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많이 따뜻해졌다. 이미 2월 중순에 하얗고 노란 봄꽃이 피었고 그때부터 약 한달동안 좋은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이제는 더이상 날씨로 스웨덴을 디스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할 정도. 12월부터 헬스장을 끊어놓았지만 날씨가 좋아서 2월부터는 거의 안가고 집근처 공설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했다. 새로 장만한 겨울 트레이닝복이 마음에 들어서 더 따뜻해지기 전에 최대한 많이 써먹고 싶었다. 물론 이러다가 또 눈이 오겠지만 그래도 좋다. 낮이 길어져서 좋고 따뜻해져서 좋고 봄꽃이 피어서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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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심지어, 무거운 겨울외투 대신 두툼한 스웨터와 겉에 봄자켓을 입고 나갔는데 딱이었다. 주머니를 뒤적뒤적하니 영수증이 나왔는데, 아... 지난 가을의 영수증이네. '바다로 가서 주머니 속의 마른 모래를 털고 싶다'는 가을방학의 노래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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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요즘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은 매주 화요일 저녁 수영강습. 엄청난 발전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즐겁게 배우고 있다. 수영장은 선생님이 버튼을 눌러서 깊이를 조정할 수 있는데, 처음에 125cm였는데 이번 주에는 무려 142cm였다! '너무 깊은거 아닌가요'라고 중얼거렸는데 사실 내 키는 170....
평범하게 헤엄을 치다가 몸을 뒤집어서 배영처럼 가다가 다시 몸을 뒤집어서 헤엄치다가 다시 또 몸을 뒤집어서 가는 그런 걸 연습하고 있는데 뒤집을 때마다 물을 많이 먹게 된다. 숨쉬기 기술이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다. 한국에서 옛날에 수영을 배웠을 때와 제일 다른 점은... 여긴 물 속에서 아주 다양한 동작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 같다. 가라앉는 것도 연습하고, 바닥에 있는 링 통과하는 거, 물건 빨리 많이 주워오는 거 등등. 물속에서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것도, '요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세요. 가장 편한 걸 찾으세요' >_< 그래서 사람들이 헤엄치는 모습이 다 제각각이다. 여튼 정말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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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어서 반년만에 운전을 했다. 겨울에는 운전을 못하나...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겨울은 금세 어두워지니 오후에 운전하기가 왠지 겁이 나고 (어두우면 거리감각이 둔해지는 걸 자전거를 탈 때도 확실히 느낀다) 12월에 눈이 자주 왔었어서 빙판길이 겁이 나기도 했다. 그리고... 특별히 가고 싶은 데도 없었다. 이제 봄이 되니, 차를 타고 어딘가 멀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오랜만에 집사람 부모님차를 빌려 나갔다.
스웨덴에서 운전면허를 따면, 첫 2년동안은 일명 '테스트 기간'이라서 특별히 조심해야한다. 이 기간에 과속 같은 사소한 잘못이라도 했다가 재수없게 경찰한테 걸리면 바로 면허취소되고 필기시험부터 다시 봐야한다. 집사람은 그 기간이 이제 두달밖에 남았다며 몸을 더 사리고 있고, 덕분에 가는길 오는길 다 나 혼자 운전할 수 있어서 나는 좋았다...라지만 아주 엉뚱한 상황에서 시동을 한번 꺼먹고, 2단으로 바꾼다며 나도 모르게 기어를 4단으로 넣어서 차가 덜덜 거렸으며, 비보호 좌회전을 매우 용감하고 위험하게 해서 집사람의 아드레날린 분비를 촉진한 것은 안비밀... 와 그 좌회전할 때 경찰차가 주변에 없었던 게 정말 다행이다.
연습을 많이 해야겠지만 집사람의 부모님차를 혼자 빌리는 것은 눈치가 좀 보인다. 혼자 운전하는 걸 연습하려면 렌트를 해야 가능할 것 같아서 우리나라의 쏘카 같은 앱을 두개 깔고 비교해봤다. 다행히 둘다 룬드에 픽업포인트가 있어서 좋긴 한데, 한국의 쏘카만큼 전국구인 서비스는 스웨덴엔 아직 없나보다. 원래 했던 생각은, 룬드에서 헬싱보리까지 한 시간 타고 가서 반납하고, 거기서 밥먹고 좀 놀다가, 헬싱보리에서 다시 차 빌려서 룬드 와서 반납하면 2시간 정도 요금만 내니까(전기차를 빌리면 그렇게 해서 약 200크로나가 된다! M기준) 딱인 것 같았는데... M은 빌린 곳에서 반납을 해야하고, 그린모빌리티는 좀더 자유로운 것 같지만 스코네는 아직 룬드말뫼만 있는 것 같다. 쏘카처럼 전국 촘촘히 서비스되고 반납장소가 자유로운 게 빨리 생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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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시험기간이고 나는 정말 시험기간이 너무 좋다. 왜냐면 시험기간엔 과제가 없기 때문이지... 시험공부를 건성건성 하면서 그저께는 (지난 가을부터 시작한) 게임 결말을 드디어 봤고, 어제는 영화를 두편이나 봤다. 책도 아주 열심히 읽고 있는데 yes24북클럽에 있는, 한국 작가들이 단편 3편씩 묶어서 내놓는 시리즈가 정말 좋다. 3편밖에 안되니 금방 읽을 수 있고, 장르도 다양하고 재밌다. 어제는 심너울 작가의 '꿈만 꾸는 게 더 나았어요'라는 SF단편을 읽었는데, SF가 이렇게 재밌는 거였구나 알게됨과 동시에 인공지능에 대한 회의감은 더욱 깊어졌다. 역시 이건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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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이 다가옴을 느낀다. 졸업은 내년에 하지만 이미 지지난주에 학교에서는 졸업논문을 위한 프로젝트를 어떻게 시작하는지 설명회를 했다. 이번 봄에 수업 두 개를 마저 듣고, 가을 학기에 수업 두 개를 더 들으면 졸업요건을 채운다. 내년 봄 내내 졸업논문을 쓰니까, 내가 학교수업에서 뭔가 배우는 것은 올해가 마지막이다. 게다가 9-10월은 한국에 있을 거니까, 정말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듬과 동시에, 더욱 조급한 마음이 든다. 졸업할 준비도, 취업할 준비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학교가 이제 슬슬 나갈준비 하라고 예고하는 그런 느낌.
이번 섬머잡이 잘 풀렸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이번 여름에는 인턴십 같은 걸 못할 것 같다. 공고를 보고 대충 조건이 괜찮으면 다 넣었지만 한군데에서만 연락이 왔고, 그 곳도 뭐... 딱히 나를 맘에 들어해서 연락했다기보다 일단 1차 면접자를 엄청 많이 불러놓고 거른 것 같다. 뭐가 문제였을까...를 생각하며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을 느꼈지만, 지금 생각하니 차라리 아무것도 안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섬머잡 지원했던 건 다 머신러닝과 관련된 일이었지만, 사실 지금은 졸업 후에 정말 머신러닝과 관련된 일을 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번 여름에는... 코스 두개 들으면서 구체적인 진로를 탐색하고, 친구랑 좀더 대화를 많이 하면서 졸업논문 뭐 쓸지 대강 방향을 잡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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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일을 안한다고 생각하니 좋긴 했는데, 지난 주에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스웨덴 크로나환율 훅훅 떨어지는 거 보니 굉장히 불안하기도 했다. 가을에 한국에서 마음편히 놀러다니고 하려면 역시... 양로원 알바라도 좀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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