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024년 새해가 밝았다. 남편은 육아휴직 전 마지막 근무로 새해 마지막날 밤근무를 택했고, 그래서 2023년 마지막날은 아가와 둘이서 오붓하게 보냈다. 남편이 출근하기 전에 시댁에서 다같이 이른 저녁을 먹어서 쓸쓸하지는 않았다. 아가는 밤 10시쯤에 잠들었고, 매년 연말마다 그랬듯이 골목마다 공터마다 폭죽을 요란하게 쏴댔지만 아기는 쌔근쌔근 잘 잤다. 다만 내가 잘 못잤지ㅠㅠ 아가가 꺨까봐 걱정된 것도 있고 폭죽 소리가 요란해서 잠들기가 어려웠다. 잠이 다 깨고 나니 그 다음에는 온갖 걱정이 밀려와서 몇시간 못자고 일어난 것 같다.
오늘은 목요일. 이제 금토일 사흘 지나면 첫 출근하는 날이다. 앞으로 9개월간 남편이 주양육자가 될 테고 웬만하면 그의 방식을 따르고 존중해주리라 마음을 먹었건만, 요 며칠 벌써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 게 한두번이 아니라 걱정이 된다. 내가 아기 울음소리를 그렇게 못참는 사람이었구나, 새삼 깨닫기도 했다. 나라고 뭐, 아기가 울 때마다 바로 달려가서 달래주지는 않고 웬만하면 좀 기다려서 아기가 스스로 그치기를 기다리는 편인데, 그 기다리는 시간이 남편은 나에 비해 매우 긴 것 같다. 아니, (내 시선에서 보기엔) 애가 오래 울든 말든 신경을 안쓰는 것 같고 자기가 하려고 했던 일을 다 하고 나서야 아이를 들여다본다. 그러면 나로서는 '아니, 청소기를 마저 돌리는 게 그게 그렇게 중요하냐고. 잠시 중단했다가 이따 돌려도 되잖아'하고 짜증이 나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를 굳이 그렇게 금방 달래줘야할 필요는 없는데 내가 아기 울음소리를 오래 듣기 힘들어서 그런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아이의 하루일과에 대해서도 그렇다. 처음에는 나도 아기의 하루일과를 기록하는 어플을 몇주 썼다가 귀찮아서 안쓰고 있긴 한데, 그래도 대충 아기의 루틴이 잡혀있는 상태고, 그 루틴을 지키는 데 좀 신경을 쓰는 편이다. 정확히 지킬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내가 제일 신경쓰는 건 낮잠시간인데, 낮잠을 충분히 재우지 않으면 저녁에 굉장히 짜증을 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낮잠을 안자려 발버둥을 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재운다. 누워서 안자려고 하면 안아서라도 재운다거나... 낮잠을 보통 세 번 자는데, 두 번은 짧게 자더라도 충분히 길게 자는 낮잠이 한번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남편은 뭐랄까... 안자면 어쩔 수 없지, 또는 '울게 냅둬. 울다가 지쳐 자겠지'주의다. 물론 그렇게 해도 아기가 아주 잘 자랄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긴 한데... 내가 신경이 쓰여서 견딜 수가 없다!
