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금요일부터 크리스마스 방학이 시작되었고, 이번엔 방학이 좀 길어서 거의 한 달을 놀게 된다. 물론 방학 끝나는 날 기말고사를 보니 공부는 좀 해야겠지만, 그리고 1월 5일에 내야하는 에세이가 하나 있지만, 그래도 지난 일주일이 정말 많이 힘들었기 때문에 금요일에 엄청난 해방감을 느꼈다. 금요일 아침에 시험을 보고, 집에 와서 좀 쉬다가 가족들과 영상 통화를 하고, 김밥과 막걸리를 먹은 후 잠깐 낮잠을 자고, 그날 영화 '기생충'을 드디어 스웨덴에서도 개봉해서 영화관 가서 봤다. 토요일엔 정말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하고 놀고 오늘은 일요일...
지금은 SVT틀어놓고 여유롭게 소파에 앉아서 블로그를 쓰고 있는 중인데, 일단 거실 티비를 튼 게 도대체 얼마만인가 싶고, 이 소파에서 노트북을 켜고 이런 블로그질을 하는게 얼마만인가 싶다. 그런데 하필이면 지금 티비에서 하고 있는 게 가수들 나와서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르는 프로그램인데, 캐롤을 들으니 아 정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건가 싶어서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설레서 두근두근한 게 아니라 명절증후군 땜에 두근두근......
한국에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와 스웨덴에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는 많이 다르다. 스웨덴의 크리스마스는 정말 명절 느낌이고, 그래서 그런가... 나름 명절 증후군 같은 게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을 앞두고 찾아온다. 스웨덴에서의 첫 크리스마스는 재밌었다. 크리스마스 디너가 완전 생소했고, 신기한 음식을 맛보는 게 재밌었고, 3시면 해가 지는 이 동네 곳곳을 그나마 조금이라도 밝히는 조명 구경이 재밌었다. 크리스마스 선물도 그렇게 트리 밑에 쌓아놓고 개봉 시간(!)을 갖는 게 나에겐 생소하고 재밌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내 한국 가족도 함께였다면 더할나위 없이 즐겁겠지만, 스웨덴 가족들과 그렇게 맛있는 거 먹고 수다떨고 나서 남자친구와 다시 집에 돌아오니 뭔가 허전하고 슬프고 그랬다. 그래서 두번째 크리스마스 때에는 아예 도망치듯 한국에 갔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모두 한국 가족과 보내고 온 건 좋았지만 스웨덴에서 혼자 연말을 보낸 남자친구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작년 크리스마스는 어디 갈 생각 안하고 그냥 스웨덴에 있었지만... 이제는 스웨덴 명절 음식이 그리 새롭지도 않고, 원래 쇼핑을 안좋아하고 뭘 사는 걸 귀찮아하는 성격이라 크리스마스 선물 사는 것도 스트레스고(낼모레가 크리스마스디너인데 아직도 남친 선물을 안샀다) 장시간 스웨덴어 토크도 지치고 그래서 작년 명절은 좀 힘들었지만 '크리스마스는 즐거운 것이다'라며 스스로를 엄청 세뇌시키고 노력했다. 그리고 올해. 이제 솔직히 써보자면 나는 스웨덴 크리스마스가 싫고 힘들다.
차라리 크리스마스보다 대림기간이 좋다. 첫 advent때 창문에 별모양 램프를 달고 촛대를 꺼내 밝히고, 글로그를 마시는 게 좋다. 12월 13일 성 루시아축일에는 루시아 콘서트도 하고 루쎄카터도 먹으니 그건 재밌고 별로 부담되지 않고 좋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는... 뭔가 압박감이 있다. 심지어 이 집은 친척들이 다 모이는 것도 아니고, 평소에도 자주 만나서 편하게 수다떠는 가족들끼리만 만나서 평소에 가끔 주말 디너하듯이 밥먹고 수다떠는 것지만, 그래도 '명절'이 주는 압박감이 분명 있다. 사람마다 명절에 대한 추억이 다 다르겠지만, 한국에서의 명절을 떠올려보면 추석과 설날엔 부엌에서 어머니들이 계속 음식을 만들고 나는 설거지를 하거나 음식을 날랐고, 명절음식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는데도 꼭 음식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어서 집에 돌아와서도 그걸 한동안 먹었어야 했다. 그래서 명절하면 제일먼저 특유의 그 기름냄새가 떠오르면서 살짝 속이 메슥거리기도 하다. 여기서 크리스마스가 딱 그렇다. 내가 음식하는 건 아니고 거의 다 사서 데우는 정도의 준비지만, 어쨌든 산더미같은 음식을 며칠동안 먹는다는 점에서 같다. 스웨덴 명절을 떠올리면 짠 것을 잔뜩 먹고 난 후처럼 혀가 따끔거린다. 그리고 초콜릿 같은 걸 엄청 많이 먹고 난 후에 느끼는 갈증과, 약간의 두통도 생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다들 서운해하겠지. 결론은, (물론 즐겁게 보내시는 분들도 많을 것이지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뭔가 마음이 썰렁하거나 힘드신 삼보 분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당 우리 올해도 화이팅해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