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도 이제 사흘 남았다. 한 해, 한 해가 굉장히 크게 느껴지고, 새해가 시작될 때면 마치 아직 사용하지 않은 뭔가 커다란 선물을 받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래서 새로 시작하는 날들을 어떻게 채워나갈까, 어떤 다짐을 할까, 새해에는 어떤 사람이 되어볼까 열심히 새 다이어리에 적어보았던 때도 있었다. 지금 나에게 새해는 슬프게도 어떤 '선물'처럼 느껴지기보다는, '잘 헤쳐나가고 싶은' 기간... 정도로 느껴진다. 어떻게 하여 이렇게 되었나...
작년에도 딱히 새해 다짐을 생각하지 않았는데 올해도 이렇게 연말을 보내게 되었다. 나도 새해다짐이란 걸 해볼까 했지만 2021년을 맞이하여 도대체 뭘 새롭게 다짐하면 좋을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새해가 되어서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뭘 변화시키고 싶은가, 아니, 변하고 싶은가? 뭐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내 인생에서 더이상의 급격한 변화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걸 보니 나이가 들었...
그냥, 한 해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적어보자면
1월: 시끌벅적하게 파티를 하며 새해를 시작함. 사진을 보니 다양한 토닉워터를 시도하며 진토닉을 거의 매일 마신듯. 드림씨어터가 덴마크에서 콘서트를 해서 헬싱외르 가서 엄청 마시고 콘서트도 봄. 그것이 올해 마지막 덴마크 나들이였을줄이야...
2월: 코로나가 이야기 주제가 되었지만 아직 아시아 질병으로 취급받던 때. 그래서 여름에 한국가는 표도 예약하고 설마 4월에 가기로 한 이태리여행이 취소될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고 집사람은 여름에 더블린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축구경기까지 예약했었음.
3월: 슬슬 스웨덴에도 코로나가 퍼지기 시작함. 이태리가 난리가 났었으므로 4월 이태리여행은 이미 포기했지만 여름에는 집사람과 예정대로 한국에 갈 수 있을거라고 낙관하던 시기였음. 갑자기 대학 온라인강의로 바뀜. 알바도 온라인으로 바뀜. 봄이 좀 빨리 온 느낌이 들었는데, 3월 하순에 이미 명이나물 수확함. 처음으로 예테보리에 가봄. 그때는 정말 가도 되나 싶었는데 그때 여행 다녀오길 잘함.
4월: 이태리여행은 이미 취소되었고 한국가는 비행기도 막 취소되어서 우울해짐. 부활절 시즌에 감정곡선이 탄젠트 곡선이 됨.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정말 미친 거 같았음. 스타듀밸리도 미친듯이 함. 그래도 4월 하순에 유채꽃이 확 피어서 밖에 나가 자전거 타고 바다도 다녀오며 그럭저럭 지냄.
5월: 스웨덴 대학생에게 제일 힘든 달은 5월....... 그냥 모든 기말과제가 다 몰려있고 6월초에 시험보니까 그냥 공부만 해야하는 달임. 그와중에 날씨는 좋아서 사람 더 힘들게 함. 스타듀밸리를 가끔 하며 스트레스를 품. 드디어 집사람이 면허를 땀. 생일은 햄버거를 테이크아웃해서 먹으며 보냈나봄. 집사람이 생일축하한다며 카톡을 보냈는데 '생일 조까한다'고 보내서 빵터짐
6월: 비행기 세 번 취소됐지만 네번째 예약은 무사해서 한국에 가게 됨. 텅빈 코펜하겐 공항과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었던 인천공항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었음. 2주격리는 생각보다 할만했고, 그래도 이번 여름에 한국엘 다녀왔으니 내가 이번 하반기에 정신줄을 붙잡고 있었던 것 같음.
7월: 한국에서 놀다가 7월말에 스웨덴 돌아옴. 한국은 역대급으로 긴 장마여서 7주 내내 비가 왔는데, 스웨덴 오니까 덥고 날씨가 좋아서 놀람. 한국에서 매일 마스크쓰고 다니다가 스웨덴 와서 마스크 벗으니 그게 또 비현실적으로 느껴짐.
