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웨덴 생활 팁/구직,학업 관련

스웨덴에서의 두번째 인턴 후기 (+지원 팁)

by Bani B 2022. 8. 17.

작년에 했던 섬머잡에 대해서 그렇게 길게 쓰지는 않았어서, 스스로 정리도 해볼 겸 적어보려한다.

출근길 또는 등교길… 룬드는 작아서 그길이 그길이다


한국에서도 대학생들이 여름방학에 인턴을 하지만 여기는 뭔가 더 많이 대대적으로 섬머잡 인원을 뽑는 분위기이다. 여름 인턴 성격의 섬머잡일 수도 있고, 양로원에서 어르신들을 돕는 일이라던가 청소하는 일 등의 경우 정말 '휴가가는 인력 땜빵, 실전에 바로 투입'하는 성격으로 섬머잡을 뽑는다.
동기들 중에 처음에는 간단한 파트타임 보조업무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풀타임으로 실전에 투입되어 일하는 실력좋은 애들도 있지만 보통은 실전에 바로 투입될 정도는 아니므로 이 업계는 '인턴' 성격의 섬머잡을 많이 채용하는 것 같다. 작년에 일했을 때는 포지션 이름이 아예 '테크 인턴'이었고, 올해는 '엔지니어 보조'라는 타이틀로 섬머잡을 했다. 그래서 아래 쓸 내용도 엔지니어 섬머잡에 해당하는 이야기이지, 다른 업계는 좀 다를 수 있다.

지원하기
다른 글에서도 썼던 것 같지만 이 나라 섬머잡 채용은 빠르면 1월 중순에도 벌써 시작을 하고,(IT업계 얘기다... 간호 이런 쪽은 인력이 딸려서 이미 12월부터 채용공고 올라옴) 대다수의 회사가 2월에 채용공고를 올린다. 이미 발빠른 애들은 11월에 있는 취업박람회부터 벌써 회사들 컨택한다. 여튼 3월이면 1차 합격자 발표를 하고, 4월즈음에 대충 채용을 확정짓는 분위기이다. 그러니 섬머잡이라고 해서 4-5월 이때까지 기다릴 생각말고 겨울부터 미리미리 관심있는 회사들 링크드인 다 추가해놓고 봐야한다.

섬머잡 시작을 앞두고 한국 개발 인턴 후기 같은 걸 막 찾아서 봤는데 아니 거기는 무슨 밤을 새서 프로젝트를ㄷㄷㄷ 이미 인턴 면접 문제부터가 말이 안됐다. 으아니 한국은 진짜 이런 거 다 알아야 인턴 시켜줘요?? 그거 다 대답할 수 있으면 걍 당장 취업하면 되는 거 아닌가...? 나는 과연 얼마나 잘 대답할 수 있을까.. 공부 안한 자신을 좀 반성했다. 스웨덴 회사들은 별로 인턴한테 바라는 게 없고, '별로 아는 게 없을 것이다'를 전제로 질문을 하는 느낌이었다. 작년에는 기술면접이라고 했었는데 전혀 기술면접 아니었고 '학교에서 무슨 과목 배웠어? 아 그럼 언어는? 프레임워크는? 아 그렇구나. 넌 뭐가 제일 재밌었는데? 앞으로 뭐 더 배우고 싶어?' 이 수준이었다. 올해는 내가 했던 사이드프로젝트에 관련한 질문을 몇개 던지긴 하셨지만 그것도 심오한 질문은 아니었고 '오 그건 어떻게 배웠어? 학교에 웹 관련 과목 없을텐데?' 정도였다. 내가 아주 궁금한 건... 과연 내년에 취업을 준비할 때 신입에게는 이 이상의 질문을 할 것인가...

회사 분위기에 따라 질문도 많이 다른 걸 느꼈다. 이 나라도 대기업 면접 문제는 조금 진지하고 어려웠다. (내가 아는 게 없어서 그랬을지도...) 토목과 친구는 어떤 대기업 면접을 3차에 걸쳐서 봤다 했다. 여기도 이제 인적성테스트 보는 데가 많아지는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여름에 일한 회사는 그냥... 내가 뭘 좋아하고 취미활동은 뭘 하는지, 학교에서는 무슨 수업을 제일 좋아했는지, 스웨덴에 온 후 적응과정 같은 걸 물어봤다. 작년에 면접 본 두 회사도 그런 걸 많이 물어봤다. 나를 왜 뽑았냐했더니 '프로그래밍 말고 뭔가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에너지를 쏟는 일이 있는 사람을 면접에 불렀다'고 했다. ...원래 내 이력서에는 취미 같은 거 없었지만 이력서 첨삭 받았을 때 '웬만하면 취미도 써라, 그런 거 좋아하는 회사도 있다'고 귀띔해줘서 부랴부랴 ‘여러가지 언어 배우고 가르치는 거 좋아함, 피아노 둥당거리는 거 좋아함’을 적었는데 그게 진짜 효과가 있었을 줄이야... 어쩐지 면접에서도 이걸 언급하더라. 여튼 이력서와 자소서는 노동조합에서도 학생들 대상으로 1년에 한두번 첨삭 서비스를 해주고, 아는 사람한테라도 한번 보여주고 수정하는 것을 추천한다. 스웨덴 회사들이 좋아할만한 포인트를 집어줄 수도 있으니까.

