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한지 2주가 지났다. 이미 두 번이나 섬머잡을 해서 이 회사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보다… 섬머잡할때도 꽤 많은 교육자료가 주어졌지만 꼭 끝내야하는 건 아니라서 보다가 말았는데 이젠 정직원이니 보아야만 한다… 읽어야할 문서+교육자료가 굉장히 많은데 아직 멀었다. 2월말 전에는 끝내보자…
팀도 마음에 들고 팀이 하고 있는 일들도 다 흥미롭다. 수평적인 조직문화도 좋고. 내 멘토는 팀에서 가장 연장자인 아빠뻘인 분인데, 재작년에도 같은 팀이었어서 그때도 느꼈지만 진짜 꼰대같은 느낌이 1도 없다… 옛날에 한국 회사에서 1-2년 차이 나는 사람들한테도 밟혔던(!) 경험 때문인지, 그때 경력이 엄청 많고 직급 있는 분들께는 ’감히‘ 말을 섞기도 어려웠던 경험 때문인지, 나이가 많거나 경력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나 유쾌하게 젊은 팀원들이랑 어울리는 모습은 봐도 봐도 나에겐 새롭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물론 이 회사도 다니다보면 장단점이 보이겠지만, 두 번의 여름동안 무슨 질문을 해도 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좋았고, 아무도 나를 멍청하다거나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을거라는 확신이 들어서 이 회사에서 계속 일하고 싶었다.
다만… 첫 업무가 너무 새롭다. 두 프로젝트에 5:5로 참여하라 했는데 하나는 머신러닝이고 하나는 c++라서 당황했다… 지난 두 번의 섬머잡을 다 C#으로 했던데다가 이 팀이 주로 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관련이 있으니 적응이 쉽겠거니 생각했어서 더욱 당황스러웠다… 면접 때 ‘머신러닝 어떻게 생각해? C++ 어때?’라는 질문들을 가볍게 생각하고 “시켜만 주십쇼 열심히 배우겠슴다” 했는데 진짜 이렇게 될 줄이야..? 머신러닝은 이 팀에서 이 업무를 전담하던 사람이 나가는 바람에 이렇게 된 거 같고 새로 뽑을 때까지 나를 가르치며 굴릴 생각인 것 같다… 하지만 이 팀에는 이 부분에 대해 날 도와줄 사람이 없으므로 다른 팀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물어봐야하는 상황인데, ’다른 팀‘ 사람들이라 자주 많이 물어보는 게 좀 눈치가 보인다ㅠㅠ 빨리 시니어 뽑아주세요
그리고 C++는 정말 초면이라 책이나 인강 하나 훑고 천천히 시작하려던 중에… 나를 빨리 가르쳐서 굴리고 싶었던 센빠이가 와서 열심히 칠판에 설명을 하더니 ‘자 이 버그는 이제 네 꺼야. 얼른 잡아보도록 하자’하며 쥐어줬다. >_< 내 손에 들어왔으니 빨리 해봐야할 거 같아서 일단 뭔가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이 언어가 너무 낯설어서 계속 검색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린다. 포포포…포인터라뇨 저는 포인터가 싫어서 C로부터 멀리 도망쳐온 사람인데요… 걍 지난 여름에 했던 거랑 비슷한 거 시켜주심 안되나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차마 입밖으로 낼수는 없었다. 열심히 배우겠슴다!했던 건 나였으니까 >_<
두 프로젝트에 5:5로 참여하라는 말은 즉, 일주일에 40시간 일한다 치면 20시간/20시간씩 잘 나눠서 일해보라는 건데 둘다 너무 어려워서 10:10으로 일한 느낌이다… 이래서 면접 때 ’멀티태스킹 잘하냐 한번에 여러가지 프로젝트 하는 거 어떻게 생각하냐‘ 물어본 거구나.
