이건 좀 남사스러운데? 뭐라도 걸치고 인터뷰를 좀 했으면 좋겠는데? 그는 '방금 막 일어났다'라며 계속 침대에 누워서 인터뷰를 했다. (누가 보면 시차 많이 나는 곳에 간 줄 알겠지만 저 곳은 그냥 런던이었다.) 좀 설정같기는 했지만... 어쨌든 1분 넘게 그의 가슴털(!)을 보면서 '으아 사스가 스웨덴!'을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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