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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2018

11월: 스웨덴어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감

by Bani B 2018. 11. 19.

   11월 초에 수학시험이 있었다. 그 며칠 전에 프로그래밍 시험이 있긴 했지만 그건 조별로 가산점만 계산되고 별로 비중이 크지 않으므로 다들 수학시험에 올인하는 분위기였다. 공대 1학년 수학수업은 공통이고, 학교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토목공학과라서 그 건물 가서 같이 공부하곤 했는데... 토목공학과 애들은 지질학 시험도 쳐야돼서 무슨 돌이 어쩌고, 흙이 어쩌고, 지도가 어쩌고 하는데 그걸 공부하는 친구가 새삼 더 대단하게 보였다. 그거에 비하면 프로그래밍은 양반이었다... 그러니 찡찡대지 말자고 다짐.


   다행히 프로그래밍 시험도 평타는 쳤고 수학시험도 나쁘지 않게 본 것 같다. 사전을 들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응용문제 못알아먹을까봐 그게 제일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살살 내준 느낌이었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집에 가서 쉰 다음, 친구들과 기차를 타고 코펜하겐에 가서 신나게 놀았다. 매년 11월 첫째주 금요일에 Tuborg에서 크리스마스 맥주를 출시하며 나눠주는 행사를 한대서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공짜맥주는 못받아먹고 대신 모자나 받고 술은 내돈주고 사먹었다... 이제 스웨덴환율이 너무 낮아서 코펜하겐 맥주값도 만만치 않구먼,하고 생각했으나 그 생각은 아주 잠시뿐이었고 '놀때 놀아야지'라며 펑펑 마셨는데... 다음날 잔액 조회하는 게 두려웠다... 이제 올해 코펜하겐 나들이는 끝.


   대학생활 조금있으면 3개월. 스웨덴어가 늘었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뭔가 철판이 두꺼워진 느낌이다. 요즘 느끼고 있는 것은:


- 이제 조교가 진짜 나의 스웨덴어에 적응한 듯. 전에는 내가 질문하면 서로 포인트를 못잡아서 고생했는데, 이젠 내가 대충 질문해도 알아서 착착 알아듣고 쉽게 설명해준다. => 그러므로 내가 스웨덴어를 못한다고 걱정하며 말을 안하고 지내는 것보다, 마구잡이 스웨덴어라도 매일매일 뱉어내서 남들을 나에게 적응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음


- 아는 건 진짜 아는 티를 내는 게 중요하다. 아니, 잘 몰라도 "음, 그래도 뭔가 되고는 있어"라며 긍정긍정적으로 말하고 다니는 것이 좋다. '한국인은 겸손함이 미덕'+'스웨덴 애들은 얀테라겐 때문에 알아도 모르는척 한다믄서?' 라는 생각 때문에 애들이 수학 수업 니가 느끼기엔 어떠냐고 물었을 때 항상 '어렵지ㅠㅠ 내가 통과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따위의 말을 했는데, 그게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말하면 애들이 나를 좀 편하게 여기고 서로 동지애를 느끼며 같이 공부하자고 해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수학? 그거 할만하던데?"라고 말해야 애들이 같이 공부하자고 하더라. 프로그래밍도 처음에는 (진짜 잘 모르기도 했고) '하나도 모르겠어 엉엉' 이렇게 우는 소리 하고 다녔지만, 이제 애들이 다들 '몰라도 잘 되고 있는 척' 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후로는 나도 "응, 계획대로 되고 있어"(...마미손인가...)라고 하고 다녔더니 같이 공부하자는 애들이 생겼다. 그러니까 요약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뭔가 우는소리도 좀 하고 불평도 좀 하고 그러면서 동지애를 느끼며 친구가 생기지만, 여기서는 우는 소리 하는 애는 잘 없는 것 같고 뭔가 자신감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사람이 꼬이는 듯...


- 내가 뭔가 잘 못알아듣고 있다는 생각을 늘 했던 것 같다. 코드를 써놓고서도 내가 제대로 한건지 확신이 없고, 문제를 풀어오래서 풀고 나서도 이게 맞나 싶기도 하고. 스웨덴어가 모국어가 아니라는 데서 오는 불안함이 진짜 큰 것 같다. 다른 애들이랑 답을 비교하면서도 뭔가 좀 다르면, '아, 내가 잘못이해했나보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고, 늘 내가 틀렸겠지 하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니야! 물론 스웨덴어는 정말로 중요하고 나를 늘 힘들게 하긴 하지만, 다행히 대학공부는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있다. 차라리 '이건 내가 스웨덴어를 몰라서 어려운 게 아니라, 스웨덴애들한테도 어려운 내용인거야'라고 생각하는 게 멘탈관리에도 좋고, 그게 사실일 때도 많다. 그리고 내가 쓴 답이 맞아서 남을 설명해줘야하는 순간도 종종 찾아온다. 자신감! 내가 언어는 좀 뒤지지만 어쨌든 멍청하지는 않다는 그 자신감이 진짜 중요한데... 내 자신감은 어쩜 이렇게 사인코사인 그래프마냥 주기가 있을까.


- 그리고 의외로 애들은 이민자들의 스웨디시에 굉장히 잘 적응되어 있는 것 같다. 이민자가 많은 나라라서 그런지. 내가 말하면서도 '이 문장은 문법이 좀 아닌데' 싶을 때가 있지만 그럴 때도 애들은 딱히 코멘트도 하지 않고, 최대한 잘 알아들어서 최대한 잘 대답해준다. 가끔은 '이쯤되면 얘가 왠지 못참고 나한테 영어로 말할 것 같은데'싶을 때도 있지만 애들은 끝까지 스웨덴어로 얘기해주는데 이게 좀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이번학기 조모임 운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학과 친구들 운은 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이번 주도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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