일 시작한지 2주도 안된 대졸신입이 하기엔 너무 빡센 게 아닌가 싶은 것들을 하게 되어서 스트레스를 좀 받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정작 저 사람들은 내가 이걸 금방 해낼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내가 너무 금방 적응하고 싶어서, 빨리 뭔가 보여주고 싶어서 나를 닦달하나‘ 싶기도 하다. 나의 오랜 동반자인 임포스터 신드롬도 오랜만에 나타나서 스트레스에 한몫 기여하고 있고. 하루종일 외국어로 얘기하고 오면 진이 빠진다. 휴우…
그래도 배울 게 많다는 건 좋은 일이다. 내가 앞으로 하게 될일이 뭔지 일찍 알아서 좋고, 뭐부터 배워야하는지도 구체적으로 알아서 좋다. 담주도 힘내보자…
또 하나의 컬쳐쇼크는… 여름에 한국가는 비행기표를 예매해야하는데 입사한지 얼마 안되어서 이걸 논하는게 괜찮을까 하고 고민을 좀 했다. 결국 입사 5일차에 팀 매니저한테 얘기했는데, “언제쯤인데? 구체적으로 날짜 정해지면 알려줘.” …나로서는 ‘허락’을 먼저 받고 비행기표를 살 생각이었는데, 구매하고 나서 알려달라는 말이 좀 충격적이었다… 그것도 8-9월에 3주간 갈거라고 얘기했는데? (이 회사는 연간휴가가 6주다.) 그래서 바로 비행기표 사고 결재 올렸는데 바로 승인됨. 와우…
이 회사의 좋은 점은 모두에게 개별 사무실이 주어져서 저렇게 혼자 앉아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루종일 사람을 못봐서 외향적인 사람이라면 심심할수도 있음) 방해받지 않고 열중할 수 있어서 좋지만 하나의 단점이 있다면 내 방은 중앙 로비뷰라서 하루종일 햇빛을 못본다는 것. 점심마다 나가서 산책이라도 해야할까 싶다.
하지만 올해는 눈이 너무 자주 많이 와서 요즘엔 산책이 쉽지 않다ㅠㅠ 룬드 7년 넘게 살면서 눈 이렇게 많이 자주 오는 거 처음 본다. 보통 눈이 와도 다음날 비 오면서 바로 녹는데, 영하로 떨어지는 날도 많아서 계속 길이 얼어있다. 일찌감치 자전거 포기하고 한달 정기권 산 거 잘한 듯… 자전거를 타도 15분, 트램을 타도 도어투도어로 15분이지만 웬만하면 자전거 타면서 몸을 더 움직이고 싶은데 언제쯤 가능하려나.
아기는 아빠와 아주 잘 지내고 있다. 남편은 아주 놀라울 정도로 집안일과 육아를 둘 다 잘 하고 있다… 지난 2주동안 내가 요리/청소/빨래를 한 적이 없을 정도로 그냥 알아서 다 잘해놓고 내 도시락까지 만들어놓는다… (원래도 나보다 훨씬 잘한다… 둘 중 하나가 꼭 전업주부가 되어야한다면 당연히 남편이 되어야함) 집안일에 열중해서 아기를 방치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그건아닌 거 같고… 그 와중에 자기 운동도 매일매일 하러 간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시댁이 도보 5분 거리에 있어서 어머님이 아기를 잠시라도 봐주시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닐까. 그래서 남편도 지치지 않고 여유가 좀 있는 것 같다. 감사한 일이다.
나도 일을 시작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여유가 좀 생겼다. 일찍 출근해서 보통 4시반에서 5시에 일을 마치는데, 회사 지하에 헬스장이 있어서 거기서 잠깐 가볍게 운동을 하고 가기도 했다. 점심시간에 사내 요가모임이 열리기도 해서 참여하기도 했고. 아기랑 둘이 집이 있을 때는 왠지 나를 위한 시간을 따로 내는 게 사치스럽게 느껴졌고 집안일을 하나라도 더 해야할 거 같은 압박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밖으로 나오니 오히려 내 몸을 돌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집에 가면 대여섯시이고 아기는 보통 아홉시쯤 잠이 드니까 아기랑 노는 시간이 길어봤자 서너시간이다. 그래서 집에 가서 아기랑 있는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고, 더 재밌게 놀아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엄청 피곤하기도 하지만ㅠㅠ 그래도 아기가 웃는 걸 보면 피로가 풀린다는 게, 아기를 안고 있으면 근심이 사라진다는 게 무슨 말인지 이제 알겠다.
아기는 밤 9-10시면 잠이 들어 아침까지도 잘 잔다. 재우는 것도 너무 쉬운데, 딱히 뭘 안해줘도 밤잠은 눕히면 그냥 알아서 잠든다. 이렇게 유니콘 같은 아이가 있어도, 야근이 없는데다 집이 회사랑 아주 가까워도, 집안일이랑 육아 잘 해주는 든든한 남편이 있어도 힘들다... 퇴근하고 와서 저녁에 좀 쉬고 싶은데 쉴 수가 없고, 주말에는 왠지 아이한테 더 잘해줘야할 거 같은 생각이 들어서 쉴수가 없다. 물론 나보다 더 힘든 환경에서 육아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이게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내 블로그니까 솔직하게 적자면, 뭘 어떻게 해도 육아는 힘들다. 어떻게 해야 삶의 밸런스를 잘 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좀 덜 피곤할까.
담주에 아기 4개월 검진이 있으니까, 아기 얘기는 담주에 더 자세히 써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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