밤잠도 그렇다... 아기는 다행히 요즘 밤잠을 길게 잘 잔다. 9시에 재우면 5시까지는 쭉 잔다. 5시쯤 자기 입에 쪽쪽이가 없다는 걸 깨닫고 낑낑거리는데, 나는 그 소리에 바로 깨는 반면 남편은 아주 잘 잔다. 근데 이걸 뭐라고 할 수가 없잖아? 그냥 내가 더 잘 깨는 건데? 그렇다고 내가 깰 때마다 옆에서 잘 자고 있는 사람을 굳이 깨워 '가서 쪽쪽이 좀 물려'라고 하기도 그렇고. 아기를 늦게 재우면 늦게 깨지 않을까 싶어서 열시반에 재워보기도 했는데 똑같이 4-5시쯤 깨서 낑낑거린다. 출근하게 되면 웬만하면 여섯시까지는 푹 자고 싶은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남편의 태도 중 가장 부러운 점이자 얄미운 점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운동할 시간은 지켜야한다'는 것인데, 저녁근무를 한 후에 헬스장을 가서 운동하고 오면 거의 밤 12시가 되어있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그 사이에 이미 아기와의 실랑이를 마치고 아기를 재운 후인데, 이 노고를 그가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처음에는 '감히 헬스장을 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부모의 일상에 아이가 들어오는 것이지, 아이를 위해 부모가 일상을 송두리채 바꾸지는 말아라 하는 육아팁들을 기억하려 애썼다. 여름휴가 계획도, 그는 혼자 가는 하이킹을 벌써 계획하고 있는데 솔직히 백 퍼센트 이해가 되는 건 아니지만, 뭐... 아이가 생겼다고 해서 모든 걸 포기할 필요는 없지, 하며 이해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나도 일주일동안 어디 혼자 가고 싶기는 한데, 과연... 아기가 신경쓰여서 제대로 놀 수나 있을까. 신경 안쓰고 나도 다른 것에 집중하는 연습을 좀 해야할텐데.
그래서 조금씩, 아기와 떨어져서 다른 것을 즐기는 연습을 해보고 있다. 지난 주에는 혼자 영화관에 가서 지브리 새 영화를 보고 왔고, 오늘은 도서관에 와서 책을 좀 읽고 이렇게 블로그에 기록을 남기고 있다. 집에 있을 때에는 남편이 아기를 데리고 뭘 하든 개입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 방식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으면서 함께 잘 해나가는 것이 말만큼 쉽지 않다. 육아 브이로그를 너무 많이 봤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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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앉아있으면서 새해 계획도 이제서야 찬찬히 생각해본다. 불꽃놀이를 보고 나서 잠이 오지 않는 새해 새벽을 맞이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좋은 부모란 건강하고 오래 사는 부모가 아닐까'였다. 그래서 건강한 엄마가 되기 위해 운동을 꼭 하기로 했다. 수영장에도 다닐 거고, 회사에 있는 헬스장에도 가야지. 2월부터는 조깅도 조금씩 시작해볼 생각이다.
그리고 경제 공부를 조금 해보기로 했다. 이제 드디어 돈을 벌기 시작할텐데 저축을 어떻게 해야 잘 하는 것일지 이것저것 찾아봤지만 모르는 것 투성이다. 아기 앞으로 나오는 아동수당도 따로 저축하고, 내 노후를 위한 저축도 시작을 해야할텐데 이때까지는 그런 고민을 해본적이 없어서 관심도 없었고 찾아보지도 않았다. 관련된 책을 좀 읽고 공부해봐야겠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너그러운 사람이 되기로. 너무 높은 기준을 세우고 자신을 다그치고 미워한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아기를 키우면서도, 내가 생각하는 '좋은 부모'의 기준을 다 따라가지 못하는 나 자신을 자책하기도 했다. (애가 이제 백일 지났는데 벌써부터 그러면 어쩌나...) 아마 이제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 종종 '일을 내가 잘 못하는 것 같다', '스웨덴어가 아직도 많이 부족한것 같다' 등 더 공부하지 않고 더 잘하지 못하는 나를 탓하려할지도 모르지만, 이 결심을 적어놓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괜찮다'고 다독일 수 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부부의 일상에 아이가 들어온 것. 부부가 주인이고 아이는 손님이다'라는, 소아과의사 유튜버 하정훈쌤의 말을 꼭 기억해야지. 너무 아이에게 모든 걸 맞춰주지 않고, 남편의 육아를 응원하며 팀플레이를 해야지. 프리라이더 말고 좋은 팀 멤버가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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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30분만 더 읽고 집에 들어가야지. 2024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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