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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2018

'니하오' 를 듣는 것에 대하여.

by Bani B 2018. 3. 21.



   왠지는 모르겠는데 요즘 유독 '니하오'를 많이 듣는다. 어쩌면 예전부터 많이 들었는데 요즘들어 예민한 건지도 모르겠다. 이때까지는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그냥, '특별히 더 친절하게 인사해주고싶은데, 아는 거라고는 중국밖에 없으니까 니하오라고 하는거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니하오'라고 인사하면 그냥 씩 웃고 말았다. 자주 가던 케밥집에서는 하도 그게 반복되니까 '이제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너네도 알아야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나 사실 한국사람이야. 우린 니하오라고 안해"라고 말해주긴 했었다.


   시작은, 몇 주전에 자전거 타고 가다가 만난 10대 남자애들 때문이었던 것 같다. 밤이었고, 라이트를 켜고 가고 있었는데 불쑥 옆 길에서 라이트도 안켠 자전거가 튀어나왔다. 다행히 서로 브레이크를 밟아서 부딪히지는 않았는데, 자전거 뒤에 타고 있던 애가 한국어로 치면 "아 ㅅㅂ 중국인"쯤 되는 욕을 했다. 빨리 집에 가고 싶었으므로 별말 안하고, 먼저 지나가라는 손짓만 해서 보냈다만 기분이 찝찝했다. 뭐? ㅅㅂ 중국인? 중국인이 뭐 어쨌는데? 나는 중국인이 아니지만은? 내가 중국인이란 걸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고 그런 욕을 하지? 내가 중국인이었어도 중국인이 아니었어도 이 말은 확실히 기분 나쁜데?


   그러고 나서 기분이 나빠진 결정적인 계기는 자주 가던 채소가게 아저씨 때문이었다. 아저씨가 정확히 어느 나라 출신인지 모르나, 외모로 봐서 중동 어딘가에서 왔겠거니 추측은 하지만, 어쨌든 나는 한번도 아저씨한테 어디서 왔냐고 물어본 적도 없고 뜬금없이 '앗살람알라이쿰' 따위를 말한 적도 없다. 그냥, 아저씨는 꽤 친절하고 물건 관리도 잘하는 그런 채소가게 아저씨일 뿐이었다. 가격도 싸서 자주 들러 장을 봤는데, 언제부턴가 아저씨가 나만 보면 '니하오'라고 인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씩 웃고 말았다. 계산하고 나서 꼭 스웨덴어로 '좋은 하루 보내'를 외치고 나왔다. 그러다보면 아저씨도 나한테 니하오를 그만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루는, '니하오'라는 말에 내가 대답을 안하자 아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니하오~ 니하오~"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서 말을 했다. "있잖아, 나는 중국어를 할줄 몰라서 니하오가 무슨 뜻인지도 몰라." 그랬더니 아저씨가 일본에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하고, 그냥 서로 좋게좋게 웃으면서 '좋은 하루 보내' 하며 가게에서 나왔다. 좋아, 자연스러웠어. 이제 아저씨가 나한테 '니하오' 안하겠지. 

