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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2022

스웨덴어에 있었으면 하는 한국어 표현들

by Bani B 2022. 4. 5.

이 글은 한국어/스웨덴어 표현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 들어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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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했어 오늘도

'수고했어'라는 단어가 스웨덴어에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Bra jobbat'이라는 표현이 있지만, 왠지 그 말은 '잘했어'에 더 가까운 것 같다. 'Tack för ditt hårda arbete'는 좀 무겁고 길지 않나? 집사람이 일하고 와서 힘들었던 얘길 늘어놓을 때 쓸말은 더더욱 아닌 것 같다. 그냥, '수고했어' 한마디를 하고 싶은데... 그리고 남들 수고할 때 먼저 떠나는 상황에 그냥 가볍게, '그럼 수고해!'를 외치고 싶은데...
'수고했다, 고생했다', 이런 말들은 '苦'라는 말이 들어가서 그런가, 힘듬을 견딘 것에 대해 칭찬하는 느낌이 더 들어서 좋다. 그리고 '수고하세요'라던가 '수고해'라는 말은, '당신이 지금 열심히 일하는 거 알아요, 힘내요'라는 느낌이 있어서 좋은데, 그런 단어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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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올게'라는 단어도 필요하다! 구글번역에서 '다녀올게'를 번역하면 'Jag kommer tillbaka'가 나온다. 아 그래 뭐, 뜻은 맞지. '다녀와'를 검색하면 'gå bort'가 나온다. 이건 많이 아니잖..... 아직 구글번역이 갈 길이 멀다.
'다니다'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봤다. 한국어를 가르칠 때 '다니다'라는 단어는 의외로 꽤 이른 단계에서 등장한다. 교통에 대해 가르치는 단원에서 이미 등장하는데, 어쨌든 '어딘가 갔다가 조금 머물고 다시 돌아오는 걸 다닌다고 한다'고 하면 대부분 잘 알아들었다. 학교에 다니는 것도, 회사에 다니는 것도, 학교나 회사에 사는 게 아니라 거기 몇시간 있다가 다시 집에 올거니까 '다니다'라고 하는 거니까. (그러고 나서 집에 오는 길에 '길에 사람이나 버스가 '다니는' 건 어떻게 설명하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어사전에서 '다니다'를 찾으면 뜻이 꽤 많이 나온다.)
어쨌든, '다녀오다'할 때도, '나는 밖에 오래오래 머물지 않고 아주 가는 거 아니고 다시 여기로 머지않은 미래에 돌아오겠다'는 뜻이 있는 것이다. 일종의 '소속감'마저 든다. 다녀올게,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나를 잘 기다려줘, 라고 하는, 상대방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다녀와' 역시 그렇다. '네가 밖에 오래 있지 않을 것을 알아. 곧 보자'라는 말이 아닌가. 혼자살 때는 몰랐지만 누군가와 같이 살게되면 자주 하게 되는 말.
집사람도 이걸 느꼈는지 이제 '다녀와' '다녀올게' 다녀왔어'를 말할 상황에는 꼭 한국어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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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겠습니다'가 있었으면 좋겠다. 특히 남의 집에서 대접받을 때 이 말을 하고 싶다. 하지만 Tack för maten은 다 먹고 하는 말이고... 식전에 하는 말은, 호스트가 '많이 먹어요' 하면 'Tack!'정도나 하지 않나. 허전해! '잘먹겠습니다'를 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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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공사중인 룬드대성당. 저거 뗐을 때 든 생각이 ‘신기하다’


'신기하다'...라는 말이 따로 있으면 좋겠다. 나는 '신기하다'와 'intressant'는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뭐랄까... '신기하다'를 저렇게 번역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상 intressant나 spännande가 '신기하다'를 의미하지는 않으니까. 그럴 때마다 '신기하다'라는 말이 갖는 그 놀람의 감정이 좀 퇴색되는 것 같다. 그냥 흥미로운 것 따위가 아니라고! 신기한 건... 흥미롭다못해 좀 놀랍기까지 한 그런 감정인 건데... 세상에 신기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다 인터레스팅 따위로 말할 참이야?

'생기다' 역시 마찬가지. 돈이 생긴다던지, 남친이 생긴다던지, 뭔가 생긴다는 건 '없던 것이 새롭게 있게 되는 게' 아닌가. 물론 'hända'라는 말이 있겠지만 그건 뭔가 '발생하다'는 느낌이 아닐런지... '내가 나중에 집이 생기면...'이라고 말하는 것과 '내가 나중에 집을 사게 되면...'이라는 것은 왠지 느낌이 다르다. '돈이 생겼어'라고 말하는 거랑 '입금 들어와서 돈이 있어'라고 하는 것도 다르다. '남친 생겼어'라 '남친과 교제를 시작했어'도 다르다. 나는 왜 이 '생기다'라는 말이 좋은지 딱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이 '생기다'라는 말이 주는 느낌이 좋다.


+번외인데
'스웨덴에는 lagom이라는 표현이 있다구! 매우 스웨덴적이지!'라는 사람들을 그동안 몇 만났다.(집사람 포함) 누군가는 '이건 스웨덴어에만 있는 표현이야!'라고까지 했다. 처음에는 '그래? 그래서 lagom이 뭔데?'했지만 그게 그냥 '적당히'라는 뜻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땐 "??? 한국사람들도 '적당히 해라' '작작 해라'라는 표현을 많이 하는데?"하고 생각했다. 스웨덴 사람들이 적당히, 튀지않게 사는 걸 좋아하니 그러려니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당히'라는 표현이 꼭 스웨덴에만 있는 건 아니지 않나? 한국 레시피 한번 보라고! '적당히' '알맞게' 조미료 넣으라는 레시피들을 보면 이게 얼마나 한국적인 표현인가 싶을텐데...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딱 'lagom är bäst'아닌가? 

   그러므로 lagom이라는 말이 스웨덴어에만 있는 건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이걸 왜 스웨덴적인 표현이라고 스웨덴사람들이 말하는지는 알 것 같다. 한국에는 '적당히'라는 표현은 있어도 사람들이 적당히 안하지만 스웨덴은 정말 사람들이 일도 적당히 하고 그냥 다 적당히 한다. 뭔가 좀 많이 열심히 하거나 내 자신을 밀어부치거나 하면 오히려 그걸 걱정해주거나 '적당히 쉬엄쉬엄해'라고 말하니까. 

   그건 그렇고 내가 열흘 전에 산 게임 도대체 언제 오냐고....... 일 이렇게 적당히 쉬엄쉬엄 할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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