언어능력은 말해뭐해... 잘하면 무조건 좋은거다. 다만 스웨덴어를 조금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걸 적극 어필하는 게 당연히 좋다. 작년에는 팀 내에 스웨덴 사람보다 외국인이 더 많았어서 영어를 쓰는 게 당연했고 스웨덴 사람들끼리도 영어를 썼고 회사 전체 공지도 항상 영어로 올라왔는데, 올해 일한 회사는 공지는 영어로 올라오고 글로 쓰는 것도 다 영어로 쓰지만 회사 안에서 영어를 들어본 적이 손에 꼽는다. 룬드 사무실에 외국인이 나 말고도 서너 명쯤 더 있었지만 한 명 빼고는 다 스웨덴어를 어느정도 할 줄 알아서 다들 너무 당연하게 스웨덴어로 말을 걸었다. 팀 내에도 나 말고 외국인이 한명 있었는데, 그분도 스웨덴어 청취는 가능하신지 다들 스웨덴어로 얘기하고 그분만 영어로 대답하셨다. 여튼 내 생각에는... 실력이 있다면 영어만 해도 취업에는 문제는 없겠지만, 섬머잡/인턴을 노리는 입장에서는 스웨덴어를 하는 게 확실히 보너스가 될 것 같다.
아... 비자는 이미 있어야 할 것 같다. 학생비자든 삼보비자든 뭐든... 섬머잡 하는 사람에게 회사가 비자 서포트해준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고, 회사 홈페이지에서 지원할 때나 나중에 면접 볼 때 등등, 스웨덴에서 일할 수 있는 비자 가지고 있냐고 물어본다.
솔직히 스웨덴은 학연,혈연,지연이 우리나라보다 훠어얼씬 세게 작용하는 나라다. 우리나라처럼 공채 이런 게 없기도 하고... 공고가 올라와도 내정자가 이미 정해져있는 경우도 있다. 공고 안올리고 그냥 아는 사람 통해서 구하려는 경우가 많고, 주변에 섬머잡 했다는 애들 말 들어보면 대부분이 '친구가 이미 거기 일하고 있어서' '형이 거기서 일해서' 등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학연도 무시못함... 이번에 일한 회사는 LTH 출신이 절대 다수었고 심지어 외국인들도 룬드에서 석사나 박사한 사람들이었다. 스몰토크도 자연스럽게 '무슨 수업 들었어? 아 그 교수님ㅎㅎ?' 뭐 이런 식으로 흘러가고... 룬드 회사라서 그런가... 하긴 여기는 시장은 상대적으로 작은데 대학 때문에 졸업생은 매년 쏟아지는 동네라 섬머잡도 경쟁이 세니, 스톡홀름 같은 대도시 가면 좀 다를 수도 있겠다. 결론은... 대도시에 가세요...

회사 생활
작년에는 플랫폼팀 인턴이긴 했는데 나는 시작하는 날까지도 데브옵스가 뭔지도 몰랐다. 팀에서도 딱히 내가 그걸 알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냥 그 팀 사람이 멘토링에 관심이 있고 나를 멘티로 삼고싶어해서 거기 끼게 된 거였다. 그래서 팀사람들이랑 그닥 소통한 기억이 없다. 5주밖에 안되기도 했고, 그 팀 인턴이 나 혼자였기도 했고, 내가 3학년이기도 했고 그래서 과제가 그리 크지 않았다. 프로젝트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 그냥 멘토가 매일매일 나에게 새로운 걸 과외해주는 느낌이었다. '오늘은 perl로 뭘 해볼까? 정규표현식이 뭔지는 아니? 모른다고? 훗 알려주지' '너 도커가 뭔지는 아니? 그걸로 sql서버 설치해볼래?' '너 쿠버네티스가 뭔지는 아니? 모른다고? 그렇다면 알려주지 kubectl 치면서 놀고 있어봐' 뭐 이런 느낌이었다. 자바스크립트로 이것저것 시키는 대로 기능 하나하나 만들었더니 뭔가 만들어져서 좀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다만 재택이라 사람들을 만난 것도 아니고, 매일 얘기하는 건 멘토뿐이라서 조금 심심하긴 했지만... 그만큼 멘토랑 조금 더 끈끈해졌던 것도 있는 것 같다.

