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번아웃되어서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썼는데, 그러고 나서 지난 3주는 기분이 그렇게 널뛰기를 하지도 않고 꽤 평온했다. 시험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아예 4월에 재시험보려고 마음을 놔서 그런지 다른 하나에 집중할 수 있었고 마음도 편했다.
일은... 오히려 과외가 하나 늘었는데 괜찮다. 할 만하다. 한국어 수업 하나가 종강해서 평일에 여유가 조금 생겼고, 그래서 과제를 좀더 여유있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걸 생각하면 다음 학기에 아무래도 평일 알바는 안하는 게 좋을까 싶기도 하고 좀더 고민해봐야겠다.
진로 때문에 막막하고 조급했던 마음을 어떻게든 풀어보고 싶었는데, 운이 좋게도 스웨덴에 사시는 개발자님이 일일 멘토링을 해주셔서 그동안 막연하게 걱정했던 것들과 업계에 대해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말하면서도 스스로, '시간 많이 남았는데 마음이 마냥 급했구나'하고 깨달았달까. 뭐, 내년에 섬머잡 못구하면 여름방학 때는 다른 자기계발을 하고 내후년에 일하면 되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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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미루는 걸 싫어한다. 전에는 항상 끝까지 뭘 미루는 성격이었는데 20대를 지나면서 그게 많이 변했다. 과제가 있으면 2-3일 전에는 끝내야 마음이 놓인다. 문제는 그룹과제를 그런 식으로 하고 있다는 거... 성격이 맞는 친구와 할 때는 친구도 내 스타일에 맞춰줘서 같이 일찍 끝내고 쉬었는데, 이번 학기 조모임은 무려 여섯명이고 그 중 네 명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다행히 프리라이더는 없는 것 같고 다들 자기 몫을 잘 했는데, 오늘이 제출인데 왜 오늘 아침에 네 파트를 마무리하는거니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니...라고 묻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좀 조마조마했던 걸 빼면 조모임도 아직까지는 순탄한 것 같다.
근데 미루는 걸 싫어하는 건 과제나 일에만 해당하는 것일 뿐, 시간을 내서 스웨덴어를 공부하자고 했던 다짐이나, 시간을 내서 코딩을 꾸준히 해보자고 했던 다짐들은 한없이 한없이 매일 미루고 있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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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는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보았다. 별 거 아닌 일일지 모르지만 나에겐 정말 큰 과제와도 같은 일이었으므로 적어보겠다. 책은 사놓기만 하고 보지 않았고, 앱으로만 공부했다. 나중에는 눈이 너무 피곤해서 스포티파이에 있는 오디오북으로도 들었다. 문제를 엄청 많이 푸는 게 그냥 좋은 것 같다. 사진 보여주고 어떻게 할거냐고 묻는 문제들 중에 까다로운 것들이 꽤 있었다.
요즘 코로나 확산세가 심상치 않아서 마스크를 들고 갔다. 그래도 손세정제는 있지 않을까 했는데 시험보는 곳 안쪽에만 있고 리셉션에는 없었다. 음... 시험보기 전에 사진찍는 기계가 터치스크린이라 그것도 막 만지고, 리셉션에 계셨던 분한테 신분증 보여주고 하느라고 그런 터치가 있었는데. 게다가 리셉션에 앉아있던 분이 기침을 좀 하셨다...... 마스크랑 손세정제 가져가길 정말 잘했다. 마스크는 나 혼자 쓰고 있었다.
생각보다 화면이 되게 크고 사진도 엄청 크게 나와서 시원시원하게 볼 수 있었다. 집에서 연습문제 풀어볼 때는 몰랐는데, 막상 가서 시험을 보니 시간이 정말 빨리 갔다. 고민되는 걸 몇 개 다시 본 후 '에라 모르겠다, 다음 달에 다시 보지 뭐'하고 제출을 눌렀는데 잠시후 합격이라고 떠서 '응?'하고 오히려 의아해했다. 다행이다. 돈과 시간이 이렇게 굳었다.
아 그러고보니, 지난 주에 안전교육2에 갔었는데 그걸 안썼군. 3시간 정도 교육을 했는데 정말 신선한 경험이었다. 처음에는 찌그러진 차 옆에 가서 "이 차를 잘 보고 어떤 사고였는지, 몇 킬로로 달리고 있었는지, 뒷좌석은 왜 찌그러진건지 등등" 조사하라고 해서 한참 탐정놀이 하듯이 차를 살펴보았다. 그러고 다른 사람들과 토론을 하고 나서 다음 장소로 갔는데... 차에 타서 안전벨트 하라고 하더니 사정없이 90도로 옆으로 돌리더니 그 다음엔 위아래 180도 뒤집어버리더라>_< 나는 놀이기구도 잘 못타므로 피가 머리로 쏠리는 경험은 요가 빼고 이게 처음이라고 해도 무방한데, 무섭기도 했지만 그와중에 안전벨트의 위력에 감탄했다. 내 체중이 이렇게 쏠리는데 이 벨트가 이걸 견디네? ...여튼 차가 뒤집어지면 그렇게 된다는 걸 경험하고, 또 다른 속도체험을 한 후에 밖에 나가서 빙판길 체험을 했다.
물을 계속 뿌려서 빙판길처럼 미끄러운 길을 만들어놓았는데, 거기서 차를 하나씩 타고 순서대로 가속하면서 커브를 도는 거였다. 그 와중에 차가 오토여서 다들 오토 운전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어봤다. ...수동운전이 메인인 나라에선 오토 운전을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는구나. 그런데 나 역시 한국에서 오토면허 딴게 13년전이라 'D가...드라이브의 D겠지...?'하면서 기어를 바꾼 것 같다. 그렇게 혼자 차에 타고, 교육하는 선생님은 밖에서 무전기로 이것저것 지시를 내리는 거였다. 혼자 운전을 해보는 게 처음이라 왠지 뭉클...한 건 한 1분 정도였고, 70으로 달리다가 커브 도는데 차가 휙 돌아버리는 건 정말 무서운 경험이었다. 브레이크 밟아도 안되는거구나 이런 상황에선. 이런 안전교육은 우리나라도 좀 필요한 것 같다. 비록 교육비용은 2000크로나가 넘었지만....
주행연습은 매주 1-2회 하고 있긴 한데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고 있다. 교통법규 다 알고 누가 멈춰야 되고 내가 먼저 가야되고 이런 걸 알면 뭐하나, 난 그냥 다 양보해버리고 싶은 것을. 운전학원 선생님이 오죽하면 "니가 평소에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운전할 때만은 니가 가진 자신감을 다 끌어와서 '다비켜! 내가 운전한다 다비켜!' 이런 자세를 가져주면 안될까"라고 매번 말할 만큼...ㅠㅠ 포기하기엔 이미 돈을 너무 많이 부은데다가 오늘 필기 붙었으니 반년 안에는 주행시험 봐야된다. 고속도로 연습을 아직 한번도 안해봤는데 속도 높이면 바들바들 떠니까 선생님이 아직 못데려가고 있는 것 같다. 지난 주는 계속 제한속도 100킬로 길에서만 연습했는데 정신이 아득해지려는 걸 겨우 붙들었다. 내가 정말정말 겁이 많은 인간이었다는 걸 매번 느낀다. 남이 운전할 땐 100킬로로 달리든 말든 별로 빠르게 느껴지지 않는데 왜 내가 운전하면 80만 넘어도 바들바들 떠는가. 태어나서 해본 일 중에 운전배우는 게 제일 힘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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