8월: 여름학기 온라인으로 듣던거 기말과제하고, 스코네로 휴가오는 친구들이 많아서 같이 놀고, 스몰란드 가서 며칠 지내다 오고 그러다보니 8월이 훅 감. 이번 8월은 날씨가 정말 덥고 좋았음.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한국으로 떠나며 자기가 쓰던 전자피아노를 싸게 넘김. 그토록 염원하던 피아노가 생겨서 매우 기뻤음. 운전학원 등록해서 다니기 시작함.
9월: 개강함. 여전히 대부분의 강의는 온라인이었지만 학교가야하는 수업도 있어서 종종 학교에 갔음. 친구와도 일주일에 한두번 학교에서 만나서 공부함. 친구결혼식 간다며 스톡홀름도 다녀옴. 알바도 온라인 말고 직접 사람들 만나서 함. 그냥 스웨덴은 이대로... 큰 제재없이 코로나 시대를 지나가려나 하는 기대가 있었음.
10월: 10월 초에는 심지어 사람 바글바글한 볼링장도 가고, 방탈출카페도 가고 외식도 자주 했음. 번아웃이 와서 힘들었기 때문에 그런 걸로라도 좀 풀고 싶었나봄. 운전이 마음먹은대로 잘 되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받음. 하지만 피아노를 치며 스트레스를 품. 아, 4월에 취소되었던 이태리행 항공권 환불해준다고 연락옴
11월: 확진자가 확 늘어나면서 학교에 안 가게 됨. 하지만 학원 알바는 계속 직접 가서 했음. 수강생 중에 80세 고령이 계셔서 그분한테 피해가 갈까봐 너무 무서웠는데 어학원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결국 내가 나서서 일부 온라인수업으로 돌림. 운전연습은 열심히 했지만 운전이 엄청 늘지는 않았고, 그래도 필기는 붙음. 이번 11월에 담근 김치는 역대급으로 맛있었고, 집에서 뭘 많이 해먹었음. 날이 어두워져서 맥주를 많이 마시다보니 살이 찜
12월: 매우 가까운 친구가 한국에서 결혼을 했지만 가지 못해서 우울했는데 유튜브 라이브로 결혼식을 봄. 매일 사프란빵을 먹고 크리스마스 맥주를 마시고 그러다보니 바지 한 치수가 늘어남....ㄷㄷㄷ 인생 최고 몸무게를 갱신함. 집사람의 누나와 함께 매주 주말에 10킬로씩 걷기로 다짐함. 룬드 트램 개통해서 지난 주에는 트램 길 따라서 7킬로 걷고 집에 트램타고 돌아옴. 11-12월은 이상하게 여유로워서(그렇다고 과제가 아예 없지 않았지만 지난 2년반동안 이 두 달이 제일 여유로웠음... 사람을 못만나서 그런가) 학교수업 말고도 딴짓을 이것저것 많이 함. 노래도 두 개 만들어서 녹음을 했고, 간단한 게임도 두 개 만들고, 1년동안 미뤄둔 개인 프로젝트도 후다닥 함. 과연 나는 섬머잡을 구할 수 있을까.
다짐을 하기엔 나는 너무 게으르고 귀찮으니까 그냥 '소망'을 써보자면,
진짜 이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게 언제 그랬냐는 듯 끝났으면 좋겠고, 그때까지 내가 아는 사람들 모두 안아프고 무사하면 좋겠다. 그리고 이 필기시험 유효기간이 끝나기 전에 내가 빨리 운전면허를 땄으면 좋겠고, 섬머잡도 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여름에 가기로 한 여행도 무사히 다녀오고 싶고, 그냥... 별 사건없이 무탈하게 흘러가는 한 해를 보내고 싶다.
Gott nytt år!
'일상 > 2020' 카테고리의 다른 글
3학년 1학기가 끝났다 (0) | 2020.12.18 |
---|---|
11월의 끝 (0) | 2020.11.30 |
11월 (0) | 2020.11.11 |
번아웃증후군 : 잘 쉰다는 것 (0) | 2020.10.21 |
2020년 10월 (0) | 2020.10.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