올해에는 소프트웨어 팀 인턴이었고, 매일매일 회사에 가서 아침회의도 가고 점심도 먹고 커피 내리면서 사람들이랑 얘기도 해서 뭔가 소통을 많이 했다. 그리고 그분들이 프로그램 하나를 아예 새로 만들고 계셔서 그거 구경하는 것도 재밌었고 아침회의 구경하는 것도 더 재밌었다. 인턴도 우리팀에 나 말고 두 명이나 더 있었고, 프로젝트 하나를 우리가 주도적으로 하는 거라 책임감도 생기고 더 잘하고 싶었다. 데이터베이스 백업하는 툴을 웹으로 만드는 프로젝트여서 백엔드,프론트엔드 둘다 많이 배웠다. C#, Blazor를 사용했는데, 블레이저는 완전 초면이었지만 배우기 쉬웠다. 제일 큰 수확은 아무래도 협업하는 방법을 배운 게 아닐까. 학교에서 2학년 때 여덟명이서 두달동안 하는 프로젝트가 있긴 했지만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배운 것 같다. 사실 처음 2주는 셋다 git 충돌에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서 매번 복도 지나가는 시니어 한명씩 붙잡아 해결했지만...
팀에 UX/UI디자이너 인턴이 한명 있었던 것도 좋았다. 그 친구가 여러가지 예상 시나리오 같은 걸 정리하고 뭘 눌렀을 때 뭐가 보여야 하는지 등등 자세하게 설계도 같은 걸 만들어줘서 일이 쉬웠다. 게다가 일의 우선순위를 정한다거나,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내서 미팅을 바로바로 잡는다거나 하는 역할, 우리가 매주 발표할 때 받은 피드백을 잘 정리해서 우리끼리의 회의를 주도하기도 하고... 게다가 분위기 메이커...! 여튼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 배울 게 많은 친구였다.

다만... 스웨덴 여름에는 사무실이 텅-빈다. 정말로 텅........ 작년에도 그랬다. 인턴 끝나고 노트북 반납하러 사무실 갔는데 정말 텅 비어있었다. 올해에도 그나마 6월에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7월이 되자 다들 휴가를 가기 시작했고, 7월 어떤 주에는 팀에 물어볼 사람이 없기도 했다. 우리 보스는 이미 6주차부터 사라졌었고, 일을 마치는 날까지 팀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프레젠테이션을 8월 말에 따로 하기로 했을 정도다. 그러니 뭔가 인맥을 쌓고 싶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으면 그들이 한명이라도 사무실에 있을 때 빨리빨리 해야한다.

얻은 것
작년 섬머잡도 값진 시간이었지만 올해는 더욱 뜻깊은 시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 무엇보다... 나를 그렇게 괴롭히던 조모임 트라우마에서 이제 벗어난 것 같다. 1학년 때는 프리라이더 때문에 힘들었고 2학년 때는 내가 쓴 코드 싹 다 지워버리고 지맘대로 혼자 다시 써내려가는 독불장군 때문에 상처받았고, 3학년 때는 코드를 올려놔도 테스트해보기는커녕 '음? 니가 뭘 했다고? 코드를 썼다고?' 라며 아예 무시하는 애들을 만나서 조모임에 학을 뗐다. 그래서 거의 모든 과제를 친한 친구와 둘이서 팀을 꾸려서 했고, 마음 한편으로는 '내가 정말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게 가능할까? 나는 어쩌면 친구가 아닌 사람들과 일하는 게 불가능한 게 아닐까?'하는 불안함이 늘 있었다.
회사 첫날, 같이 개발할 애들이 스웨덴 남자애 두 명이라서 약간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왜냐면 나에게 트라우마를 안겼던 그 3학년 조모임이 스웨덴 남자애 세 명이랑 했던 것이었으니까. (사실 내 코드를 쳐다도 보지 않고 지들끼리만 이야기하는 일은 1학년 때도 겪었지만 그들은 자퇴했으니 내가 승자다ㅎㅎ) 여튼 그래서 이 나의 새로운 동료들도 그런 류의 무례한 사람들일까봐 미리 걱정을 했었다. 게다가 그 둘은 같은 과라서 이미 아는 사이였지만 나만 다른 과였고. 처음 며칠은 그들도 나를 잘 모르니까 나한테 말 거는게 그렇게 편해보이지는 않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친구들도 편하게 말걸어주고, 무엇보다도 자기 생각을 돌려말하지 않고 솔직하게 얘기해줘서 커뮤니케이션이 편해졌다. 막히거나 헷갈리는 부분은 셋이서 항상 같이 의논했어서 내가 동등하게 존중받으며 일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코드리뷰를 받는 것도 아주 큰 공부가 되었다. 학교에서 과제를 제출하면 조교의 피드백을 받기는 하지만, 조교가 내 코드를 그렇게 하나하나 뜯어보고 코멘트해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 일하면서는 매번 내 코드에 코멘트가 엄청 달려서 놀랐다. 아주 사소한 것부터 (첫 코멘트는 네이밍 컨벤션에 관한 거였다... 이름을 대충대충 지으면 혼난당...) 이것저것 조언도 해주고 링크도 찾아서 공유해주고... 누가 내 코드를 이렇게 매번 뜯어봐주는 거 처음이야... 우리를 주로 담당하던 것은 매니저였지만, 팀 다른 분들도 종종 우리 코드를 읽고 코멘트를 열심히 달아주었다. 거기서 배운 게 정말 많다.

아 뭐야 왤케 길어졌지. 마무리를 어떻게 할지 모르겠지만... 알찬 여름이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