   그러고 나서 며칠 후에 또 그 가게에 갔다. 계산을 하는데 아저씨가 또 니하오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왜일까. 아무리 손님한테 친절하고 싶은 마음이라지만 이건 좀 과하지 않나. 나를 아무리 기억을 못한다 해도, 네 손님 중에는 중국인이 아닌 사람도 있다는 것을 지난 번에 어필했는데 왜 또 이러는 것일까. 그래서 "있지, 지난 번에 말했지만 나는 중국사람이 아니고, 니하오는 무슨 뜻인지도 모른다니까." 라고 말했더니 아저씨가 "하지만 난 일본어를 모르는걸. 그래서 니하오라고 하는거야."라고 말했다. 아, 문제가 여기에 있구나. 아시안 외모를 가진 사람은 무조건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라고 생각하는 이런 무지였구나. "응, 아시아에 얼마나 많은 나라가 있는지 알아? 그냥 hej라고 하면 돼. 굳이 네가 손님한테 뭘 말할 필요가 없어"라고 했더니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아저씨는 정말 미안했을까? 말로는 미안하다고 했지만, 내가 물건을 가방에 담고 가게에서 나갈때까지 영어로 "쏘리~쏘리~ 땡큐~ 땡큐소머치~ 해버나이스데이~ 쏘리~"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오늘은, 기차에서 표 검사를 하던 직원이 중국어를 했다. 심지어 어제오늘 두 명이었다. 어제는 '니하오'였다. 그리고 오늘은 '쎼쎼' 였다. 조금 황당하기도 했고, '저 사람들은, 다른 인종한테는 딱히 그 나라 말로 인사하려는 시도를 안할텐데 왜 굳이 유독 동아시아 사람한테만 이렇게 니하오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도회사 트위터로 '직원들이 아시안 외모를 가진 사람에게 니하오라고 하는 건 무례하게 느껴진다'고 보냈더니 바로 '전혀 좋지 않은 일이다. 그런 일이 또 일어나면 알려달라'는 답장이 왔다.


   하지만 이런 일들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더니 "하지만 스웨덴사람들이 보면 아시안은 다 똑같이 생기긴 했잖아"라거나, "기분나쁘라고 그런 건 아니잖아"라거나, "한국에서도 웬만한 외국인을 보면 미국인이겠거나 지레짐작 하잖아"등의 반응이었고,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좀더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기분이 나빴던 포인트는 절대로, 내가 한국인인걸 '몰라봐서' 그런 것도 아니고 중국인으로 '오해받은 게' 기분나쁜 것도 아니다. 정말 그들은 몰라서 그런 것이라는 걸 안다. 내가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를 모르는 것도 있지만, 아시안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국적을 가질 수 있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이렇게 생긴 사람이 스웨덴 사람일 수도 있고, 미국인일 수도 있고, 몽골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없으니 그렇게 쉽게 '니하오'가 입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모르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이런 문제이다. 스페인 쪽 사람들은 뭔가 좀 다르게 생기긴 했지만, 스웨덴 사람들이 굳이 그런 사람들에게 '올라!'라고 인사하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랬다가 이 사람이 스페인사람이 아니었다거나... 그러면 더 민망한 상황이 될거라는 것도 알고, 그게 실례라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외모만 보고 상대방의 정체성을 판단하는" 것은 상대에게 무척 실례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시안 외모를 가진 사람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외모만 보고 '어! 중국인이다!'하고 판단하고 니하오를 말하는 게 짜증이 났다. 남유럽쪽 외모를 가진 사람들에게 함부로 '올라!'나 '봉쥬르!'를 외치지 않는 것처럼, 아시안 외모를 가진 사람들에게 함부로 '니하오!'를 외치는 일도 없어져야한다고 생각한다. 인종차별까지는 아니지만, 인종적 무지?라고나 할까, 그런 무지함과 무심함 때문에, 다른 인종차별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외국인이 맞고, 여기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는 다르게 생겼고, 스웨덴 사람이 될 계획도 없지만은, 그게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차별이나 편견을 꼭 감수하고 살아야한다는 뜻은 아닌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여기에서 살고 있고 앞으로도 오래 살 예정인데, 기왕이면 외모만 보고 '어! 중국인이네!'하는 이 현상을 좀 바꿔보고 싶다. 그래서 '니하오'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 한국사람이야'라고 말하기보다는, '네가 니하오라고 말한 사람이 스웨덴 사람일 수도 있고, 호주 사람일 수도 있고, 일본 사람일 수도 있어. 내 말 알겠어?'라고 말하려 한다. 그러다보면 저 자전거타다가 황당하게 들은, '중국인'이 욕처럼 쓰이는 일도 없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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